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아시아-폴란드
그때 나는 어둑해지는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2011년 4월 4일. 봄이라고는 하나 아직은 추웠다.
‘내일이면 드디어 떠나는구나.’
어떤 느낌이었더라? 마구 설레지는 않았다. 아직도 준비는 덜 된 것 같았고, 그렇다고 무엇을 더 챙겨야 할지도 몰랐다. 멍하니 누워 있다가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문득 손끝에 무엇인가 만져졌다. 작은 멍울이었다. 물렁거리지도 않고 단단했다. 더듬어 보니 가슴골에서 가까운 오른쪽 유방 끝부분이다. 어제까지도 없던 것이었다. 아니 어제까지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고 해야 하나. 매일 샤워할 때도 전혀 몰랐는데 이상하네. 허나 마음은 곧 내일로 달려갔다. ‘내일, 드디어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마침내 시작이다.’ 가슴의 멍울 따위는 금방 잊었다.
아들과 함께 남아공 케이프타운행 비행기를 탄 이후, 나는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프리카는 예상보다 훨씬 척박했다. 가슴 뭉클하게 따뜻한 사람들도 만났지만 간혹 무지한 사람들의 무례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럴 땐 말도 못 하게 고생스러웠다.
우리는 정성껏 세운 계획을 집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여행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아들은 타고나길 엄마와 궁합이 잘 맞았다. 열여섯 살 사춘기라고는 하나 다른 사내 녀석들에 비하면 순둥였다. 대부분은 손발이 척척 맞았고, 가끔 뻗대는 아이와 다투며 타협하며, 길 위의 날들을 보냈다. 우리는 계획과 루트에 상관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대륙을 옮겨 다녔다. 아프리카에서 나와 방콕에서 쉬다가 네팔로 갔을 때. 네팔 여행의 끝자락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사춘기의 무모함도 사라졌다. 그야말로 환상의 파트너였다.
미얀마에서는 본격적인 여행의 재미에 푹 빠졌다. 장기여행은 이래서 좋다. 온갖 것을 두루 경험할 시간이 많으니까. 짧은 여행은 즐겁기만 할 수도, 망치기만 할 수도 있다. 긴 여행은 그 모두를 포함한 다양한 측면을 경험한다. 험한 일을 겪거나 질려버렸어도 그것을 회복할 시간과 기회가 있다. 마냥 좋기만 한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한꺼풀 들춰 이면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우리 여행의 옹골찬 마무리는 동유럽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동남아 행도 황당하지만, 동남아에서 동유럽도 뜬금없기는 매한가지다. 정말 루트와 경비를 무시하는 엉뚱한 일정. 그냥 거기에 가고 싶으니까. 이유는 오직 그것뿐.
폴란드로 날아갔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국만 돌아다니다 유럽을 가니, 모든 게 신기했다. 사실 이전까지는 유럽 여행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유럽은 돈 좀 있는 애들이 겉멋 부리려고 가는 곳.’ 여행이라면 단연 오지 중심으로 다녀야 제 맛이라고. 여행 준비할 때도 관심은 물가가 저렴한 나라들이었다. 유럽은 애당초 한 번도 고려해 보지 않았다. 이랬던 내가 근 6개월 가까이 여행을 하다 보니 마음이 바뀌더라. ‘유럽도 한번 가보고 싶다’ 쪽으로.
유럽은 이번 여행의 ‘절정’ 일 터였다. 실제로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한 첫날, 바로 알았다. 예감이 적중했음을. 단 2주일을 폴란드에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우리의 여행 취향을 알게 되었다. 유적? 도시? 다 별로다. 우리는 자연을 사랑했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리고 다른 여행자들과 사귀기를 즐겼다. 어딜 가나 일단 ‘여행자 사냥’을 시도했다. ‘여행자 사냥’은 보통 이런 식이다. 딱 봐서 같은 여행자다 싶으면 먼저 말을 건다(이건 주로 내 몫이다).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고 우리도 물어본다(이건 아들 몫).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상대가 맘에 들면 온갖 대화를 나눈다. 이 사냥은 99% 즐거운 작업이었다.
폴란드는 동유럽에서 자연을 철저히 보호하는 나라에 속한다. 유럽 최대의 원시림인 ‘비 아워 비에자’ 숲을 가지고 있다. 이 숲은 옆 나라인 벨라루스까지 뻗쳐있다. 폴란드 여행은 당연히 각지의 국립공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짰다. 처음으로 가본 국립공원인 ‘비 아워 비에자’.
아, 그곳을 떠올리면 향기부터 난다. 숲의 아득한 향기. 국립공원 안의 자유로운 출입구역과 엄격 보호구역 사이에 성근 나무 대문이 있다. 그 안으로 한 발 들어서면 온 몸을 감싸는 향기가 먼저 압도한다. 그저 나무로 된 문 하나일 뿐인데. 안쪽과 바깥쪽의 느낌이 이리 다를 수가. 엄격 보호구역은 가이드 인솔 아래 허락된 3시간 동안만 들어갈 수 있다. 3시간이 6개월 간의 여행 중 가장 빛나던 순간이다.
그곳은 늘 꿈에 그리던 태초의 숲이었다. 아름드리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어있고, 가지 사이로 보석 같은 햇살이 비껴 드는 곳. 가도 가도 거대한 숲이 이어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요정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 숲 어디에나 가득한 향기로운 공기. 도대체 이 향기는!!!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온 몸을 활짝 깨우는 마법의 내음이다. 가이드를 따라다녀야 하는 3시간이 미치도록 아쉬웠다. 아, 우리끼리 천천히 음미하며 다닐 수만 있다면! 여기서 하루 종일 아니 한나절만 그저 고요히 머물 수만 있다면!
폴란드 일정은 원래 한 달 쯤이었다. 실제로는 2주밖에 머물지 못했다. 우리는 폴란드조차 전부 둘러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형부의 부고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니 때문에 돌아왔다. 언니는 형부의 갑작스러운 병세 악화와 죽음으로 힘들어했다. 전화로 전해 듣는 언니 상태가 너무 걱정되었다.
반면 나는 여행의 절정에 서 있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하루 전만 해도 돌아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단순히 돈이 있어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세상에 얼마나 팔자가 늘어졌어? 아들과 둘이서 세계여행이라니. 그것도 몇 개월씩이나!'
여행기간은 딱히 정해놓지 않고 그저 6개월에서 1년 사이를 잡았다. 6개월이든 8개월이든 돈 떨어지면 돌아오는 거다. 사실 경비를 어렵게 마련했다. 꼬박 3년 동안 생활비를 아껴 적금을 들었다. 그게 종잣돈이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경비를 보충할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 짜냈다. 아들과 내가 없는 동안, 두 사람분의 생활비가 빠진다. 그건 집에 있어도 어차피 나가는 비용이므로 그 돈을 매달 경비에 보태기로 했다. 그렇게 해도 총액수는 예상경비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러니 우리가 얼마나 짠돌이 여행을 했겠는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남편은 여행을 찬성하지 않았다. 단지 내 열정을 꺾을 수가 없었다. 아들 역시 여행을 간절히 원하는 상태였다. ‘설마 진짜 가겠어? 저러다 그만두겠지.’ 싶었는데 정말 간다니까 할 수 없이 승복했다고나 할까.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대세를 따랐던 것이다.
여행의 이유
세계여행을 떠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것이 내 평생의 버킷 리스트 0순위라는 것. 못 하고 죽는다면 가장 후회할 목록이었다. 뒤늦게 나이 마흔에 배낭여행에 눈을 뜨고 아들과 함께 3주일 동안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을 감행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생각보다 즐거웠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나는 여행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후로 점점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릴 적 읽었던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그냥 책 속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세계여행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상상외로 많았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못 할 건 뭐냐고.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심각한 이유였는데, 이대로는 살 수가 없어서였다. 멋모르고 살아온 결혼생활 16년. “내 인생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나올 겨.” 주름투성이 할머니들이나 할 법한 말을 내가 하고 있었다. 다만, 더 이상 같은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른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어떤 방식이 되었든,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미 다르게 살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여행의 이유는 '절박함'이었다. 첫째 이유도 둘째 이유도 모두 본질은 '절박함'이다.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무엇이건, 단 하나의 지상명령을 갖는다. “살아남아라!” 살아남는 것, 그것도 건강하게 살아남는 것. 그것이 숨을 가진 모든 것들의 최고 윤리다. 난 떠나지 않으면 죽거나 미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뭘 골라도 최악이다. 떠나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어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확실한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떠나온 내가, 가장 행복한 이 시기에 억지로 돌아가야 하다니. 이제야 여행의 깊은 속살을 조금 들여다 본 것 같은데 여기서 중단해야 한다니. 내 가슴은 털끝만큼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직 여행은 끝이 나지 않았으며, 아직 나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내 머리가 자꾸 말했다.
“그래도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형부가 돌아가셨잖아. 게다가 언니는 또 어쩌고? 나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은 이랬다.
'가슴보다는 머리가 시키는 쪽을 해라.'
머리가 또 말했다.
“돌아가지 않는다면 너는 이기적인 인간이야. 네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데 그걸 외면할 셈이냐? 평생 죄책감 느끼지 않을 수 있어?”
발인이 사흘 뒤였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딱 하루가 주어졌다. 가슴은 작은 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떻게 나온 여행인데, 이게 어떤 여행인데, 아직 원하는 걸 못 찾았는데.’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밤새 미친 듯이 검색 질을 했다. 마침내 한국행 비행기표를 어렵사리 구했다. 우리가 머물던 도시 포즈난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들어가는 항공권이었다. 인천 공항에 내리는 순간, 그때부터 나의 신분은 여행자가 아니었다. 변신 로봇처럼 여행자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생활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