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원댁의 슬기롭지 않은 쇼핑 생활

쇼핑하다 세월 간다

by 소율


제주에 온 지 25일이 되었다. 그동안 가장 많이 한 게 뭘까~요. 곶자왈 산책? 노우. 바닷가 카페에서 멍 때리기? 노우. 올레길 걷기? 노우. 맛집 탐방? 노우. 바로 쇼핑이다. 어째서 사도 사도 채워도 채워도 생활이 편리한 집으로의 길은 멀기만 한 것이냐. 이십 대의 자취방과 결혼초 신혼집을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이다. 오십 중반에 그런 감성과 열정은 무리랍니다. 무조건 내 한 몸 편히 지낼 유용한 공간이어야 한다.


1년만 살 거니까 대충 있자,라고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불편해서 결국 뭔가를 사게 되는 것이다. 이전 세입자에게 침대를 먼저 샀다. 이건 들어가는 날부터 당장 써야 하니까. 보일러가 무려 4일 동안 작동하지 않았던 관계로 전기난로 두 개를 급히 공수해 썼다. 사무용 테이블과 전신 거울도 필수품(작은 거울은 답답해서 나는 꼭 전신 거울이 필요하다네). 전자레인지 역시 없으면 안 됨. 그걸 올려놓을 선반도 추가요. 몇 권 들고 온 책을 놓을 책꽂이와 빨래건조대, 행거도 없이는 못 살지.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구입품이었다.



그러나 계획에 없이 들이게 된 물건도 많았다. 낡아 가운데가 휘어버린 식탁엔 인조가죽 테이블보를 붙였다. 식탁 의자는 앉을수록 허리가 아픈 구조인데 색깔까지 못 봐주게 촌스러워서 의자 커버를 사다 씌웠다. 소파는 정말 사지 않으려 했다. 무슨 소파까지. 문제는 거실에 어디 엉덩이 댈 데가 없다는 것이다. 의자라곤 식탁의자가 유일한데 밥도 얼른 먹고 일어나고 싶게 만드는 놈이라. 결국 2인용으로 단순하고 저렴한 소파를 샀다. 노트북으로 일할 때 쓸 사무용 의자가 없어 소파 위에 두툼한 방석을 얹어 앉으면 꽤 괜찮다. 소파 겸 의자인 셈이다.



결정적으로 고민 끝에 산 것은 바로 비데였다. 그동안 매일 쓰니까 몰랐다. 비데 없는 생활이 이렇게 꿉꿉할 줄은. 버티고 버티다 아주 싼 놈으로 하나 장만했다.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설치를 해야 한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궁하면 다 통한다던가. 비교적 설치가 쉽다는 제품을 골랐는데 정말 내가 뚝딱 설치를 해버렸다! 나 이런 것도 잘하는 여자였어? 숨겨진 장점을 발견하며 뿌듯하게 비데님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뿐인 줄 아신다면 또 경기도 오산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오면 쓸 작은방의 침구가 맘에 걸렸다. 원래는 집에 있던 요 두 개와 이불을 가져왔다. 요 두 개를 겹쳐 깔면 나름 도톰하니까 침대가 아니어도 잘 만 하겠지, 라는 계산이었다. 이사 오고 사흘 뒤에 남편과 아들이 집을 보러 왔다. 코를 고는 남편 때문에 아들은 거실에서 남편은 작은방에서 잠을 잤다. 둘이 찢어지니 요를 하나씩 깔 수밖에. 다음날 아침에 둘 다 잠자리가 딱딱해서 잠을 설쳤다는 거라. 에고.


자타를 떠나 잠자리가 불편한 건 참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가 나로세. 올 때마다 잠을 못 자면 어떡해. 이 집은 나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들의 휴식처이기도 한 것을. 매트리스만이라도 사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1년만 지낼 건데 참, 알면서도 돈을 들이는구나. 나는 좋은 평을 겸비한 저렴이 매트리스를 주문했다. 그럼 새 시트와 이불도 있어야겠네. 가족끼리는 덮던 이불을 쓰면 되는데 친구나 지인에게는 새 이불을 내줘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행원 댁의 슬기롭지 못한 쇼핑사를 적어 보았다(미처 언급하지 않은 소소한 물건들은 제외함). 그럼에도 집안을 둘러보면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닐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좀 무섭네. 처음엔 제주 시내 인근의 '제주용유통'과 '제로마켓'에 직접 달려갔다. 어느 날 쿠팡의 로켓와우 제품이 제주도까지 무료배송이라는 걸 알고는 최애 쇼핑몰이 되었다(무조건 쿠팡입니다).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매일 쿠팡맨을 기다리는 어른이가 되어버렸슈.


이미 완료되었어야 할 도배와 보일러 수리 문제로 거의 일주일을 잡아먹었다. 더해서 텅 빈 집에 살림살이를 마련하느라 남들보다 정착(?)이 늦어진다. 한 달이 그냥 휙 지나가네. 담 주부터는 제대로 제주 라이프를 시작할 수 있으려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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