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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영 Apr 20. 2019

<특별편> 스페인으로 대피하다

2016.04.04 기록

유럽에서 3월은 부활절이 있어서 일주일 동안의 간이 방학이 주어진다. 덴마크의 경우, 부활절에 거의 모든 상점이 가게를 닫고 엄청나게 고요해지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거의 필수였다. (덴마크에 계속 있었다면 진짜 우울증 걸렸을 듯.)


그래서 2월부터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했고, 선정된 곳은 스페인과 프랑스 파리!. 지금까지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고 싶었던 곳을 다녔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스페인과 남들이 다 가는 파리가 도대체 어떤지 궁금해서 그다지 관심 없었던 곳들이지만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덴마크는 3월이 되어도 춥기 때문에 때맞춰 따뜻한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에서 사실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그라나다와 순례자의 길이었다. 그라나다에는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데 터키가 아닌 스페인이라는 '정통' 유럽 대륙 내에 이슬람 양식의 건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호기심을 자아냈고 순례자의 길은 그냥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좀 '걷고' 싶었기 때문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 관계상 스페인 남부는  가기가 어려웠고(스페인 땅덩어리가 생각보다 많이 큼을 실감) 결국 수도 마드리드와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만 가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마드리드. 유럽을 여행하면 최소 그 나라의 수도는 가봐야 한다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바로 스페인이라 할 정도로 마드리드는 볼 것이 정말 없는 도시다. 그래서 처음부터 쇼핑이나 하고 근교 도시 톨레도나 가기로 마음먹었고 마음 편히 촉박하지 않게 여행하기로 했다. 


그래도 애써 비행기표를 끊어 왔으니 뭐라도 얻어가야 하기에 쇼핑하기 전에 미술관부터 들렀다.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과 프라도 미술관에 갔는데 프라도 미술관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했는데 예수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약간의 지식을 선물로 받은 느낌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유럽의 성당을 간간히 가면서 이쪽 종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것이 많이 아쉬웠다. 성당뿐만 아니라 유럽의 미술관에는 예수 관련 작품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역시 내게는 '노잼'이었다. 그러나 설명을 찬찬히 들으며 보니 생각보다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부끄럽지만 드디어 아담과 이브와 예수가 어떻게 엮였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작품은 잊을 수가 없을 듯. 프라도 미술관이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많은 작품들이 그리스 신화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어렸을 적, 만화책을 통해 이 부분은 섭렵했으니 매우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만화책에서 봤던 그림들도 종종 보이고! 그리고 프라도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들처럼 규모가 엄청 큰 게 아니라서 부담 없이 여유롭게 잘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오이오 가이드의 필요성을 확 느낄 수 있었다. 무식한 내게 한줄기 빛과 같았음.


이후 쇼핑을 하러 솔 광장 쪽으로 가서 둘러봤는데 스페인의 물가는 놀랄 정도로 쌌다. 옷값만 싼 것이 아니라 마트 물가도 매우 싸서 북유럽의 물가에 적응한 내게는 살짝 충격이었다. 그리고 마드리드 주거지 쪽을 다닐 때는 생각보다 후미져서 놀랐다. 속으로 스페인 경기가 안 좋다 하던데 사실이군 하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한 듯. 


(서울인 줄. 이국스러움이라고는 1도 없었던 마드리드 골목길)


동시에 마드리드를 다니면서 생각했던 것은 사람들의 모습이 덴마크와 정반대라는 것. 평균 키도 훨씬 작았고 더 이상 지하철에서 금발을 보기가 힘들었다. (덴마크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금발이 수두룩). 심지어 백인들임에도 나만한 키를 가진 여자들이 많아서 놀랐다. 새삼 유럽이라는 작은 대륙에서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음에 놀랐고 이런 식으로 비교하며 여행하는 게 유럽 여행만의 묘미가 아닌가 싶었다. 비슷한 듯하면서 완전 다른. 


마드리드 근교 여행은 톨레도로 갔는데 다들 예쁘다 예쁘다 해서 찾아갔지만 결론적으로 내게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마드리드와 달리 중세 느낌이 들고 이국스럽긴 했지만 내가 가본 니스와 에즈를 섞어둔 마을 같고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다음 도시는 바르셀로나.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달린 후 도착한 바르셀로나는 마드리드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스페인 경기가 안 좋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한 번에 깨졌다. 마드리드와 달리 바르셀로나는 세련된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바르셀로나는 부자 도시라고 한다. 대륙 중심에 있는 마드리드와 달리 바닷가에 위치해 상업이 발달했고 예전부터 부를 많이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카탈루냐가 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지도 알 것 같고.


쇼핑과 더불어 스페인 여행의 목표는 다양한 음식을 '사'먹는 것이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이 목표를 완벽하게 성취할 수 있었다. 전통음식인 해물 빠에야, 꼴뚜기 튀김, 알리 올리오 소스 등과 중국음식인 만두와 버블티까지! 한 끼 먹을 때마다 샹그리아나 맥주와 함께 먹어 술을 안 마신 날이 없었다. 결국 위가 너무 무리를 한탓에 하루는 홍합을 먹고 체했다.(어쩌면 스페인 맥주 Clara로 인한 숙취일 수도) 



사실 마드리드에서도 스페인 전통음식을 먹었다. Morchilla de Burgos라는 음식인데 burgos만 보고 버거겠지 하고 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알고 보니 burgos는 지명이었고 morchilla는 스페인 전통 순대를 일컫는 단어였다. 내가 태어나서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가격은 비싸서 억지로 바삭한 부분만 뜯어서 먹긴 했으나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래도 돌이켜보니 이렇게 실패를 해보면 기억에는 가장 잘 남는 것 같다. 사실 지금까지 동남아 여행이나 스카우트 캠핑들이 기억에 잘 남는 이유는 '고생'했기 때문이다. 나름 편하고 멋진 풍경만 찾아다니는 유럽과 달리 동남아에서는 엄청나게 더운 날씨를 견디며 간신히 여행하고 캠핑에서는 찝찝한 상태로 자거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침낭 안에서 벌벌 떨곤 했으니... 기억이 날수 밖에 없다. 그 당시에는 힘들었을지라도 돌이켜 보면 재밌는 경험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여행하다 보니 뭐 이런 최악의 음식을 먹어도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실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로 유명하다. 그래서 가우디 투어를 신청했는데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지식이 샘솟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곳곳에 건물을 지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샤그라다 파밀리아였다. 




샤그라다 파밀리아는 외부는 물론 내부 모두 감탄을 자아냈다. 외부 조각 하나하나의 의미를 들으며 예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었고(!) 내부는 그 가우디만의 독특함이 잘 녹아있었는데 여 타 유럽의 성당과는 다른 분위기에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투어를 하면서 느낀 게 가우디는 과할 정도로 꼼꼼한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스타일대로 곡선미를 살리며 건물을 지을 때 꼼꼼함이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창문도, 문도, 가구도 다 곡선에 맞게 디자인되어야 쓰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꼼꼼함은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그 꼼꼼함이 전문성이 되는 것이고. 가우디는 건축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중도포기 없이 세심하게 자신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최고'라는 타이틀도 달 수 있었고. 나도 어느 한 분야에 몰두해서 '꼼꼼함'으로 채워 넣고 싶은데 아직까지도 그 분야를 발견을 못했다. 고민의 고민. 


바르셀로나에서도 근교 여행을 했는데 검은 성모가 있다는 몬세라트에 갔었다. 사실 몬세라트가 수도원이라는 사실만 알고 주변 풍경이 멋있다는 말만 듣고 간 곳인데 풍경 자체는 그다지 경이롭지 않았다. 


(효도관광 여행지 같음)


그래도 수도원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성스러운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검은 성모가 몬세라트의 명물이었는데 사람들이 줄 서서 입장을 해서 한 명씩 검은 성모 앞에서 소원을 빌었다. 나 역시 가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이날 벨기에 테러가 난 지라 사지 멀쩡 하게 무사히 집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촛불들이 있었다. 



절에 온 줄 알았다. 절에도 연등이나 기와 등을 통해 안녕을 염원한다. 여기서도 사람들이 초를 사서 똑같이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보며 사람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유럽에 오기 전에 이쪽은 완전히 문화가 반대라서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에 닥치거나 어려움에 직면할까 봐. 그러나 몬세라트에 와서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다 보니 그 걱정들이 해소된 듯했다. 돌이켜보면 기숙사 생활에서도 컨테이너 애들이 특별히 우리와 다르거나 그런 점은 없는 것 같다. 해 먹는 음식들만 좀 다르지. 



결론적으로 스페인은 따뜻한 날씨와 다채로운 먹거리를 즐길 수 있었던 나라였다. 스페인 여행을 통해 내 여행 스타일도 좀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계획을 항상 꼼꼼하게 세웠던 것 같다. 아침 일찍 나가서 하루 종일 알차게 돌아다녀야 되는 스타일이었는데 이번에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아침 늦게도 나가보고 그 순간순간을 즐기려고 했다. 오히려 체력적으로도 더 지낼만했고 체력이 받쳐주니 더 쉽게 즐길 수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바르셀로나는 거의 다 가본 듯! 


¡Adiós! España



'19년 감상평:

진짜 스페인은 또 가야지. 가장 그리운 나라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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