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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17. 2023

헤어스타일과 성질머리

'참을성이 많고 느긋한 사람' 

내가 믿는 나의 모습이다. 가끔 남편과 아들이 내게 성질이 급하다고 하면 콧방귀를 뀌었다. 식탁에서 무언가 먹은 흔적을 종일 치우지 않을 때, 식세기 이모님의 책임자(아들)가 그릇을 소원탑처럼 쌓아두기만 할 때, 일주일 내내 남편이 빨래 건조대를 옷걸이로 사용할 때. 이 상황에서 잔소리를 안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자기들이 불리하면 내 탓을 하지. 



그런데 헤어스타일에 관한 한 성질이 급한 게 틀림없다. 짧은 단발이었던 머리가 사 개월 동안 자랐다. 애초에 층을 많이 쳐놔서 자꾸 뻗치고 목을 찌른다. 머리를 감은 후 항상 안쪽으로 드라이를 해야 했다. 1차 해결책은 펌 하기. 근데 층 많은 파마머리가 관리하기 더 까다로울 줄이야. 바깥으로 돌돌 말으라는데 이쁘게 되지가 않는다. 귀찮음 한 바가지 추가요. 얼굴은 더욱 빵빵하고 네모나 보였다(요즘 살이 쪘지만 분명 머리 때문일 거야). 


몇 날을 고민하다가 두 번째 해결책을 시도했다. 길이를 조금 자르자. 기껏 비싸게 펌 한 것이 아까웠지만 웨이브가 남아있긴 할 테니. 결정을 내리자마자 당장 잘라야 한다. 평소 가던 미용실을 예약하자니 어느 세월에, 하루도 못 기다리겠는걸. 예약이 필요하지 않은 작은 동네 미용실을 찾아갔다. 


나는 분명 턱 선보다 요만큼 아래 길이를 주문했다. 미용사들은 일단 가위를 들면 어째서 빨간 구두를 신은 춤추는 소녀가 되는지. 왜, 늘, 요구사항보다 짧게 잘라 놓는 거냐고요! 뭐야 턱 선에 딱 맞추어 놓았다. 손님의 말보다 전문가의 판단이 맞는다는 건가? 아님 시작된 가위질을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건가?


그다음이 반전이다. 나란 여자, 컴플레인은커녕 찍 소리 한 마디 못한다. 이미 잘린 머리카락을 어쩌겠냐고 쉽게 포기하는 편. 파마 머리를 단정하게 드라이로 펴주는 건 뭐냐. 갑자기 생머리가 되었다. 그러곤 뿌듯하게 거울을 들이미는 그녀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 길이도 나쁘진 않았고, 원래 짧은 단발이 어울리긴 했고. 내친김에 헤나 염색방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30분 뒤에 염색이 가능하단다. 나는 일사천리로 커트와 염색을 끝냈다. 빠른 포기와 빠른 선택의 적절한 예로다.


머리를 볶은지 2주만에 자르고 염색하는 세 가지 거사를 치루었다. 머리 모양이 맘에 들지 않으면 나는 폭주하는 기관차가 되는 모양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아 참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외모지상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는 듯. 그런데 오십 대 아줌마를 누가 신경 쓴다고 이 난리를 치느냐. 내가 나를 신경 쓴다. 남이 보는 나보다 내가 보는 내가 더욱 중요한 사람이거든, 나는. 


집에 와서 남편과 아들에게 물었다. 어떠냐고. 둘 다 "뭐가??"라고 되묻는다. 역시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가족 포함)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머리를 잘랐다고요. 너무 짧지 않아?" "원래 그런 머리 잘 하잖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불도저 같은 하루는 나에게만 의미가 있었다. 나만 좋으면 된 거지. 단 조금만 덜 잘랐더라면 완벽했을 텐데. 아쉬움도 역시 나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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