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관한 이야기
나는 천상 글쟁이다.
어떤 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은 천상 그림쟁이네.'
유별나고 말이 잘 안 통해서 같이 있으면 힘든 타입이었다. 그는 그림을 제외한 모든 것에는 젬병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린 그림만 보면 나는 넋을 잃고 감탄을 하게 되었다. 그는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푹 빠져서 그런 사람이 된 것인가, 아니면 그런 사람이기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인가. 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사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가 소통하는 언어는 그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도 안 되는 내 그림을 찰떡같이 알아먹었다.
힘든 시간 나를 지탱해 준 것은 글이었다. 더 지독하게 힘든 시간에는 글조차 쓸 수가 없었다. 아마 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할 에너지가 없던 때였을거다.
내가 좋아하고 맛있어하던 글들은 주로 그런 류였다.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그리고 4시가 다 되었을 때 난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아마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중에서-
그런데 내가 3년 동안 마주해야 했던 지독한 글들은 이런 것이었다.
Under the provisions of an act approved March 13, 1957 (Ga. L. 1957, p. 387), Fulton County instituted a proceeding in rem to condemn and thus acquire feesimple title to a described strip of land for highway purposes.
(1957년 3월 13일에 승인된 법령의 조항에 따라, 풀튼 카운티는 고속도로 목적으로 특정 토지 구획에 대한 완전 소유권을 취득하고자 in rem 절차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였다.)
- Fairburn v. Fulton County, 216 Ga. 729 (1961), 119 S.E.2d 566
재미없던 글들은 아니었다. 사실, 그냥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음, 그랬군. 할 정도의 글이었다. 매일 마주하는 엄청난 양의 활자에 스며드면 스며들수록,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내가 감당 못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근데. 크리스천이 그래도 돼? 성경에서는 그거 죄라고 하는 거잖아. 그건 정의가 아니야. 그 사람들은 죄를 저지른 거야. 성경에서는 그거 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다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을 말을 못 했다.
그들이 얘기하는 그 죄가 칼같이 느껴졌고 때로는 그 칼 끝이 나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글이 누군가의 살을 에고 찌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정말 그들은 이혼을 했으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고, 사실은 절대 이혼하면 안 되는 거였을까? 곧 죽어도 하나님을 생각해서, 자식을 생각해서, 성경에서 얘기하는 죄를 저지르면 이기적인 죄인이니까 그런 선택을 하면 안 되었다고 끝까지 얘기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 그 수많은 사례들의 사람들을 비난해도 되는 걸까?
사실 그들은 수십 번의 이를 꽉 깨물고, 주먹을 꽉 쥐고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소리도 엉엉 내어 울었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그런 선택을 내린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분명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말도 안 되는 살인 판례, 이랬다 저랬다 뒤집히는 낙태 판례에 대해서 분명히 옳은 것은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근데…
변호사라서… 그들의 삶을 그냥 잠깐 활자 읽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걸까?
성경구절을 조금 안다면 그걸로 그건 죄다, 아니다, 판단할 수 있는 걸까?
법을 조금 더 안다고 치면 '그러길래 왜 결혼 전에 애를 낳았어? 혼전계약서 쓰라고 했잖아!' 이런 이야기쯤 아무렇지 않게 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야 한다는 이 직업은 나에게는 어찌 보면 고난이고 고통이었다.
나는 A를 보고 있으면 뒷면의 B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겪어온 인생은 결코 ‘절대적으로 좋은 것‘과 ’ 절대적으로 나쁜 것’으로 나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개는 ’ 좋아 보이는 것, 그러나 대가가 따르는 것’ 혹은 ’안 좋아 보였던 것, 근데 좋은 점도 있었던 것’과 같은 거였다.
그 경험들 위에 서있던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리고 ‘감사하는 것’을 지혜라 여기며 지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지난 인생에 6개의 국가를 전전하면서 살아남은 나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직업은 온통 모든 세상을 흑과 백, 선과 악으로 나누어 타협의 지점을 없애 버리고 자신이 ‘백’이며 ‘선’이노라 외쳐댔다.
법을 다루는 이 순간, 난 판단하는 그들과 다른 사람일까?
난 저 사람보다 더 정의로운 사람일까?
난 교회 다니니까, 성경을 가지고서 너한테 ‘너 예수님 안 믿잖아. 그럼 지옥 가는 거야.’ 이 말을 할 수 있나?
그게 예수님이 말하는 사랑일까?
나는 단언컨대 내가 만나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야. 너 인생 잘못 살았어.’라고 말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법의 쪼가리를 그저 몇 장 들춰보아 조금 더 해석하고 이해하게 된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저는 성경을 열심히 읽었고, 죄인 것과 죄가 아닌 것을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죄인 것을 철저히 피했습니다.'라고 얘기할 자신도 없다.
그러나 내가 만난 어떤 이들은 개개인이 다르게 갖고 있는 정의와 그에 대한 신념에 대해 어마어마한 철옹성을 세워 놓았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가 믿는 것'이 정의라고 했다.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면 더 아찔해졌다. 때로는 절대적 권위라며 성경까지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믿는 게 성경인지 자기가 맞다고 믿는 것인지 분간이 안된 채로 남아 있었다. 그 이후로는 법 좀 공부했다 하는 이들과 얘기만 했다 하면 기분이 나빠졌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 길은 아직도 안개 속이다. 명확해지기를 기도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올시다다.
나는 오랜 시간 정의가 있고,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싶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슬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오랜 신앙생활과 몇 년간의 법을 공부한 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정의를 말로만 얘기하기보다 살아 지켜내고 싶은 마음만 다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