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데이즈

영화가 끝나고 더 완벽한 날

by 제이스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면, 우리 앞에 놓인 세상도 달라집니다. 만드는 이가 되면, 우리는 그 영역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인생의 해상도 중(유병욱 지음)- 198페이지


가장 좋은 마케팅은 경험을 이끌어 내는 것(engaging)이다. 즉 개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관객과 호흡하는 영화다. 호흡하기 위해서는 영화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여야 한다. 여백이 있어서 관객의 해석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것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퍼펙트 데이가 바로 그렇다.


보기 전까지는 편안함을 주는 루틴에 관련된 영화인줄만 알았는데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 브랜딩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실로 놀라운 PPL 한편을 인식하지 못하고 감상한 셈이다. 퍼펙트데이즈는 묘한 매력이 흘러넘친다.



[영화의 매력 1 - 나의 삶을 대입하고 힐링하게 만든다]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부다. 특이한 직업을 가진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 때쯤 묘하게 주인공의 반복되는 라이프사이클을 따라가게 된다. 그동안에 이상하게도 그의 아날로그적인 삶과 루틴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일어나자마자 가지런히 이불을 개고 양치를 한 후 화초에 물을 주고 잎사귀를 돌본다. 집 앞 문을 열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햇살을 미소로 느끼며, 근무지로 출발 전 집 앞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즐기며 차량에 시동을 건다.


출근길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음악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합이다. 벨벳언더그라운드(The Valvet Underground)의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는 영화 접속에서도 흘러나왔던 음악인데 극 초반 퇴근길에서 흘러나와서 묘한 여운을 준다.


점심시간마다 햇살이 새어 나오는 나무사이를 필름 카메라로 찍는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들르는 목욕탕, 목욕 후 즐기는 지하철 식당에서의 저녁 그리고 조금은 여유로운 주말 세탁이 있고 필름 사진 현상본을 찾아서 정리하는 과정까지 그의 주중과 주말은 하루도 버릴 것이 없다.


모든 과정이 지극히 사소하지만 소중하다. 물론 루틴을 비집고 흐트러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카 니코의 가출로 혼자 누리며 만끽한 평온한 일상이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스탠드 불빛에 책을 읽었던 나만의 공간을 내줘야 했고, 새벽에 조카가 깰 새라 조심스럽게 옷을 갈아입고 화초를 손질해야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 청소부 타카시는 히라야마와는 다르게 일에 열정적이지 않고 늘 여자친구 아야와 깊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한다.


아야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타카시는 히라야마가 아끼는 카세트테이프를 팔아서 데이트 비용으로 쓰고 싶어 하지만 이마저도 돈을 줘버리는 히라야마의 쿨함으로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타카시는 화장실 청소 일을 갑자기 그만두면서 히라야마의 일이 두배로 늘어나게 만들고 퇴근 후의 평온한 일상을 두고두고 파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타카시의 후임이 구해지면서 다시 평화와 안정을 찾고, 그러한 과정에서 무한한 안심과 포근함을 준다.

나의 삶은 수많은 복잡성과 이슈를 해소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반면 히라야마는 변수가 발생하지만 제어가능한 수준 안에서 심플하고 힐링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장면들이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의 매력 2 - 장면을 가로지르는 OST의 향연]

영화 속 총 10곡의 올드팝을 듣는 것도 묘미다. 특히 벨벳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는 영화 접속에서 삽입된 음악이기도 해서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FxlJoTP4BPk

[영화 퍼펙트데이의 OST 모음]


The House of the Rising Sun(애니멀스, 1964년)

Pale Blue Eyes(벨벳 언더그라운드, 1969년)

(Sittin’On) The Dock of the Bay(오티스 레딩, 1968년)

Redondo Beach(패티 스미스, 1975년)

(Walkin’Thru the) Sleepy City(롤링 스톤스, 1964년)

Perfect Day(루 리드, 1972년)

青い魚(카네노부 사치코, 1972년)

Sunny Afternoon(킹크스, 1966년)

Brown Eyed Girl(밴 모리슨, 1967년)

Feeling Good(니나 시몬, 1965년)




[영화의 매력 3 - 열린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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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장면은 히라야마의 출근길을 클로즈업한다. 웃고 있으면서도 눈물짓는 야릇한 표정은 영화가 담고 있는 중의적 감정을 야쿠쇼 코지의 묵직한 연기력으로 커버하고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안온함에 대한 벅찬 감정인지 일상 중간중간 변주를 울렸던 개별 사건들에 대한 회한 때문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해당 장면이 빛난다.


기쁨과 슬픔을 번갈아서 표현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새드엔딩인 동시에 해피엔딩이지 않느냐고 관객에게 되묻고 있는 것 같다. 텍스트로 표현할 수 없는 영화만의 표현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가장 장면이다.



[영화의 매력 4 - 영화가 끝나고 비로소 시작되는 완벽함]


히라야마의 루틴 중 하나인 독서는 잠들기 전 가장 중요한 행위 중 하나다. 어떤 주제의 글을 읽고 있을까 유심히 보다가 책 한가운데 크게 박혀 있는 나무 목(木) 자를 발견해서 찾아봤다. ‘아야‘라는 작가의 ‘나무’라는 에세이였다. 화초를 가꾸고 가끔 공원에서 수목을 가져와 배양하는 일이 취미인 히라야마가 관심을 가지고 볼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책이며 음악이며,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디지털 시대에 휘발되는 콘텐츠가 아닌 물성이 있는 카세트테이프, LP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고, 책도 e-Book이 아닌 사락사락 넘겨 읽을 수 있는 종이책이 가득 채워진 서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 시작된 느낌은 장면을 연결하는 10곡의 팝 음악으로 이어지고, ‘나무’라는 책으로 연결되고 있다. ‘퍼펙트 데이즈’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내게 더 완벽한 날들을 이어나가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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