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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Jul 18. 2024

시어머니앞에서 무릎꿇었던 그 날

'증상'으로 만나는 무의식

   

아들내외와 손주가 집에 오겠다고 한다. 손주 볼 생각에 반갑기도 하고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여름손님 맞이를 준비하려니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가족이지만, 집떠난 아들과 며느리는 그저 손님이다.      


아들이 쓰던 방을 내가 공부방으로 쓰고 있었는데, 몇일간 그들이 쓸 수 있도록 쓸고 닦고...화장실 청소, 냉장고 청소, 양념장 수납장 소독, 그들이 와서 쓸 이불 살균등 이틀간 팔을 너무 썼더니 손가락, 손목, 어깨에 통증은 물론이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안돌아가고 눈알이 쑤신다. 팔근육이 너무 적은 나는 팔을 갑자기 많이 쓰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비까지 내려서 더욱 온 삭신이 쑤신다.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행동 속에 담긴 무의식적 소망     


문득 ‘내가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준비하지?’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은 오랜만에 고향으로 오는 길이고, 며느리도 왔다가 갈때마다 ‘어머니와 만나면 뭔가 두둑해지는 느낌이예요...친정보다 편하게 잘쉬었다 가요~'하며 좋아하고, 손주는 취향저격 장난감을 준비해놓고 기다리는 절친 할머니를 보러오는 길이라 즐거운 여행길일 것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이번 방문도 '할머니 보고 싶어~할머니랑 놀고 싶어~'라는 손주의 바램때문에 시작되었다. 그러니 나도 그냥 편하게 그들을 기다리면 좋은데, 나는 마치 감사를 받는 직원처럼 몇일동안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뭔가에 쫒기듯이 청소를 멈추지 못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청소를 하게 되는거지? 멈출수가 없네...’     




혼 3년간 주말마다 시댁에 가서 자고 왔었다. 가풍을 익혀야한다는 시아버지의 명령때문에 지방에서 서울로 매주 올라갔었다. 아버지를 무서워하던 남편은 나의 힘듦에대해 공감해줄 여유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가사일에 매우 서툰 분이셔서 내가 가서 냉장고 청소를 해드려야했고, 이틀동안 무급 가사도우미처럼 '사용'되었다.


아들을 낳은 후에는 손주를 보여드려야한다는 이유로 매주말마다 시댁에 었다. 아기가 사용한 이불은 살균을 위해 햇볕에 널어주십사 부탁을 했었는데,  빨지도 않고 햇볕에 널지도 않은 채 그대로 이불장에 넣어두셨던 모양이다. 일주일후 꺼내 그곳에 아기를 눕혀 재웠는데  눈과 귀까지 퉁퉁부어 올랐다. 아기는 가려워서 계속 울었고, 나도 아기를 달래며 안타까움에 같이 다. 체면이 목숨만큼 중요하신 분이 며느리 볼 면목이 없어진 상황... 시어머니는 자신 안의 오래된 수치심이 발동이 되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생트집을 부리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시누이는 ‘우리 엄마는 화나면 일단 무릎을 꿇어야 풀리신다’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난생처음 누군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때는 화가 난 시어머니가 무서워서 억울하다는 생각조차, 나를 변호겨를조차 갖지 못했다. 그렇게 사건은 유야무야 내 잘못으로 돌려지고 마무리가 되었다. 그때는 조용히 내가 그냥 다 뒤집어쓰는게 가장 쉬운 해결책이라고 여겼다. 그게 내가 살아내온 방식이기도 했다.


시어머니의 사전에는 '내 잘못이다...'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세상 가장 겸손하고 착하다는 생각으로 사신다. 어머니의 성향은 결혼한지 3년만에 파악되었고, 내가 남편에게 억울함을 호소해도 소용없을 것이 뻔하다는 결론으로 그저 참고 넘겼다.


그때 느낀 수치심, 억울함은 심리적 외상이 되었다. 어떤 방식으로 해소되지 못한채 억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


내가 며느리일때는 무의식속에서 잠겨 있다가, 시댁에 갈때마다 몸이 아픈 '신체화'로 방출되었다. 그러다 내가 시어머니가 되어 그때 그 상황에 놓이니, 전투적으로 청소를 하면서, 내 안에 오래 묵었던 긴장과 갈등을 '승화'시키려했던 것 같다.


무의식의 의식화     


‘청소 안해서 손주에게 해를 끼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과 ‘청소 안해서 며느리와 좋았던 사이가 나빠지면 어쩌나...’하는 불안이 나로 하여금 강박적으로 청소하게 몰고 갔다(drive)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시어머니와 다른 사람이야...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수치심의 정도도 다르고...그분의 삶을 들어보면 자존감이 낮을 수 밖에 없었지...그런 분이 자기 수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사건 앞에서,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며느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어...그래서 그 수치심을 며느리에게 투사하고 나는 그에 동일시되어 그분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분의 수치심을 고스란히 떠안았던거지. 그때 나는 고작 25살이었는데도 의연하게 그분에게 좋은 container가 되어 준거야.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 너는 며느리에게 존경받는 시어머니, 자꾸 만나고 싶어지는 시어머니가 될 수 있었어. 시어머니가 주신 오답노트 덕분이야...’     


무의식에 끌려 미친 듯이 청소를 하다가 멈춰서 나의 행동 기저에 있는 여러 가지 압축된 기억과 정서를 풀어내보니, 이제야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왜 하필 이 끈적끈적한 장마철에 오려고 하냐...’하던 마음에서 ‘너희들 덕분에 미루고 미뤘던 냉장고 정리를 하게 되었어~이제 큰 수박 사와도 되겠다. 고마워~’라는 마음으로 변화되었다.


긴장이 방출되고 무의식도 의식화시키니, 부담감은 반가움으로 변화되고, 손주에게 줄 장난감과 아들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재료를 준비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는 프로이드 선생에게 "맞습니다!"라고 화답하며 윙크도 한번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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