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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Mar 16. 2021

어느 날 갑자기 난민이 되었다.

<아메리칸 더트>  제닌 커민스

숨 막히게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고, 설령 놓는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에서 내용이 떠나가질 않았다. 이런 소설 작품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플롯이 잘 짜인 문학작품을 보고 싶어서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을 읽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최근 일과 관련하여 나눈 대화에서 멕시코 출신 이민자를 포함하여 미국 사회에 살고 있는 라티노 출신 사람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라틴이민자들 사이에도 백인 라티노와 원주민 라티노가 구분되는지 몰랐고 그들이 다른 사회계층에 속해서 살아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술 업계에 종사했다. 같이 대학원을 다녔거나, 일하면서 만난 비영리 섹터 종사자들 역시도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자란 주류 미국인들이었다. 그들과 함께한 경험을 통해 사실 내가 이해한 미국 사회는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매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아메리칸 더트를 선택한 이유도, 미국 사회의 라틴이민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선택했던 소설이었다. 꽤나 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긴 호흡으로 쓰인 책을 짧은 시간 안에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책은 숨 가쁘게 돌아간다, 책 속의 주인공인 리디아와 그녀의 아들 루카의 관점으로 쓰인 이 책은 그들이 안고 있는 고통과 두려움 슬픔 속으로 독자를 데리고 들어간다. 그 안에서 숨죽이고 가슴 졸이며 그들의 여정을 함께 한다. 


미국 국경에 도착해서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처음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예정되어 있는 결말 같았다. 하지만, 결말을 알기 위해서 읽는 책은 분명 아니었다. 모든 것은 과정에 있었다. 남편과 어머니를 포함해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고 오직 어린 아들만 남겨진 주인공 리디아는 강력한 모성애를 발휘하여 모든 위기를 꿋꿋이 헤쳐나간다.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루카역시 그 나이 또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어리광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성숙하고 생각이 많은, 또 자신의 엄마와 여정을 함께 하고 있는 솔레데르와 레베카를 지켜주고 싶어 하는 용기 있는 아이로 소설 내내 그려진다.


작가는 알카페소를 떠나 미국 국경까지 거쳐야 했던 모든 길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하나의 주와 주 사이에 있는 검문소는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다. 그 검문소를 거치는 모든 사람들은 검은돈을 내야만 안전하고 무사하게 그 길을 지나칠 수 있다. 누구에게 쫓기지 않더라도, 무장한 카르텔이 지키고 있는 그 길을 지나칠 때면 모골이 송연 해질 것이다. 메마른 모래 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건조하게 이는 모래바람을 바라보는 리디아가 느끼는 감정은 그 모래바람보다 더 건조하고 메말랐을 것이다. 이 모든 감정이 작가의 글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해진다. 짐승의 열차라 불리는 기차를 타고 미국으로 향해야 하는 죽음의 기찻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리디아, 그리고 기차가 올 때마다 기차 지붕으로 몸을 내던지는 위험을 각오하고 나중에는 위험마저 무감각해지는 그 과정은 철저히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수도 없이 겁탈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동생을 지키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솔레데르.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녀 마음속에서 활활 타고 있던 불꽃은 점점 사그라들어 소설 끝이 되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만 같다. 같은 여자로서, 그녀가 헤쳐나가야 했던 삶에 대해서 나는 알 수도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상상력으로 상상할 뿐이다. 그 끔찍한 고통을. 작가는 고통을 이렇게 묘사한다.


“공포에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슬픔보다 즉각적이라는 사실이다. 리디아는 이제야 그걸 깨닫는다. 곧 오늘 있었던 일을 대면해야 할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마취제가 되어 지독한 고통을 느낄 수 없다.” 


고통과 두려움이 마취제가 되어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 도대체 어떤 상상력을 동원해야 감히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것이가. 


책을 읽으면서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라틴계 난민이 멕시코인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민들은 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에서 왔을 수도 있고 마야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시골에서 살았고, 중산층일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고, 고학력일지도 모른다. 또 리디아처럼 책방을 운영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자신이 난민의 신세가 될 거라고는 조금도 상상해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난민이라는 신분을 이루는 구성요소에는 공통점이 없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그들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극도로 공포스럽고 슬픈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작가는 2017년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대에서 21시간마다 난민이 한 명씩 죽었고, 지중해와 중앙아메리카, 소말리아 반도에서는 한 시간 반마다 한 명의 난민이 죽었다고 했다. 멕시코 전역에서 신고된 실종자 수가 이미 40만 명을 넘었다. 멕시코에서 해결되지 않은 범죄율을 90%가 넘는다. 리디아와 루카의 이야기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중 아주 극히 일부에 불과한 이야기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서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리디아와 루카의 일만 보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멕시코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카르텔을 없애는 일들이 그것이다. 카르텔의 표적이 되는 순간 그들 앞에는 딱 두 가지의 선택만이 남는다. 도망치거나, 죽거나. 그런 상황에서 도망을 선택하는 이들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도망을 선택으로 생각하고 한 인간의 선택이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결국 우리가 인본주의적인 측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고통 속에서 삶의 터전을 떠나 미국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시 처음부터 살아갈 노력을 다한다. 난민들은 일자리를 구하고 그들의 아이는 학교에 다닌다. 삶의 과정 어떤 순간에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합법적인 신분을 갖추어 나갈 수도 있다. 물론 그것도 소수의 사람들이겠지만. 어른과 아이 모두는 우선적으로 적절한 음식을 잘 먹고 건강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어른들은 일자리를 구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장차 더 나은 미래를 꾸려 나가는 일이 필요할 것이고, 아이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어른과 아이 모두 난민이 되어 정착지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겪어야 했던 끔찍한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치료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돈도 없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후에는 난민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고 합법적인 신분으로 미국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을 것이다. 


소설의 끝자락에 리디아는 청소일을 구했고, 루카는 이민자들과 백인이 함께 다니는 학교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고 묘사했다. 레베카과 솔레다드는 학교를 다니지만 아직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가상의 일을 묘사한 것이지만, 비슷한 상황에 노출된 실제 난민들의 이야기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라티노 난민을 포함하여 정착하여 살아가는 제2세, 3세 난민 출신 가정에게 가는 비영리 자본은 백인이나 아시아인들에게 가는 자원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에서 라티노 이민자들의 사회계층은 미국 토착 원주민과 같은 단계로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해 있다.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것에 비해 그들에게 가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비영리 자원이 효과적으로 라티노 이민자들을 돕는 단체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데이터를 통해 그들을 옹호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하나의 역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이제 겨우 3월이지만, 올해 단 한 권의 소설을 꼽아야 한다면 <아메리칸 더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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