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껀터
나는 돈보다는 시간이 많은 여행자였다.
언제나 그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가령 여행의 신이 돈과 시간을 양손에 들고 얄밉게도 하나만 고르라면, 주저 없이 시간을 움켜쥘 터였다. 돈이 부족하면 대신할 방법을 여럿 알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면 대책이 없었다. 욕심 같아서야 둘 다 낚아채고 싶지만, 사는 일이 그리 만만하던가. 만약 두 개를 모두 주는 자비로운 신이 있다면 당장 열렬한 신도가 될 텐데.
시간이 많은 내가 낯선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열 손가락을 채우고도 남았다. 건들건들 설렁설렁 산책하기, 그러다 골목길을 헤매기, 호감을 보이는 현지인들과 수다 떨기, 그러다 깔깔 웃으며 셀카 찍기, 모퉁이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사람들 구경하기, 그러다 긴 일기를 쓰기, 마음에 드는 가게들을 천천히 구경하기, 그러다 미처 챙겨오지 못한 옷을 사기…….
내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가 현지에서 파는 옷을 사 입는 일이다. 배낭족 시절에는 팬티 한 장을 더 넣을까 말까로 고민하곤 했다. 눈썹 한 올의 무게라도 부담스럽다는 배낭여행자의 숙명이었다. 지금이야 어깨가 부실해 캐리어 족이 되었지만, 짐을 가볍게 싸는 습관은 여전하다. 도리어 그게 지나쳐서 문제랄까. 여행지에서 가방을 열어보면 늘 입을 옷이 부족하다. 그럼 나는 자신을 5초쯤 원망하다가 옷을 사러 나간다. 현지에서 입을 옷은 현지에서 조달하기. 이때 필요한 건 돈보다 ‘시간’이다. 짧고도 빽빽한 일정이라면, 한가하게 옷을 사러 다닐 여유 따위가 있을 리가. 내 헐렁한 일정에는 이 옷 저 옷 고를 시간이 넉넉했다. 그렇게 산 옷들은 여행 중엔 유용한 실용품이자 한국으로 돌아오면 특별한 기념품이 되었다.
아오자이를 맞추는 것, 다낭에서 내가 계획한 일정은 그거 하나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르면 된다.
1. 다낭 시내의 ‘한 시장(Han market)’을 찾아간다.
2. 이 층으로 올라가 아오자이를 걸어놓은 옷가게들을 두어 바퀴 둘러본다. 무심한 척 걸으면서 마음에 드는 원단을 점찍는 게 중요하다. 처음부터 대놓고 관심을 보이면 주인에게 꽉 붙들리니까.
3. 비교적 순한 얼굴의 주인장과 마음엔 둔 원단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한다.
4. 가격 흥정에 들어간다.
5. 재단사에게 치수를 재고 원단을 맡긴다.
6. 다음날 완성된 아오자이를 받는다(또는 찾아온다).
나는 4번까지 순탄하게 도달했다(고 믿었다). 주인장 아주머니가 브레이크를 걸기 전까지는. 그녀는 내가 고른 원단을 제치고 다른 원단을 들이밀었다. 디자인은 같으나 색깔이 달랐다. 내 건 진한 분홍색에 자잘한 꽃무늬가 들어갔고 주인장이 권한 건 오렌지색이다. “Younger, younger!” 즉 오렌지색이 더 젊어 보인다는 말씀. 실랑이가 벌어졌다. 난 진분홍이 좋다, 주인장은 오렌지가 낫다. 나를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내 취향은 이쪽이거든요. 결국 내가 졌다. 집요한 그녀를 이길 수가 없었다. 전문가의 의견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녀는 탁월한 선택이라는 듯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쁘지만 않아봐라, 확 물러 버릴 테니(내일이면 다낭을 떠나는데 뭘 물러).’ 주인은 다시 한번 “Younger!”를 강조하며 나를 가게 뒤쪽으로 데려갔다. 손님이 산 원단으로 아오자이를 만드는 작업실이었다. 5번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6번까지 이르렀다. 마침내 옷을 갈아입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전보다 ‘Young’ 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고 내린 결론. 아오자이는 예뻤다. 하지만 오렌지색 아오자이를 입은 나는 어딘가 촌스러워 보였다. 역시 진분홍을 골랐어야 했어! 전문가가 아니라 나 자신을 믿었어야 했다. 다음에는 기필코 내 맘에 드는 아오자이를 구하겠다고 결심했다.
두 번째 기회는 껀터에서 찾아왔다. 시내를 산책하다가 아오자이 전문점을 발견한 것이다. 개성 만점의 아오자이가 걸린 걸 보고는 밖에서부터 홀렸다. 기성복 아오자이만 파는 옷가게였다. 다낭에서 맞춘 아오자이는 비교적 전통적인 데 비해 여기는 다양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가득했다. 나는 꼼꼼하게 여러 개를 입어 보았다. 가녀린 베트남 처녀 옆에, 흩날리는 꽃잎이 새겨진, 하늘하늘한 아오자이는 마치 드레스와도 같았다. 오 고혹적이다! 하지만 속이 비치게 찢어질 듯 얇은 옷감이어서 소화할 자신이 없었다. 아름답지만 입고 다닐 수는 없겠구나. 저걸 사면 집안에만 모셔둘 확률이 높았다. 나는 새빨간 바탕에 베트남 처녀의 얼굴이 흰색과 검은색으로 그려진 아오자이를 골랐다. 베트남 분위기가 물씬 나면서도 세련되었다. 나에겐 빨간색이 잘 어울렸다. 이 정도라면 자연스럽게 입고 다닐 수 있겠군.
그러나 여행에서는 아오자이를 입지 못했다. 까닭은 단순했다. 더워서. 햇빛으로 달구어진 도시에서 긴 팔의 아오자이를 입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베트남 여자들은 더위를 타지 않는 모양인지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녔지만). 엉뚱하게도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이 옷들을 입었다. 아오자이를 입고 광화문 네거리를 돌아다녔냐고? 그 정도로 배짱이 두둑하지는 않다. 내가 운영하는 ‘꽃피는여행연구소’에서 모임을 하는 날, 멋스럽게 아오자이를 차려입었다. 베트남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는 자리였으니 이보다 안성맞춤인 드레스 코드가 있을까. 두 벌의 아오자이를, 두 번의 모임 날, 번갈아 입었다. 역시 사 오길 잘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여행 이야기도 그렇지만 특히 나의 아오자이에 설복된 것 같았다. 다들 베트남에 간다면 꼭 아오자이를 사 와야겠다고 입을 모았다.
두 벌의 아오자이는 이제 옷장에 걸려있다. 나는 아오자이를 가져왔지만, 거기에는 베트남에서 보낸 시간도 함께 묻어왔을 것이다. 감탄하고 웃었던, 당황하고 화냈던, 감사하고 기뻐했던, 걱정하고 불안했던, 모든 시간이. 가끔 아오자이를 꺼내 보는 것으로도 그 시절이 딸려 나올 것이다. 어쩌다 아오자이를 입는 것으로도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아마도 아오자이는 내게 옷이 아니라, 타임머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