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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Jan 07. 2024

사랑에 답함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 나태주 사랑에 답함    

 

시인 나태주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봐주고,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고, 싫은 것을 참아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니, ‘참아주되 처음에 잠깐만 참아주는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참아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니, 나는 그 ‘사랑’에 자신이 없다. ‘왜 맨날 나에게만 그런 책임을 지우시느냐’며 괜한 중압감과 억울함까지 느낀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었다. ‘아직 어리니까...’하며 예쁘게 봐주고 좋게 생각해주고 참아주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예쁘지 않은 모습, 좋지 않은 모습, 싫은 모습이 보일 때는 참아주는데 한계를 느낀다.


남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젊어서는 그도 일이 바빴고, 나도 육아에 바빴다. 그래서 서로 자세히 바라볼 시간이 부족했다. 그때는 오히려 참아주는 일이 쉬웠다. 그런데 중년이 되면서 일과 육아에서 여유를 얻고 서로를 바라보니 ‘예쁘지 않은 곳’ ‘좋지 않은 것’ ‘싫은 것’ 투성이다. 밖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들을 서스럼 없이 하는 모습에 무례함을 느낀다. ‘그렇게 안했으면 좋겠어...’라고 표현해도, 그는 여전히 ‘무례함’을 고수한다. 그런 모습도 참아 주어야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니 참 어렵게 느껴진다.          




시의 제목은 ‘사랑에 답함’이다. 사랑에 대한 정의로서의 답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랑에 대해 화답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내가 누군가의 예쁘지 않음, 좋지 않음, 싫음을 끝까지 참을 수 있는 것은 그 사랑을 이미 내가 받았고 그에 대한 답으로써 그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이 시가 그토록 무겁지만은 않다.


남편도 나의 ‘예쁘지 않음, 좋지 않음, 싫음’을 참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도 나를 위해 참아주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누구의 사랑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 모두는 큰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에 답을 하며 살아간다. 내가 먼저 주고 나만 맨날 준다고 여길 땐 사랑이 어렵다. 그러나 이미 받은 사랑에 답을 한다고 느끼면 할 만해진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 나의 엄마에게서 사랑을 먼저 받았다. 그 사랑에 대한 화답으로써 내가 오늘날 내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 내가 아내가 되기 전, ‘신랑’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았다. 그 사랑에 대한 화답으로 내가 남편을 사랑할 수 있다. 나의 사랑으로 인해 믿지 않는 남편이 예수님에게 사랑으로 화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라면 그를 사랑할 수 있다.      


2024년은 ‘어떤 사랑’에 대해 화답하는 심정으로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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