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데이터 분석, 인문, 역사 분야 총정리
매년 연말이 되면 하는 일이 있다. 아마존, 교보문고, 리디북스 등 평소 애용하는 플랫폼에서 구매내역을 찾아보고 날짜별로 엑셀 파일에 읽은 책의 이름, 구매 장소, 가격 그리고 구매 날짜를 기입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클라우드 파일을 열고 일 년 동안 구매하고 읽었던 책을 정리했다.
보통 연초에는 조용히 집에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연말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기간이 겹치기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많았다. 당연히 더 많은 책을 읽게 된다. 올해는 특히 일하는 중간중간에는 일과 관련해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책을 많이 읽었고, 하루가 마무리되는 저녁에는 욕조에 물 받아 놓고 삶의 경험을 엿볼 수 있는 철학 책 위주로 읽었다.
사실 책만큼 투자 대비 효용이 있는 것이 있을까? 올해 읽었던 책 중, 야마구치 슈의 <일을 잘한다는 것>에서 작가는 우리가 예전부터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광범위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시대, 여행이 귀해진 요즘 뉴욕과 한국을 오갈 수 있는 비행기 값 정도의 돈으로 나는 130명이 넘는 작가의 깊은 경험을 광범위하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주체하지 못하는 호기심 덕분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인문과 관련된 도서의 양이 가장 많았다. '인문'이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분야가 워낙 광범위한지라 사실 인문이라고 쓰고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분야'라고 읽고 싶다. 올해 내가 가장 집중했던 분야는 단연 '사회문화적 불평등'이었다. 2021년은 Black lives matter, Asian Hate과 같은 인종차별적 혐오에 대한 미국 전역의 시민사회가 불복종을 이야기하며 옹호 활동을 벌인 해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의 특성상 사회 속에서 불평등과 혐오, 편견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을 더 잘 이해하고 훌륭한 프러덕을 만들기 위해서 사회 문화적 불평등을 이해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사회문화적 불평등 중에서도 크게 인종적 차별과 사회계급 간 차별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미국의 인종적 차별에 대해서 가장 심도 있게 연구한 연구서로는 제니퍼 에버하트의 <편견>을 꼽고 싶고, 한국사회에서의 다양한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 한 책으로는 이민규 작가의 <차이 차별 처벌>을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의 인종 차별 문제나 사회적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구를 통해 사실관계를 이야기하는 도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실제로 그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공감하고 환경을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문학작품도 필요하다.
콜슨 화이트 헤드의 <니클의 소년들>과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 그리고 <파수꾼>은 미국의 흑인 소녀와 소년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종차별을 그리고 있다.
<니클의 소년들> by 콜슨 화이트 헤드: 빛은 어둠을 이긴다
제닌 커민스 <아메리칸 더티>는 멕시코 국경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남 아메리카 난민들에 대해 조명했다. 그들이 난민이 된 이유, 지옥보다 더 지옥같은 과정을 거쳐 미국땅에 도착하는 그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아메리칸 더티> by 제닌 커민스: 어느 날 갑자기 난민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는 인종 차별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사회계급적 차별도 무시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화이트 쓰레기', '레드넥' 등으로 불려 온 아팔래치아 산맥 저 너머에 살고 있는 많은 미국 백인 이민자의 어려운 삶과 그들이 마주하는 끝없는 가난의 되물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바로 <힐빌리 엘리지>이다. 그리고 이런 가난한 백인들이 어떤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책이 바로 낸시 아이젠버그의 <미국 400년 계급사>이다. 부와 계급을 거머쥐고 왔던 앵글로 색슨족과 깊은 신앙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청교도의 시각에서 벗어나 1600년대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신세계로 버려지다시피 했던 백인 노예 그리고 하층 계급이었던 백인의 시각으로 미국을 조명한 것이 매우 인상 적인 책이다.
<힐빌리 엘리지> by JD Vance: 노력하지 않아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라
2021년 한 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빠트렸던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나는 할레드 호세아니의 소설 <연을 쫒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집어 들었다. 소년과 소녀의 시각으로 쓰인 두 개의 소설은 시대적으로 다른 아프가니스탄을 다루고 있지만, 수십 년 전과 지금과 비교해도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끔찍이도 어려운 삶을 사는 아프가니스탄인을 다룬다. 두 책을 읽으며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곳에서도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적 편견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와는 달리 다양한 민족이 살아가는 그곳에서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 파슈툰 족은 단연 인종적 가장 우위에 있는 민족이 되었고, 하자라 족은 가장 핍박받는 소수민족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그 안에서도 또 다른 불평등이 있고 같은 자원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난민'이라는 비교적 특혜의 자격조차 받지 못한 소수의 민족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책이다.
<연을 쫒는 아이> by 할레드 호세아니: 전쟁 속에서도 인생을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간다.
이외에도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독서의 즐거움>은 우리가 독서를 통해서 어떻게 '독학'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독서'를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는지를 말한 아주 훌륭한 책이다. 뿐만아니라, 그녀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독학으로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추천했던 책의 리스트는 분명 귀중한 정보이다.
<독서의 즐거움> by 수잔 와이즈 바우어: 정보수집과 독서의 차이
인문학 도서 중에서 가장 많이 읽은 분야는 '철학'관련 도서이다. 우선 아툴 가완디는 내가 지난해 만난 작가 중 가장 많은 영감을 받은 사람이다. 외과 의사이자 교수 그리고 작가인 그는 그의 책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서는 관찰과 분석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업무 나아가 일터의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고 <Being Mortal>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페터 비에리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유명한 그는 사실 소설가가 아닌 철학과 교수이다. 나는 그의 책 중에서 특히 <자기 결정>을 통해 행복하고 존엄한 삶의 모습은 나 스스로가 결정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다.
<자기결정> 페터 비에리: 문학을 통한 나와 타인의 이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와 <행복의 지도>를 쓴 에릭 와이너는 2021년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해 준 작가였다. 책의 문장 문장에서 드러나는 그의 유머와 그 속에 묻어 있는 깊은 통찰 그리고 사회 풍자는 너무도 재밌고 너무도 흥미로워 그가 사뭇 질투 나기도 했을 정도로 그는 2021년 내가 꼽은 최고의 작가이다.
직업적 특성을 반영하는 책은 아무래도 빠질 수가 없다. 데이터 분석가로 이직했던 2021년은 나에게 있어 배움의 해였다. 대학원에 준하는 과정을 새롭게 들으면서 데이터의 수집부터 분석 시각화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지식을 갖출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많은 통찰과 영감을 준 책은 Judea Pearl의 <the book of why>이다.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수상한 작가는 이 책에서 인과관계에 집중했다. 인공지능이 여러 방면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데이터로 무장한 기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상상과 인과적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게 주된 메시지였다.
<The Book of Why> by Judea Pearl:
2) 딥러닝, 머신 러닝은 여전히 연상화 단계에 있다.
칼 벅스트롬의 <똑똑하게 생존하기>는 발전된 SNS로 보다 쉬운 소통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메세지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 조망했다. 보다 긍정적인 뉴스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생산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똑똑하게 생존하기> by 칼 벅스트롬: 소통에 대하여
데이터 편향에 대해 지식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것도 몇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캐롤라인 패 래즈의 <Invisible Women>은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데이터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이었는지, 이를 통해서 사회 문화적으로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정책과 기술들이 나오고 있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브라이언 크리스천의 책 <The alignment problem> 은 내가 존경하는 경영자 사티아 나델라가 올 해의 책으로 꼽아서 알게 된 책이다. 이 책은 기계적 분석이 지금까지 어떤 편향을 만들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 간극을 줄일 수 있는지를 말한다.
<The Alignment Problem> by 브라이언 크리스천: 의사에서 남자를 빼고 여자를 더하면 간호사?
에너지, 환경, 식량,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룬 이 시대의 과학자 바츨라브 스킬의 <Number don't lie>는 거대한 양적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책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벌거벗은 통계학> 이라던가 <how to lie with statistics>를 함께 읽었는데 통계적으로 우리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 수 있게 해 준 아주 멋지고 훌륭한 책이었다.
이 외에도, 그동안은 잘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인 '예술'과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뉴욕'이라는 환경적으로 예술 작품을 근거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 살기 시작한 것이 있고, 두 번째는 삶을 더 다채롭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시각과 안목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단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예술을 어떻게 감상하는지에 예술 감상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돌아보거나 혹은 그들이 말하는 안목을 기르는 방법들에 대해서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2022년에는 아마 나만의 색깔을 찾아 예술분야 책을 읽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2021년 한 해를 책을 통해 돌아보니 내가 가장 관심 가졌던 관심사가 눈에 보인다. 어떤 분야에서는 아기처럼 첫걸음마를 내딛은 느낌이고 어떤 분야에서는 꽤나 깊이 있는 공부를 한 것 같다. 2022년에는 어떤 책을 통해 광범위한 지적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