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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Dec 23. 2023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

영화로 마음 읽기 4 - '밀리언달러 베이비'

사랑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 계절이다. 사랑으로서만 가능했던 일이 일어난 계절이기 때문이리라...     



23년간 한 주도 미사를 빼놓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딸에게 매주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편지는 계속 반송되어 온다. 집으로 갔을 때 현관에 잔뜩 되돌아 온 편지를 보며 실망하면서도 그는 그 일을 계속한다. 그가 딸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사랑한다, 내 딸아...’였으리라. 어쩌면 딸에게 그 말을 한번도 전해보지 못한 채 헤어졌을지 모른다.      


그런 그에게 한 여자가 찾아온다. 나이 31살에 권투를 처음 시작하면서 선수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 여자선수는 키우지 않는다며 밀어내지만, 그녀는 묵묵하게 거절감을 견디며 권투를 향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녀 역시 가정에서 외면되고 거절된 존재였다. 그녀의 끈질긴 ‘구애작전’에 플랭키는 넘어가고 그녀를 선수로 키우기 시작한다. 그녀는 부족한 자신을 그대로 받아주는 플랭키를 ‘보스’라고 부른다. 플랭키는 그녀를 ‘모쿠슈라’라는 뜻모를 애칭으로 부른다.


 플랭키의 ‘사랑’을 받으며 그녀안의 모든 잠재력이 나온다. 매경기 KO승으로 타이틀전에 오른다. 챔피언을 때려눕히고 ‘아...이겼구나’ 싶었던 그 순간, 상대선수의 반칙으로 경추를 다친다. 그녀의 유일한 꿈이고 삶의 희망이었던 권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을 받아준 유일한 대상인 플랭키에게 더 이상의 웃음을 선사해줄 수가 없게 된다. 더 이상 살아 있어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한다. 메기는 스스로 죽기를 원한다. 두 번이나 혀를 깨물어보지만 쉽지 않다. 그녀는 ‘보스’에게 안락사를 부탁한다.   

   

시궁창 같았던 내 인생에서 당신을 만나 내가 그토록 원했던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그리고 최고의 자리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돌아요. 그 환호성소리가 내 귀에서 사라질까 두려워요. 그런 날이 오기전에 나를 이 고통에서 떠나게 해줘요     


모쿠슈라     


그녀의 산소호흡기를 떼는 순간, 그녀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지만, 살인죄라는 짐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한다. 32살에 전신마비, 그리고 다리 절단, 가족들의 외면...이 세상에 ‘전적으로 무력한 상태’로 홀로 남게 되는 두려움을 누구보다 공감했던 플랭키...그는 결국 그녀의 산소호흡기를 떼어주고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도와준다. 메기가 죽기 전, ‘모쿠슈라란 나의 사랑, 나의 혈육이라는 뜻이라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듣고 메기는 챔피언 벨트를 얻은 듯한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마치 ‘고마워요, 보스! 당신이 나를 그런 존재로 여겨줌으로 인해 내가  가치롭게 느껴졌어요’라고 답하는 것 같았다. 플랭키를 만나기전 메기는 그저 테이블위에 놓인 몇달러 짜리같은 인생이었다.메기를 만나기전 플랭키는 승승장구하던 삶에서 실패를 겪고, 가족들마저 떠나버린 의미없는 인생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는 영원한 이별을 한다.      



영화 <밀리언달러베이비>에서 플랭키 역할을 맡은 클린트이스트우드는 시종일관 중립적인 표정이다. 시합에서 KO로 한방에 이길 때도 그저 빙그레 웃는 정도이다. 그러나 메기에게 ‘너는 나의 사랑이고 나의 혈육이다’라고 마지막 한마디를 전하는 그 표정은 너무나 강렬하다. 고통과 사랑이 공존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어쩌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며 ‘다 이루었다’라고 하실 때의 표정이 저런 표정이었을까...싶다.     


플랭키가 메기에게 보여준 사랑은 메기의 고통마저 자기 것으로 가져오는 사랑이었다. ‘타인의 고통까지 온전히 끌어안아버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인간을 구원하기위해, 전적으로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그것도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는 기꺼이, 전적으로 무력해 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일이다.


사랑이 가득해보이는 이 계절에 사랑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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