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요즘이었다. 마음이 촘촘한 나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만나면 다른 곳에 마음을 쓰지 못한다. 요즘 나의 ‘촘촘한 망’에 걸려있는 문제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도 그 문제를 붙잡고 괜한 씨름을 하고 있다. 아침저녁, 그리고 틈날때마다 기도하고 있고, 그분이 잘 하실 것임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그 문제를 붙잡고 있다.
'최고급세단'에 앉아서 푹신한 등받이에 등도 못 기대고, 머리위에 짐도 턱 내려놓지 못하고 이고 지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답답하다.
예민함은 나의 특기
예민한 기질은 타인을 섬세하게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작은 일에마음을 쓰게 되는 면이 타인을 공감하고 배려할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살필때나 문제를 만났을때 나자신을 힘들게한다.‘좀 둔하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불평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 제자들 여러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이번에 졸업해요~”
수퍼바이저로 수련했던 센터에서 내가 지도했던 학생들이 센터를 마치며 하나둘씩 전화를 했다. 졸업을 하며 가장 감사한 스승으로 떠오른다며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그들을 가르친지 3년 ~ 5년이 흐른 지금, 졸업하면서 내가 떠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웠다.누군가에게 '여전히' 좋은 대상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은 감동이었다.
‘어떤 사람으로 존재했는가...’
수퍼바이저로 지원을 하던 그때, 나는 아들을 결혼시키고 마음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아들에게 쏟았던 리비도를 내가 맡은 수련생들에게 ‘갈아 넣었었다’. 상담사례보고서를 열 번씩은 족히 읽었던 것 같다. 열 번 읽고, 최대한 세밀히 분석하고, 수련생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고 또 다듬었었다. 그때 센터에서 나의 별명은 ‘일타강사’였다. 명료하고 선명하게 배울 수 있게 가르치는 수퍼바이저였다고 했다. 그때는, ‘내가 사범대 출신이어서 잘 가르치는가보다...'했었다.
나는 그저 마음 둘 곳이 필요해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내 머리에 꽂힌 그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그저 잘가르치는 스승으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는 듯했다.
'만나면 한번 꼭 안아주세요!'한다. 그들을 가르칠때 나는 그들을 자주 안아주었기에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도 내 품으로 파고 들었었다. 결국 스승과 제자로 만났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내가 '가르쳤던것’보다 그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던 내 '품'이었던게다.
내가 나의 예민함이 불편하다고 투덜거릴 때 그들은 나의 예민함을, 섬세함과 자상함으로 경험했노라고 말해 주었다. '선생님처럼 알뜰살뜰 챙겨주시고 공감해주신 분은 없었어요... 바로 그 점을 닮고 싶었어요.'. 예민함은 결국 나의 가장 좋은 강점이 되어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를 비쳐주는 거울들
살면서 만나는 여러 인연들을 통해 나는 나를 알아가고 만들어 간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안에서 풍겨나는 향내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출 때 그 ‘거울’안에서 발견되는 내 모습의 총합이 나일 것이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꺼낼 수 없는 또 다른 나...수많은 '거울'들에 의해 끌어올려진 내 모습들을 생각해본다. 어떤 인연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 만남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나를 성장시키려 했었다. 그것은 나의 예민한 기질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싶다. 촘촘하게 느끼고 세세하게 성찰하고 아주 섬세하게 성장하고 있는 나는 '예민함'에게 덕을 보고 있는 듯하다.
촘촘한 생각의 망에 무엇인가가 걸려, 그 문제 하나로 생각 전체가 장악당하고 있는 나에게 ‘당신의 예민함이 나를 성장시켰어요’라고 말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나는 새 힘을 얻는다. 그들이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를 예민하게 알아듣고 섬세하게 소화시킨다. 그리고나니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조심스레 '망'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다.
‘그래...나는 좀 예민한 사람이지...그래서 좀 힘들게사는 편이지...하지만 그로인해 살아나는 사람도 있다고 하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이고지고 있을수밖에 없는 성향이라는 거 알지만, 한달째 몸과 마음을 힘들게하는걸 보니 해결책은 나에게 없는거 같아...이젠 내 옆자리에 내려놓자. 그리고 푹신한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