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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스 Oct 14. 2022

벚꽃을 좋아하는 이유

아름다움을 집착하지 않는 단아함

직장동료와 점심을 먹으로 나섰다가 길가에 핀 벚꽃 행렬에 잠시 걸음을 멈추어 섰다. 벌써 벚꽃인가 했더니 진작에 4월이었다.  4월이면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있다. 이와이순지 감독의 4월 이야기다. 67분짜리 짧은 단편 같은 영화다.


내가 이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짝사랑의 애틋함을 당대 최고의 배우인 마츠다카코가 연기했다는 점. 그래서 짝사랑의 대상자에게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벚꽃 잎이 비처럼 흩날리는 저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의 스토리가 봄을 배경으로 해서 인지 벚꽃, 봄비와 같은 서정적인 장면이 많다. TVCF를 주로 작업하던 감독이 러브레터에 이서 세 번째로 작업한 영화이기 때문에 장면의 색상과 호흡이 단조롭지 않고 몰입력이 있다.


벚꽃이라는 대상이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건 봄이 오는 신호인 이유도 있겠지만 벚꽃 자체가 잠깐 피고 지는 계절의 희소성을 대표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것도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일 경우 그 기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홋카이도의 가족과 이별하고 도쿄로 진학을 결심한 우즈키(마츠 다카코)는 동네서점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관심이 많다.


책을 고르다가도 힐끔힐끔 일하는 모습을 훔쳐보기도 하고 말을 걸어볼까 망설이기도 한다. 타향에서의 대학생활은 비현실적인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고, 이웃집 여자와 이상한 만남도 생기는 등 적응하기 어려운 일들이 곳곳에 벌어진다. 그래도 짝사랑에 대한 간절함이 여러 가지 모험을 마다하고 타향 생활을 하게 된 동기라는 걸 눈치채게 된다.


영화 초반의 벚꽃은 한철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잎처럼 둘 사이의 관계가 그 기한을 다할 것 같은 예감을 주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꽃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둘은 한없이 눈부신 봄날을 이어나가게 된 셈이다. 적어도 나는 둘을 그렇게 상상했다.


점심을 먹고 회사 도서관에서 집어 든 책을 넘겨 보다가 누군가 끼워 놓은 벚꽃 책갈피를 발견했다. 벚꽃을 말려서 납작하게 만든 뒤 코팅해서 책갈피를 만들었다. 매년 화려한 벚꽃 풍경이 채 1개월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책갈피로 대신한 것은 아닐까 상상했다.


한편으로는 화려하게 피었다가 떨어져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아쉬움으로 남지 못하게 영원히 썩지 않는 박제로 남아 있는 꽃잎들이 조금은 처량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거닐면 어떤 음악이든 벚꽃 샤워와 함께 명곡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러브 로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벚꽃길을 연인이 함께 거닐다가 지인을 만나게 되면 헤어지게 된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길이기도 했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벤치에 앉아서 흩날리는 꽃잎 사이의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꽃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책갈피로 쓸만한 것들을 골라내기도 했다. 그때 쓴 시가 집안 어딘가 노트에 적혀 있을 것 같아서 이곳저곳을 뒤져서 어렵사리 찾아냈다.



별은 과거의 집착이며

하늘은 현실에 대한 후회이다.

별을 가슴에 새기며

누군가를 위해 눈물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자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내가 벚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집착하지 않는

단아함 때문이다.

내가 벚꽃을 진정 사랑하는 이유는

집착하지 않을 수 없는

내 모습에 대한 후회 때문이다.


벚꽃을 사랑하는 이유로 집착하지 않은 단아함을 적었다. 아니 벚꽃처럼 질척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년 봄에도 1년에 한 번 밖에 돌아오지 않는 봄날의 희소성을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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