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 섬
그 애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부레옥잠 융단 옆에서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누구며, 뭐 하는 사람인지, 왜 왔는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멍하다가 당혹해하다가 마지막으로 짜증이 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한국 사람인가요? 나는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요. 당신의 취미는 뭔가요? 뭘 좋아하나요? 직업이 뭐예요?”
느닷없는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갑자기 내 앞으로 사람이 툭 튀어나온 것만 해도 당황스러운데 맥락 없는 이 질문들은 뭐지? 나는 잠시 멍했다가 그를 쳐다보았다. 젊은 베트남 남자였다. 여기는 분명 숙소 안인데 저 사람은 어떻게 들어왔지?
“어… 당신은 이 숙소 직원인가요? 아니면 손님인가요?”
정체를 의심스러워하는 나의 물음에 그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뭐 낮에는 손님일 수도 있고, 밤에는 직원일 수도 있죠. 하하하.”
대답도 가관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얼굴이 더 가관이었다. 멋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꾸미는 저 표정이란! 그렇게 말하면 자신이 엄청 멋지게 보일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저건 흡사 중2병? 나는 느끼해서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쨌든 잠깐만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거절할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 망설이는 사이, 그는 옆의 의자에 앉았다. 나의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어 하는 사이에 휘말렸다.
“한국 사람 맞죠? 혼자 여행하고 있나요?”
“네, 맞아요. 혼자서 베트남을 여행하는 중이에요.”
“오, 대단한데요! 그런데 취미가 뭐예요?”
또 맥락 없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기승전 그리고 취미? 너는 내 취미가 왜 그렇게 궁금하니? 취미는 독서라고 해야 하나, 영화감상이라고 해야 하나.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펜팔을 입으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오글거린다. 아직도 나는 그의 의도가 뭔지 헷갈렸다. 중·고등학생이나 할 만한 질문을 던지는 걸 보면 영어회화를 연습하려고 온 건가? ‘국내파 영어전문가’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사람들의 흔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지나가는 외국인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 영어회화를 연습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의 영어는 유창한 편이었지만 겉멋이 잔뜩 든 말투 때문에 드문드문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아, 그런 얘기는 재미가 없나 보군요? 그럼 다른 화제로 넘어갈까요? 제 친구는 스무 살인데 올해 결혼을 했거든요. 저는 남자가 일찍 결혼하는 게 좋다고 봐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때부터 확실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회화 연습이 아니었어? 설마, 작업 거는 건가? 뜬금없이, 남의 숙소에 불쑥 들어와서, 저토록 촌스럽게? 그럴 리가. 그런데 70년대 영화에서나 보았던 저 느끼한 표정만큼은 제발, 어떻게 안 되나. 무턱대고 ‘결혼’이란 단어를 들먹거리는데도 나는 긴가민가했다.
“글쎄, 난 그게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그래요? 저는 일찍 결혼하고 싶은데. 저는 열일곱 살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스무 살이 넘어 보인대요, 하하하. 그렇게 보여요?”
잠깐, 뭐? 열일곱이라고! 나는 소리를 꽥, 지를 뻔했다. 그리고 그 애의 등짝을 대차게 후려치고 싶었다.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구사한다는 일명 등짝 스매싱을. 숨어있던 꼰대 본성이 마구 터져 나왔다.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허튼짓 말고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진정 네 엄마는 아시니?’ 거의 목구멍까지 이런 말들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흩어지려는 이성을 간신히 그러모으고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야, 난 나이가 많단다. 네 엄마보다도 훨씬 많을걸? 너 여기서 지금 뭐 하자는 거니?”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아이는 더 기막힌 답을 내놓았다.
“괜찮아요. 난 결혼하는데 나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결혼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아이는 눈가에 미소를 잔뜩 걸치고 능글거렸다. 나는 녀석의 정체를 확실히 규정했다. ‘중2병 중증으로 천지 분간 못 하는 어린애.’ 이제야말로 아이를 쫓아낼 시점이었다. 이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오른손은 등짝 스매싱을 날리기 직전이었으니까.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바쁘니 그만 가거라!”
축객령이 떨어지자 쿨하게 대문을 나가는 소년. ‘찔러보고 아니면 말고’의 전형적인 자세였다. 그나저나 이 동네에 사는 것 같은데, 나를 어찌 알고 찾아왔을까? 그제야 스치는 생각. 아침 산책 때문이었어! 내가 산책하는 걸 보고 온 동네에 소문이 난 게야. ‘홈스테이에 한국인 여자 손님이 왔는데~ 블라블라~ 동네를 구석구석 걸어 다니더라~ 블라블라~’ 섬사람들에게 여행자란 오직 두 부류였던 것이다. 안락한 숙소 안에서만 머무는 방콕 족이거나 휙 달려가는 뒤꽁무니만 보여 주는 오토바이족. 이웃 사람처럼 코앞에서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겠지. 골목길을 느릿느릿 기웃거리는 나의 산책이 이곳에서는 별난 모습이었나 보다.
하지만 열일곱 살짜리 작업남이라니! 여행 인생 ‘최연소 작업남’을 만났다. 지금까지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10대라면 아이돌 가수에게나 관심을 보일 나이가 아닌가. 외려 대부분의 성인 남자는 다른 동남아시아의 남자들과 비교해도 훨씬 정중하고 예의 발랐다. 간혹 의도를 가진 몇몇이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와 묻는 일은 있었다.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은데 다리를 놓아줄 수 있겠냐고. 미안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고 대답하면 눈에 띄게 실망하며 사라졌다. 여자 여행자를 꼬여내 한몫 잡겠다는 꿈을, 어른이 된 남자는 꾸지 않는다. 그게 이루어질 수 없는 개꿈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겠지.
빈롱이라는 작은 도시, 그 안에 있는 작디작은 섬 안빈. 따분한 시골의 소년에게 멀리 있는 아이돌보다 동네에 있는 외국인 여행자가 흥미로운 대상이었을까. 나는 소년을 쫓아내는 대신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설득했어야 했을까. 그런다고 내 말을 새겨들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나는 화내느라 미처 해주지 못한 말들이 목에 걸렸다. 그런 작업질로는 결코 너의 인생이 나아질 리가 없다고. 어설픈 작업질을 연마하느니 의미 있는 다른 능력을 연마하라고. 너의 넘치는 호기심과 영어 실력을 그따위에 허비하지 말라고. 소중하고 찬란한 젊음을 못된 어른들 흉내 내는 데에 낭비하지 말라고. 그랬다면 역시 꼰대의 설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