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수상시장

껀터

by 소율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껀터에 온 본래 목적을 이루는 날. 베트남 남부의 메콩강 델타 지역 중 내가 머물기로 한 곳은 빈롱이었다. 아담한 소도시였고 홈스테이를 할 수 있는 안빈 섬이 관심을 끌었다. 한 가지만 제외하면 내가 껀터로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빈롱의 수상시장은 영 시원찮았다. 내가 본 건 사실 수상시장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제대로 된 수상시장을 못 보고 돌아가는 건 억울했다.


이랬으면 껀터에 오자마자 수상시장에 갈 일이지. 아이러니하게도 껀터를 떠나는 날에야 소망을 이루었다. 계획에도 없던 5성급 호텔 놀이를 즐기느라 그랬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여행이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 여행자의 마음이란 바람 앞의 갈대와 다를 바 없거든. 며칠 동안 느긋하게 껀터 시내를 돌아다니고 호텔에서 약간의 호사를 누린 뒤, 마지막 날 새벽에 까이랑 수상시장으로 향했다. 원래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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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데리러 온 차를 타고 선착장으로 갔다. 머리가 희끗한 독일인 부부, 베트남 아가씨 한 명, 유럽인 두어 명이 같은 팀이다. 아직 한밤중처럼 깜깜한 그곳에는 까이랑 수상시장으로 떠나는 보트가 즐비했다. 우리가 보트에 올라탔을 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노란색 가로등만이 빛났다. 강 위에 떠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보트는 냅다 달렸다. 청년 가이드는 까이랑 수상시장에 대해 손님들이 질문하면 친절하고 세심하게 답변해주었다. 그러는 짬짬이, 옆에 앉은 나에게는 한국에 관해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투어 가이드들이 한국인인 나에게 관심이 많은 건 그동안 하도 겪은 일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그가 무언가를 설명할 때는 성실한 가이드의 얼굴이었다가 중간중간 한국을 궁금해하는 호기심 많은 젊은이의 얼굴로 바뀌는 게 나는 흥미로웠다. 본의 아니게 공적인 표정과 사적인 표정을 동시에 목격하는 사람이 되었달까.


까이랑 수상시장에 가까워질 무렵 하늘은 서서히 어둠에서 벗어났다. 아직 어스름이 남아있는 강물 위로 물건을 가득 실은 배들이 나타났다. 수상시장의 한복판에 도착한 것이다. 어느 방향에서 해가 뜨는지도 모르게 날이 밝자 주위의 배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수박, 파인애플 같은 과일이나 양파, 당근, 감자 같은 채소를 잔뜩 실은 배들 사이로 작은 쪽배가 몰려들었다. 쪽배들은 큰 배에서 물건을 사기도 하고 그들 역시 물건을 팔기도 했다. 남자들은 저쪽 배에서 이쪽 배로 양배추 따위를 던져 날랐다. 여자들은 어김없이 화려한 꽃무늬 셔츠나 바지를 입었다. 꽃무늬여, 영원하라.


우리처럼 투어를 나온 배들과 장사하는 배들이 엉키면 출근 시간의 병목현상과 흡사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꽉 메운 공간이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보트의 운전사들은 묘기처럼 배를 몰아 빠져나오곤 했다. 물론 접촉사고는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행자들은 배가 엉킬 때는 하하하 웃다가 빠져나올 때는 일제히 감탄했다. 나는 그 광경이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현지인의 삶을 방해하지 말고 살짝 끼어들었다가 빠져나오라.’ 그런 게 여행자의 본분 아닌가. 손님이 주인이 되고 현지인은 들러리가 되는 여행지를 만나면 나는 여지없이 속이 불편했다. 외지인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현지인의 삶이 내쳐진 곳들을 발견할 때는 더없이 씁쓸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그들의 ‘진짜 삶’에 아무 관심이 없다면 그저 관광일 뿐, 여행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진짜 수상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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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배는 장사하는 배들을 가로막지 않으면서 요령 좋게 그 사이를 누볐다. 가이드는 손님들이 충분히 시장을 구경하고 사진 찍기를 기다렸다. 그런 다음 파인애플을 파는 배로 옮겨타게 했다. 일종의 이벤트 시간이다. 우리는 축축한 지붕에 앉아 노랗게 깎아주는 파인애플을 하나씩 받아먹었다. 쌀쌀한 새벽바람에는 차가운 과일보다 따끈한 쌀국수가 제격이었겠지만. 다음 행선지에서 쌀국수를 먹을 수 있다니 아쉬움을 달랬다.


배는 수상시장을 벗어나 어디론가 달렸다. 이번에는 좁은 수로로 들어섰다. 수로 양쪽으로 녹슨 양철집들이 늘어섰다. 강바닥 진흙에 각목이나 시멘트로 얇은 받침대를 세워 그 위에 대충 집을 지어 놓았다. 양철 상자에 가까운 집에는 빨래와 가재도구들이 가지런했다. 도시의 마른 땅 한 자락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강물이 닿을 듯한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이마저도 차지하지 못하고 배가 곧 집인 사람들도 있으니. 물 위 배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미얀마 인레 호수에도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에도 베트남 껀터와 빈롱에도 있었다.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거쳐 흐르는 광대한 메콩강은, 가진 자들보다는 없는 자들의 터전인 것 같았다.


수로 한쪽에 배를 대고 뭍으로 올라갔다. 나는 속을 덥혀줄 쌀국수 국물이 간절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나와 찬바람 부는 강 위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라 추웠고 배도 고팠다. 나무들이 울창한 골목을 걸어 도착한 곳은, 실망스럽게도 쌀국수 면발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투어에는 여지없이 수공업 공장 방문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낙심하기에는 일렀다. 빈롱의 까이베 수상시장 투어에서도 쌀국수 공장을 거쳤지만, 그곳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곳은 소규모에다 손님도 우리뿐이어서 모든 과정을 제대로 지켜볼 수 있었다.


커다란 아궁이 위에 솥 두 개를 올려놓고 흰 천을 매 놓았다. 그 모습이 큰 북처럼 생겼다.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쌀가루 반죽 물을 한 국자 떠서 얇디얇게 편다. 뚜껑을 덮어 반죽이 익으면 이때부터 남자의 오묘한 기술이 펼쳐진다. 그는 얼기설기 엮어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 방망이를 들고서 때가 되면 뚜껑을 연다. 그리고는 익은 반죽의 끝부분부터 살살 말아 들어 올린다. 접착제라도 바른 듯 둥근 종이 같은 반죽이 방망이에 척 달라붙어 있다. 그것을 살며시 저쪽 채반 위에 옮겨 놓는다. 반죽이 얼추 마르면 채반째 날라 뒷마당에서 재차 완전히 말린다. 이 작업은 아들로 보이는 청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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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에 반죽을 말아 붙이고 채반에 평평하게 내려놓는 건 세심한 기술이 필요해 보였다. 잘못 하면 반죽이 구겨져 쭈글쭈글해진다. 남자는 우리더러 해보라고 방망이를 내밀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괜찮았다. 옆에서 그가 방망이를 잡고 도와주니 멀쩡하게 잘 되었다. 한 사람씩 방망이 체험을 하고 마른 면을 기계에 넣어 줄줄이 뽑아도 보고. 기다리던 쌀국수를 먹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건? 이름도 희한한 ‘Noodle soup pizza?’ 잘 익은 면도 없고 뜨끈한 국물도 없다. 마른 쌀국수 면을 튀겨서 땅콩과 허브를 넣은 그것은, 바삭바삭한 쌀국수 과자였다. ‘이게 아침밥이라니, 받아들일 수 없다!’


어쨌든 이로써 나의 까이랑 수상시장 투어는 끝이 났다. 나머지 손님들은 다른 일정을 계속한단다. 가이드의 친구라는 동그란 얼굴의 아가씨가 나를 데려다주는 임무를 맡았다. 껀터 선착장으로 돌아온 나는 그녀를 꼬드겼다. 쌀국수나 한 그릇 같이 먹자고. 때마침 선착장 앞에는 문을 연 노점 식당이 허다했다. 그녀와 함께 고대했던 쌀국수를 먹고 나니 모든 것이 완전해졌다. 더할 나위 없는 마무리였어, 라고 나는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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