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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디 Mar 14. 2021

연구개발 vs 생산 vs 판매

엔지니어가 하는 일

서두에 직장 vs 직무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취업을 할 때 '어느 회사에서 일하느냐' 이상으로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이 '무슨 일을 하느냐'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회사에 취직하더라도 하는 일이 몸에 맞지 않으면 업무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의욕이 떨어지기 쉽다. 나는 한번 뿐인 인생을 후회없이 재미있게 살고 싶었고, 경영대학부터 공과대학까지 캠퍼스를 누비며 부지런히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맞이한 가장 큰 고민거리는 전공을 살려 엔지니어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분야(고시, 컨설팅, 창업 등)에 도전하느냐 였다. 당시에는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세부적인 직무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나마 대학원 과정을 거치고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엔지니어의 직무가 '연구개발(Research and Development, R&D)'과 기타 분야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대학원생처럼 나는 '연구개발' 분야에 지원했고, 가장 희망하던 회사에 합격하여 '연구개발 본부 로보틱스 연구실'에 배정받았다. 첫 회사에서의 직함(Job Title)은 연구원(Researcher)이었는데, 실제 담당하던 업무를 생각해보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Software Engineer)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두 번째 직장에서 내가 맡게 된 역할은 영업 조직에서 판매를 지원하는 기술지원 엔지니어(Technical Support Engineer)였다. 이 외에도 여러 부서와 직/간접적으로 협업하면서 엔지니어가 하는 일이 생각 이상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회사에서 제품 또는 서비스를 만들어 판매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엔지니어가 어떤 업무를 담당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큰 틀에서 볼 때 기술을 기반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체에서는 연구개발(R&D), 생산(Production), 판매(Sales)라는 핵심 기능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한다. 


기술 기반 회사의 핵심 기능



연구개발(R&D)은 우리가 흔히 ‘엔지니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가장 부합한다. 기업체 연구소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 또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연구 및 개발 업무를 담당한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네이버랩스 등 당장 제품화 하지 않는 미래기술에 집중하는 연구소 또한 존재한다. 전 직장의 로보틱스 연구실에서는 자동차 및 디스플레이 제조를 위한 산업용 로봇을 개발했는데, 업무 속성에 따라 기구팀과 제어 플랫폼팀, 그리고 모션 및 응용 소프트웨어팀으로 나눌 수 있다. 기구팀에서는 3D CAD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로봇 팔을 설계하고 해석 툴을 이용하여 기계적인 강성, 소음, 진동 등을 분석한다. 참고로 기계적 설계 또한 영어로는 '디자인'인데, '비주얼'에 초점을 맞춘 '패션 디자인'과 달리 '기능'을 우선시한다. 예전에, 멋진 자동차 디자인을 하러 기계과에 입학했다가 전공수업을 듣더니 경영학과로 전과했던 선배가 있었는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이너가 기계 설계팀에 오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로봇 팔은 제어기로 동작 시키는데 전기전자 장치인 제어기(일종의 컴퓨터)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곳이 제어 플랫폼팀이다. 이곳에서는 회로설계(전자공학), 전원공급장치(전기공학),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컴퓨터공학)에 대한 경험 및 지식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내가 속했던 모션 및 응용 소프트웨어팀은 로봇 팔의 동작과 응용 기능에 대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로봇역학 이론을 활용하여 모션 제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C언어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이를 구현한다.


기업체 연구원들은 직접 개발한 제품이 실제로 판매되고 사용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연구개발 담당자들은 회사 내에서 기술을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하게 마련인데, 주변 부서에서는 기술을 선도하는 '지식인(Intellectual)'으로 인정해줄 것이다. 취업한 선배들은 어차피 회사가면 업무를 새로 배운다며 대학교 전공 수업을 부정하곤 했는데, 연구개발은 상대적으로 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써먹을 기회가 많다. 전공을 살린다는 점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다만, 연구개발 분야로 취업한다고 모두가 전공을 살려 일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 별로 필요한 인원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특히 대기업 신입공채의 경우 전공과 다른 보직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데, 최첨단(State-of-the-art) 기술에 대한 연구를 기대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제품 연구개발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순수 연구는 새로운 이론을 시도하고 이것이 '동작'한다면 의미 있는 성과로 간주될 것이다. 하지만 제품 연구개발에서는 기능이 '동작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세련된(Fancy) 최신 기술 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미 검증된 기술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산업용 로봇 모션 제어 알고리즘은 수십년 전에 개발된 로봇역학 및 제어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프로세서나 센서 등 주요 부품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에 적용하지 못했던 알고리즘을 제품에 접목시키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기술 또한 과거에 등장한 이론을 근거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만약, 최첨단(Cutting edge) 신기술에 집중하고 싶다면 산업체 연구소 보다는 국가기관나 학교에서 운영하는 연구소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연구개발은 업무 특성 상 돈을 쓰는 조직이라는 이미지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목적에 따라 기업체 연구소는 매출 및 수익에 기여하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반대로, 연구개발의 결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거나 원가 절감에 기여한다면 회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회사 상황이 워낙 좋아 새로운 기술 및 제품 연구에 주력했는데, 유럽 금융 위기로 조선 등 주변 사업분야가 어려워지면서 제품 라인업 확장 등 당장 매출로 이어지는 업무로 연구개발 로드맵이 변경되었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회사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연구소는 인원 감축 1순위였다. 


제품/서비스 연구개발 엔지니어 업무의 특징

전공과 업무의 연관성 높은 편

개발한 제품이 실제로 판매됨

검증된 기술 우선

매출에 간접적인 기여


최근에는 전형적인 연구개발 직무는 아니지만,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연구개발 업무를 위해 등장한 새로운 직무들이 눈에 띈다. 제품담당자(Product Manager)는 시장성과 기술 양면을 고려하여 제품 요구사항 및 기술사양을 수립하고, 연구개발 방향성이나 R&D 엔지니어들이 어떤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지 기획한다. 프로젝트 관리자(Project Manager)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일정에 맞게 성공적으로 완료될 수 있도록 관리하며, 스크럼 마스터(Scrum Master)는 애자일 개발 방법론의 지휘자로서 팀원을 코칭 하고 프로젝트의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데브옵스 엔지니어(DevOps Engineer)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툴과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등 개발 및 운영 전체를 관장한다.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둔 UX/UI 디자이너 또한 수요가 매우 높은 직군이다. 



생산(Production) 부서에서는 연구개발에서 설계한 내용을 토대로 실제 제품을 제조한다. 예를 들어, 산업용 로봇의 경우 모터, 감속기, 베어링 등의 부품을 조립하여 로봇 완제품을 만든다. 이렇게만 보면 공장 작업자를 떠올려 엔지니어 업무와 거리가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부품 공급처(Supplier)를 발굴하여 구매계약을 맺는 공급 사슬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조립 공정을 개선하는 제조 기술(Manufacturing Engineering), 제품의 품질 관리(Quality Management) 또한 '생산'이라는 큰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산업용 로봇을 도입하여 생산 공정을 개선하는 자동화 담당 엔지니어는 업무 상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고객이다. 



제품이 완성되면 고객에게 이를 '판매(Sales)'해야 하며 '영업(Sales)' 조직에서 이를 담당한다. 사용 중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사후 서비스(After Service) 또한 큰 틀에서는 판매 단계에 포함시킬 수 있다. 만약, 기술집약적 제품을 판매한다면 기술지원 엔지니어(Technical Support Engineer)가 필요할 것이다. 


기술지원 엔지니어는 영업 조직의 일원으로서, 제품의 판매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지원한다. 산업용 로봇의 판매 과정을 예로 들면, 첫 번째는 제품을 고객사에 알리는 마케팅 단계이다. 전시회에 제품을 출품할 때 로봇 동작을 보여주기 위한 애플리케이션 시연을 준비하거나, 기술적인 부분을 설명하는 기술문서 또는 웨비나 등의 컨텐츠를 제공한다. 다음은 영업 단계인데, 제품 구입을 고민하고 있는 고객사에서 기술적으로 궁금한 부분이 있거나 무슨 제품을 선택하고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컨설팅 해준다. 설치 단계는 산업용 로봇에 특화된 부분이다. 로봇을 구입한 고객이 제품을 설치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래밍 등 기술적인 부분을 지원한다. 이후 로봇을 사용하다가 고장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트러블슈팅 또는 수리를 돕는다.


제품의 판매 단계


기술지원 엔지니어는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과의 접점이 많기 때문에 제조자(Manufacturer)의 마인드 보다는 사용자(User)의 시각으로 제품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고, 사내에서는 고객(Customer)의 입장을 대변하여 연구개발 혹은 생산 부서에 의견을 제시하곤 한다. 내가 일하던 회사의 유통 방식은 대리점(Distributor)을 통한 간접 판매(Indirect Sales)였다. 고객 관리 측면에서 제한사항이 있지만, 고용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면서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는데 유리하고 각종 로컬 규제에 대응하기 유연하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수출 제조기업이나 규모가 작은 회사 등에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많이 사용한다. 여기서 기술지원 엔지니어의 주된 업무는 대리점에 대한 기술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대리점 엔지니어가 로봇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교육을 실시하고, 로봇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일반적으로, 연구개발 엔지니어와 기술지원 엔지니어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기술에 대한 이론(Theory)이나 원리(Principle)에 대해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반면, 제품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해당 기술에 대한 이론보다는 어떻게 하면 동작 시킬 수 있는지 보다 '실용적인(Practical)' 측면이 강조된다.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방법이 우선시된다. 


제품을 만드는 기술과 제품을 사용하는 기술이 다른 점 또한 연구개발과 영업지원 엔지니어의 차이점이다. 쉽게 말하면 기술적 장르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업용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제어공학이나 로봇역학, 재료역학, 회로이론, 전기공학 등의 이론이 요구될 것이다. 반면, 산업용 로봇을 응용하기 위해서는 공기압 제어, 솔레노이드 제어, 용접, 페인팅 등의 기술을 활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기술지원 엔지니어는 영업 조직에 속해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판매를 담당하는 조직의 최우선 목표는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만약 매출이 감소되면 영업 담당자가 해고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기술적 경험이 중요한 기술지원 엔지니어는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적인 편이지만, 연구개발이나 생산 관련 엔지니어와 비교하여 매출에 대한 압박이 심한 경향이 있다.


기술지원 엔지니어 업무의 특징

고객과 가까움

개발 원리보다는 사용하는 부분에 중점

기술적 실용성 및 다양성

매출에 직접적인 기여

매출에 대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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