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종가집이다. 명절이 되기 한달 전부터 엄마는 수산시장, 가락시장을 다니면서 최고의 재료를 구해다 미리 손질을 해두셨다. 때로는 돔베기라는 생선살을 구하려 포항까지 다녀오기도 하셨다. 엄마가 각종 전을 구우시면 온 집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동생들과 나는 제사 드리기 전에 하나 집어먹으려고 기웃거린다. 전이 담긴 바구니에서 하나 몰래 집어 들라치면 주걱으로 손등을 맞는다. ‘제사 먼저 드리고 먹자~’
‘누구의 제사일까...’에는 관심도 없다. 다만 ‘언제 먹을 수 있나...’에 온 관심을 쏟는다. 밤 12시에 제사를 드리는 다른 집과 달리, 우리집은 다행히도 저녁 식사시간 전에 제사를 드린다. 몇날 몇일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들을 제기에 담아 아빠에게 드리면 아빠가 상위에 올린다. 음식이 차려지면 ‘대문을 열어라’ 하신다. 골고루 드시라며 음식마다 젓가락을 옮겨 놓으신다. ‘귀신인데 대문이 닫혀있으면 못 들어 온다구?’, ‘귀신이 진짜루 이 음식을 먹는다구? ’ 궁금한게 많았지만, 부모님들도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는듯 했다.
제사가 끝나면 그토록 기다렸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엄마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냄새에 이미 질리셔서 식사도 안 하시고 막걸리 한잔으로 밥을 대신한다. 그런 엄마에게 누구도 ‘엄마, 수고하셨어요. 진짜 맛있어요!’라고 하지 않는다.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도, 아빠조차 엄마에게 아무말 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엄마의 고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는 제사를 없애기로 결정하셨다. 명절이 즐거운 날이 되기 위해서 한 사람만 고생하는게 부당하다고 느끼신 모양이다. 그런데 올케는 '아버님, 제사는 안드려도 제사음식은 제가 만들어 볼께요'하며 두팔을 걷어 붙였다. 딸인 나보다 더 엄마를 그리워하는 올케는, 명절음식을 준비하시며 엄마가 입었던 꽃무늬 앞치마, 꽃무늬 덧버선을 남대문 시장에까지 가서 사와 결연하게 엄마 흉내를 내본다. 다행히 엄마 옆에서 받아적어둔 메모가 있어서 비슷한 맛이 나긴 하지만, 왠지 2% 부족한 무엇이 있다. 엄마 말씀처럼 조상신의 침이 묻어야 더 맛있어지는 것일까...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면, ‘나는 엄마가 해주신 그 돔베기 전이 먹고 싶어’, ‘나두, 나두, 나두!’, ‘엄마가 해주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과식, 과음하고 그 다음날 먹는 그 김치국밥은 해장국 중에서 최고인데...’, '나는 장모님이 끓여주신 된장찌개가 그리워~'하며 저마다 입으로 기억하는 엄마를 떠올린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고 있으면 경상도 사투리로 ‘맛있쟤?’하며 흐믓하게 웃으시던 특유의 그 미소도 함께 생각난다. '우리가 정신없이 먹고있을 때, 엄마가 우릴 바라보며 하시던 그 말 생각나? 그 미소 생각나'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그리운 엄마음식을 말하면서 이미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촉촉하다. 정작당신은 음식을 만드시느라 막걸리 한잔으로 밥을 대신하셨던 엄마의 그 헌신적인 사랑을 이제야, 이제와서야 느끼고 있는 것이 죄송해서 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