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원리에는 생활 편의 시설이 하나도 없다. 행원리 안에서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심지어 배달 불가 지역이기까지. 어느 날 배달앱으로 치킨을 시켰더니 가게마다 취소 문자가 날라왔다. 매우 슬펐다. 집을 얻을 때부터 예상했던 단점이긴 했지만. 마을과 가까운 집을 원했으나 어쩔 수 없었으므로.
외진 행원리에서 먹고살려면 옆 동네 세화리로 가야 한다. 차로 15분. 즉 이 구역의 중심지가 바로 세화다. 구좌읍 사무소, 보건지소, 119센터, 파출소, 우체국, 각종 병원 등이 몰려 있다. 세화해수욕장 주변으로 유명 카페와 식당도 즐비하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곳도 바로 세화랍니다.
매달 5일, 10일에 열리는 세화 민속오일장. 5일에 한 번씩 문을 연다. 실용적인 옷, 싱싱한 채소와 과일, 생선 그리고 갓 만든 반찬들이 눈길을 끈다. 사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오일장이 아닌가. 구경하는 재미도 좋고요!
처음 오일장에 갔을 땐 저렴한 가격에 정신을 잃은 나머지, 이것저것 다양하게 사 왔다. 기모 청바지(2만 5천 원)와 몸뻬 바지(5천 원), 포기김치, 도라지 무침, 각종 야채 등. 채소의 기본 단위가 5천 원인데 혼자인 나에겐 양이 많은 편이었다. 절반만 달라고 하면 무례한 걸까 싶어 부르는 대로 샀다. 결국 먹어 없애느라 고생 좀 했지.
두 번째 간 날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딱 필요한 만큼만 구입했다. 잎을 사방팔방 뻗고 자란 노지 시금치, 파프리카 한 바구니, 고구마, 푸른 줄기가 달린 구좌 당근, 어리굴젓. 총 2만 1천 원. 요령이 생겨서 5천 원단위는 3천 원어치만 샀다. 다음엔 생선에 도전해 보고 싶다. 집에서 구우면 냄새가 진동할까 봐 아직 망설이는 중.
제주도의 이마트 격인 하나로마트(구좌농협 중부지점) 또한 없으면 서운하지. 장날까지 기다리기 어려울 땐 언제라도 달려간다. 주로 오일장에서 팔지 않는 공산품(냉동만두와 라면, 우유, 치즈 등)과 돼지고기를 산다. 마트 안에 베이커리도 같이 있어 뭐라도 하나 집어오게 된달까. 살찌는 빵은 되도록 삼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세화엔 다이소도 있다. 집안의 소소한 살림살이들을 이곳에서 제일 많이 샀다. 요즘 제주도의 시골에도 다이소 매장이 엄청 늘었다. 웬만한 건 다 있는 다이소이기에 나에겐 정말 최애 쇼핑몰(?)이 아닐 수 없다. 자잘한 주방용품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활용품은 다이소에서 공수했으니까.
대충 살고자 했으나 없으면 안 되는 물건이 허다했다. 평소 미니멀라이프를 외친 게 무색하게도 지금 나에겐 미니멀도 사치라는 걸 깨달았다. 뺄 게 없는데 뭘 더 빼냐고요. 굶주린 사람이 다이어트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최소한의 물건이 있어야 생활이 유지되는 것을.
제주 시내에 있는 이마트엔 딱 한 번 갔다. 왕복하는 데만 무려 2시간, 아예 날을 잡아야 한다. 물건 하나 사러 가기엔 배보다 배꼽이 컸다. 위의 '하(나로마트)다(이소)오(일장)'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쿠팡 로켓와우를 이용한다. 한 달 동안 쿠팡에 주문한 것이 어찌나 많은지요. 매트리스, 소파, 의자, 비데, 전자레인지, 등 가구와 전자제품도 오케이. 배송비 무료에 딱 이틀이 걸린다. 내가 보기에 이건 제주도에서 축복이나 다름없다.
한 달 전만 해도 새벽 배송에 익숙했다. 굳이 새벽에 안 와도 되는데 하는 미안함과 그래도 정말 편리하다는 만족감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로켓와우 배송이란 수도권의 새벽 배송과 맘먹는 기쁨을 선사한다(쿠팡과 1도 상관없음).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보다 배송비가 무료라는 게 더욱 매력적이라오. 뭔가를 주문하려다 기본 배송비 3천 원에 도서산간 지역 배송비 5천 원이 추가되는 걸 보면 손가락이 굳어버린다. 그나마 배송해 준다면 다행이고 아예 배송 불가인 제품도 상당했다.
집을 집답게, 일상을 일상답게 준비하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필요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샀다면 시간을 절약했을 텐데. 일주일 지내보니 이게 있어야겠네, 이 주일을 살아보니 저게 있어야겠네, 하다가 어느새 한 달. 어쨌든 제주 일 년 살이의 프롤로그를 막 통과했다. 섬 생활에 적응하기 조금 힘든 계절 겨울이지만, 내일부터 기지개를 활짝 켜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