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감정이 이렇다. 앞을 내다보면 바둣돌의 집을 모두 먹힌 상태와 같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돌을 두어야 인생의 길이 보일지 가늠이 안 잡힌다. 이를 바둑에선 “장고에 돌입했다”라고 표현한다. … 장고(長考)란 오래도록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궁리하면서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 최선의 수순 등을 헤아려 착수를 하기까지 깊이 몰입하는 과정이다.
어느덧 취준 n연차를 맞이하고 나서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나는 겨울나기를 하듯 고향에 내려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아니 기어코 또다시 이 미친 짓을 도전을 해야만 하는지) 깊게 생각에 빠진다. 자칫 계획을 세우려는 모양새지만 결국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어떻게든 일말의 가능성을 동냥하려는 행위'에 가깝다.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한 끝에야 언론고시라는 미친 짓을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작년 이맘때 즈음 마음을 다잡고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채용한파가 이렇게 매서울 줄은 몰랐다. 소문으로만 익히 들었지만 취준생의 피부에 격하게 와닿을 정도라니..? 안 그래도 지원하는 직무의 TO가 많아봐야 열 명남짓인 바늘구멍이 한파를 맞아 올해는 그 반의 반도 안 됐다.(수백 대일을 뚫어야 하는 시험이 올해는 거기에 더해 미친 짓이 아닌 자살행위 자체였다)
결과는 후회가 돼도 미련이 남진 않는다.
다시 도전하는 미친 짓 중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3번은 왔다. 종편 두 곳과 지상파 계열 한 곳을 포함해 드라마 피디를 할 수 있는 고지에서 세 번이나 낙마했으니 누굴 탓할까? (잘 봤다고 생각한) 면접 때의 내 모습을 복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결국 운이 작용했을 뿐이다.
누군가는 "피디 시험의 최종에 여러 번 갔으면 이제 곧인거 아니야?"라고 되물을 수도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이 시험은 운칠기삼 그 이상의 운구기일이 많이 작용한다'라며 '운과 실력'앞에 오히려 자신감에 많이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지인들의 기대와 달리 나 스스로는 앞의 수가 한치도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건, 바둑에서 ‘장고 끝에 악수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치게 오래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된다는 점이다. 결국 본인 고심 끝에 시간을 허비하고 판단을 잃어 전체를 읽지 못하는 악수를 두는 격이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할 바에 기존의 바둑판을 뒤집어버리기로 했다. 가장 원했지만 합격률이 낮았던 1 지망 방송국의 기대심리를 낮추고, 그나마 합격률이 높은 계열에 집중을 하려 한다. 집착에 가까웠던 곳에 스스로 내려놓아야 그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다. (지금도 머릿속은 이해해도 마음속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최근 스타벅스 첫 방문자를 대상으로 이벤트로 청룡을 나누어 줬다. 이벤트 스티커 하나에도 일말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내가 참 웃프지만 어떻게 하나?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살아가는 존재인걸. 2024년은 지금의 무모한 도전을 하는 악수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길 간절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