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7 기록
환을 오기 전, 릴리안에게 덴마크의 날씨에 대해 물어봤던 적이 있다. 릴리안은 덴마크는 최소 4월까지는 겨울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안 믿었다. 아무리 북유럽이어도 어떻게 4월까지 겨울이지 말도 안 돼 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릴리안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벚꽃 축제를 하고 있을 때 덴마크의 하늘은 거의 흐렸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곤 했다. 바람도 불어서 여전히 춥고. 그런 와중 덴마크에도 벚꽃이 피었다 해서 오르후스 여행 전에 보러 가기도 했었다. 만개는 아니지만 나무가 더 이상 헐벗은 상태가 아니란 점에 만족하고 온 기억이 난다. 그때도 추웠긴 했다. 그리고 정점은 4월 마지막 주 화요일이었다. (팀플 하던 날이라 정확히 기억) 비바람이 제대로 몰아쳐서 한동안 안 입던 코트까지 다시 꺼내 입었었다.
그런데!
5월이 되자.... 바로 봄이 찾아왔다. 정말 달력을 만든 옛사람들의 지혜에 감탄했다. 이렇게 정확할 수가 없다. 정확히 5월 1일부터 덴마크는 봄이 왔고 지금까지 비 한번 오지 않고 맑은 날씨를 유지하고 있다. 항상 우중충했었는데 이런 개인 하늘을 보자니 당장이라도 어디든지 돌아다니고 싶었다.
일단 5월 1일에 개장한 리비의 Open Air Museum을 찾아갔다. 학교 근처에 있어서 가보고 싶었는데 겨울에는 개장을 안 해서 벼르고 있었던 곳이다. 말 그대로 야외박물관인데 한국의 민속촌과 비슷하다.
(학교에서 박물관 가는 지름길. 가장 좋아하는 길.)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양들.)
(덴마크 초가집)
사실 이때까지 덴마크 전통건물은 코펜하겐에서 궁전들을 본 것이 전부였다. 서민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이제야 보게 되었다. 오르후스에서도 민속촌이 있어서 입장료가 비싸서 갈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안 가길 잘한 것 같다. 왜냐하면 여기는 입장료가 무료이기 때문! 그래서 막 볼거리가 풍성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덴마크 햇살을 즐기며 여유로이 돌아다니기에는 딱 좋았던 것 같다.
박물관을 다 보고 근처에 왕실 별장이 있어서 가봤는데 여기도 초록 기운이 가득했다. 나무가 연두색으로 범벅되어 있는 것을 얼마 만에 보는지.
날씨가 좋으니 학교 근처도 산책을 자주 하고 여러 군데를 찾아다니다 보니 이제 내가 사는 동네, Lyngby는 마스터했다.
그리고 날씨 좋은 날의 시내를 구경하러 나갔었다. 나의 첫 유럽은 코펜하겐 시내다. 그때와 동일한 코스로 가보기로 했다.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어서.
일단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좋으니 다 밖으로 나온 듯했다. 이날이 공휴일이기도 했고. 거리공연도 많았다. 첫 해외여행인 호주에서도 이런 거리 퍼포먼스를 처음 봤었는데 생각해보면 이런 퍼포먼스는 서양 나라의 고유한 특징인 것 같다. 미국에서도 공원에 분장한 자유의 여신상이 군데군데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는 잘 못 볼 테니 하나하나 다 감상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이올린 아저씨. 처음에는 오랜만에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서 반가운 마음에 우두커니 서서 감상했었다. 한 곡만 듣고 가려했는데 가려는 순간마다 아는 노래가 나와서 계속 서있었던 것 같다. 특히 안드레아 보첼리의 Time to say goodbye 연주가 가장 훌륭했는데 듣자마자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서 2 Kr를 바이올린 케이스에 두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 아저씨 연주를 들으면서 타이타닉 OST 도 듣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얼마 안 있어서 정말 이곡을 연주하셨다.
뉘 하운 쪽도 갔는데 역시 분위기는 완전히 반대였다.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3월 말에 갔던 정원도 가봤는데 그때만 해도 황량했었는데...
모두들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너무 순식간에 도시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아 당황스럽다. 날씨 앱을 보면 코펜하겐에 더 이상 '비'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맨 처음 다녔던 코스와 같은 거리를 걸으면서 날씨만큼이나 나의 마음가짐도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그때는 불안감, 부담감, 약간의 후회 등 부정적인 감정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정반대다. 나 자신이 '여유롭고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때는 지도를 계속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보면서 겨우 돌아다녔었다. 이제는 더 이상 구글맵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 목적지를 찾아다니는데 내심 뿌듯함을 느낀다. 코펜하겐도 곧 정복!
'19년 감상평 :
그립다는 말도 부족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