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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가는 너와 드디어, 웃으며 안녕!

아이가 울지 않고 어린이집에 들어간 첫날

by 둥리지

첫째 아이에 비해 둘째 아이는 모든 것이 빨랐다. 첫 외출도, 첫 놀이터도. 그때마다 둘째 아이는 늘 아기띠 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카시트에 대여섯 번씩 앉는 날도 많았다. 유치원도 가야 하고 학원도 다녀야 하는 형님이 떡 버티고 있으니, 둘째도 함께할 수밖에.


그렇다 보니 둘째 아이를 첫째 아이보다 훨씬 더 많이 안았다. 첫째 아이는 섬세한 상호작용과 알록달록 장난감이 가득한 집에서 나와 함께 한 시간이 길었기에, 오히려 안아줄 일이 많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도,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도 안전한 집에 콕 박혀 오순도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둘째 아이는 그럴 수 없었다. 공기청정기가 빨간 불빛을 뿜어내는 날에도 형님은 유치원에 가야 하니까. 바깥세상이 궁금한 형님 손에 리모컨만 쥐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오래 안고 있어서 달아오른 건지, 어디가 아파 열이 나는 건지 구분하기 힘들었던 어느 여름날.


걷지 못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매일 어딘가에 가야 했다. 아기띠에 대롱대롱 매달려 발버둥 치는 아가와 사계절을 함께 했다. 그 발목에 살이 오르고 발바닥에 아치가 생길 때까지 안아 올리고 또 안아 올렸다. 더운 날에는 얼굴 벌게진 아가에게 연신 부채질하며, 추운 날에는 나의 패딩을 양보해 찬 바람 막아가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한 몸처럼 꼭 붙어 보낸 우리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니 자그마치 스무 달이다. 20개월을 틈 없이 함께했던 아이가 올해 3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적응 잘할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처음에는 다 어렵더라고요. 첫째 아이 때도 그랬어요."


그랬지, 참 어려웠다. 어린이집에 처음 가기 시작한 첫째 아이가 신발장에서 울고불고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이집 반대 방향으로만 걷는 아이 달래 보겠다며 요구르트 파시는 여사님께 달려가 요구르트를 사던 날도 있었다. 달달한 요구르트에 빨대 콕 꽂아서 쪽쪽 빨아먹는 아이 옆에 에라 모르겠다 하며 주저앉아있던 장면도 함께 떠오른다. 끝내 울면서 들어간 아이 울음소리 잦아드나 싶어 어린이집 문 앞을 한참 서성이던 모습도 잊을 리 없다.


과연 둘째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남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첫째 아이보다 쾌활하고 외향적인 편이기에 둘 중 하나일 거란다. 뒤도 안 돌아보고 선생님한테 달려가 폭 안겨버리거나, 몸을 활처럼 휘어가며 울음을 토해내거나.


그리고 나는 3월 첫 주에 내 눈으로 확인했다, 우리 아이는 후자에 속하는 아이였음을.




슬픔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제때 잘 울어주는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가 어린이집 문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꽃샘추위와 때늦은 폭설이 다 물러가고 완연한 봄날씨가 우리 앞에 와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어린이집 문 앞에서 강한 울음을 보이는 아이를 보며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분명 교실에 들어가면 잘 논다는데 왜 아이의 울음은 나날이 거세질까. 다른 아이들은 분리가 곧잘 되는 것 같은데 왜 우리 아이만 이럴까, 혹시 내가 너무 끼고 살았던 건 아닐까.


불안감이 덕지덕지 묻은 생각들이 고개를 슬며시 들려고 할 때, 다시 중심을 잡는다. 적응 기간에는 시간이 약이며,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이가 더 불안해한다는 선배 엄마들의 가르침을 주문처럼 외운다. 울음이 끝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선생님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떠올린다. 일과 후에는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뛰어나오는 아이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리고 3월 21일 오늘, 드디어 오늘. 아이가 교실에 들어갔다. 웃는 얼굴로.

몇 번이고 넘어진 끝에 걷는 법을 터득한 아이가 걸음마를 하듯, 저 이제 준비 됐어요 하는 표정으로 아이가 뚜벅뚜벅 교실에 걸어 들어갔다.


아, 오늘이었구나. 웃는 얼굴로 교실에 들어가 엄마한테 손 흔들어주는 날은 이렇게 갑자기 오는 거였구나. 그래 됐다, 이제 그곳이 너에게 편한 공간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야. 엄마와 잠깐 헤어져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어 참 다행이야.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 나에게 어린이집 적응에 필요한 시간을 묻는다면, 나는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교실 앞에서 발버둥 치며 울던 아가가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씨익 웃어주며 들어가는 날이 오긴 오더라, 하며 오늘을 떠올릴 수 있을까.





사랑하는 둘째야, 너의 첫 교실 너의 첫 선생님 너의 첫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을 축하해.

아기띠 속에 담겨 안 다닌 곳이 없었던 지난 계절은 뒤로 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렴.

어쩌면 엄마가 오래 기억해야 할 날은 오늘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곳에서 쑥쑥 자라날 너를 늘 응원할게. 사랑해.

아기띠 속에서 꽃구경한 작년. 이제는 꽃잎도 줍고 꽃이 활짝 핀 공원에서 뛰어놀 수 있는 나이, 세 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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