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의 법칙
한 학기 동안 대학에서 디지털 PR 프로젝트 수업을 맡았다. 디지털 PR을 주제로 한 수업이다 보니 플랫폼을 설명할 일이 생겼다. 플랫폼이라는 단어는 Flat + Form이라는 합성어 그대로의 의미대로 ‘평평한 형태’를 의미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대포를 설치하기 위한 평평한 판이 필요했는데 이게 플랫폼의 어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플랫폼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상이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물었는데 카카오톡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플랫폼은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공간처럼 한 대상이 또 다른 대상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매개체다. 카톡이라고 답변한 학생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보편적인 툴로 모바일 메신저를 떠올렸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철도 역사의 플랫폼이 먼저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곳으로 당신을 보내세요!’라는 콘셉트의 KTX 광고 카피가 공감을 얻었던 것도 그 이유다. 기차 플랫폼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 목적지에 닿기 위해서 출발하는 곳으로 공간을 이동시키는 대표적인 플랫폼 중에 하나다.
가장 행복한 곳으로 보내라는 의미는 ‘나 스스로 어딘가를 간다’는 능동의 의미와는 다르게 다소 수동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KTX라는 매개체에 의지해서 그 어떤 곳으로 ‘나를 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강의에서 플랫폼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석규와 전도연 주연의 ‘접속’이라는 영화를 예로 들어 설명을 이어갔다. 접속은 98년에 개봉한 영화로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았던 남녀 배우를 주연으로 확정했다. 두 주인공이 채팅을 통해서 연결되고 결국 새로운 만남의 출발을 이어나간다는 설정이다. 이 둘 사이를 연결한 매개체는 PC이고 인터넷의 보급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점에서의 채팅 툴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채널이 되었다.
98년은 인터넷이 보급되긴 했지만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어서 지금처럼 모바일로 간단하게 카톡을 보내거나 문자를 할 수 없는 시대였다. PC를 통한 채팅도 파란색 화면에서 닉네임으로 입장에서 텍스트 중심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영화를 혹시라도 본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한 명도 손을 든 학생이 없었다. 수업시간에 적극성을 띄는 학생이 참 없구나라고 생각한 시점에 영화가 개봉한 시점은 1998년이고 학생들이 태어난 시점은 2000년 이후라는 사실을 한 학생의 제보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왔고, 학생들도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지식인의 저주라는 개념이 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기본 지식이 대화를 하는 상대방도 동일할 것이라는 착각 혹은 근거 없는 인식,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접속이라는 영화를 몇 명이라도 봤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플랫폼이라는 용어를 이해시키는 데 이만큼 좋은 스토리는 없을 것이라는 짐작이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나를 깨닫는 순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예측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우리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발표에서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메일에서 동일한 실수를 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정보와 사실과 믿음이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금 더 낮은 마음으로 상대에게 감정 이입해야 하고 대화 상대의 이해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솔직하게 물어보고 커뮤니케이션의 수준을 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플랫폼이 결국 ‘평평한 형태’를 의미하는 것도, 높거나 낮지 않게 어떤 대상과 대상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치우침이 없어야 함을 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역시 서로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의 이해 수준과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적어도 대화 안에서 서로를 저주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