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변신

"암세포가 나왔습니다"

by 소율


인천공항에서 장례식장으로 직행했다.

다음날이 발인이었다. 그 날부터 열흘을 언니네 집에서 지냈다. 언니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어지러운 집안 살림부터 대충 치웠다. 언니는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지속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일단 공부방부터 접어야 했다. 집안에 가득한 문제집과 책상, 의자, 책꽂이들을 헐값에 넘겼다. 그 사이사이 언니를 데리고 병원에 다녔다. 별 차도가 없었다. 차라리 엄마가 계시는 친정에 가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언니를 엄마께 보내 놓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여행자에서 생활인으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묵묵히 할 일을 했다. 하지만 가슴속에서는 찬바람이 불었다. 아들 역시 혼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학교까지 그만두고 야심 찬 장기여행을 떠난 아이다. 걔는 걔대로 여행에서 얻어야만 할 게 있었다. 끝나지도 않은 여행을 정리도 못 한 채, 느닷없이 불려 와야 했으니. 나만큼이나 아이도 괴로워했다. 아이는 한 달여를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내 아들에게 가혹한 결정을 내렸는지. 결정적인 순간에조차 얼마나 타인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는지. 가장 소중한 나 자신과 내 아이를 보호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면서 말이다.



겨우 집에 돌아와 보니 던져놓은 배낭이 그대로였다. 그러고도 한 동안 배낭을 풀 수가 없었다. 나는 여행이 끝났음을 인정하기 싫었다. 거실에는 두 개의 커다란 배낭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마치 사람처럼.


그 사이 가슴의 멍울은 그대로였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양. 폴란드에 가기 전, 멍울이 조금 신경 쓰였다.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여행 중 한순간도 가슴의 멍울을 걱정한 적이 없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아니면 담대한 건지.


모든 상황이 엉망이었다. 우울증이 깊은 언니는 일상이 가능하지 않았고, 스무 살과 고3인 연년생 조카들은 철이 없었고, 언니의 시댁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았고, 공부방 교사는 상중에 월급을 늦게 준다고 난리를 쳤고, 난 그 모든 일을 조율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언니를 보내 놓고 나자 이제는 좀 나를 돌보고 싶었다. 그제야 내 가슴에 신경이 쓰였다. 일단 검사나 먼저 받아보자. 도대체 이게 뭔지. 정말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최악이었다.


“암세포가 나왔습니다.”


의사는 굉장히 미안한 듯 말했다. 이상하게 담담했다. 그랬구나, 그게 암이었구나. 그저 그런 생각뿐. 머릿속이 하얘지지도 않았고 울음이 터져 나오지도 않았다. 누가 보았다면 “감기네요.”라는 말을 듣는 줄 알았을 거다. 그냥 이해가 됐다. 암에 걸린 이유가 정확하게 이해됐다. 원인을 아는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있나. 그래, 암에 걸릴 만도 하지.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여행을 떠났는데 이미 늦은 거였구나. 아등바등 결혼생활 16년을 견뎌왔는데 결국 이리되었구나. 지나치게 버티고 지나치게 참았구나. 참을 수 없을 지경까지 참았구나. 그래서 이리되었구나. 그런 생각만 들었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유방암이라는 진단은 나보다 그에게 더한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변신을 했다. 벌써 세 번째다. 여행자에서  생활인으로, 다시 또 유방암 환자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