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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Jul 24. 2024

그녀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증상'으로 만나는 무의식

처음이었다. 이런 느낌은...그녀를 만나는 날이면 아침에 눈뜰 때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하루종일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저녁 7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만나면 눈도 못맞추겠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느낌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잘 보일까...’,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는 나, 어떻게해서든 그녀의 시선을 한번이라도 더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유치한 나를 이해할수가 없었다.  


 느낌, 뭐지...내 안에 동성애적인 성향이 있었던건가?!’,'사춘기에도 느껴보지 않았던 이런 동성애적인 감정을, 이 나이에, 딸같은 어린 사람에게 느끼게 되다니...' 두렵기까지 했다.    




줌바댄스를 배우러 갔을 때 처음 그녀를 만났다. 내가 본 여자 중에서 가장 근육이 많았다. 한 눈에 ‘우와...말도 안돼...어떻게 저런

허벅지를 가질 수가 있지?!’ 싶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그녀는 우렁찬 목소리로 수강생들의 가라앉은 에너지를 up 시키고 있었다. ‘우와...어떻게 저런 힘찬 목소리가 여성에게서 나올 수가 있지?!’ 나는 계속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힘있는 여성,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녀의 온 몸에는 멍자욱이 가득했다.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나?' 걱정이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사랑해줘요'라는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정신분석을 공부하러 10년가까이 왕복 6시간의 거리를 즐겁게 오가던 나였다. 그 시절의 열정이 지금 내 삶에 필요했다.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는 나를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 타나토스(죽음의 욕동)에 사로잡히지않고, 리비도(삶의 욕동)를 끌어 올려보고 싶어 시작한 것이 줌바댄스였다.      


흥겨운 라틴음악을 들으며, 강사의 우렁찬 구령에 , '강사만 바라보면서' 춤을 따라 하다보면 내가 어느새 강사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강사의 강한 힘이 내 안에 밀려 들어오는 느낌... 땀을 흠뻑 흘리고 심장박동도 빨라지면서 도파민이 한가득 뿜어져 나온 상태가 된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느낄수 있다.


이상화 전이


줌바강습 두 시간동안 나는, 세상에 엄마와 단둘이만 존재하는 것처럼, ‘엄마’의 목소리고 '엄마'만 바라본다. '아...엄마가 너무 좋아~엄마가 너무나 멋져보여~'  눈에는 하트가 가득하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수강생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강사를 보며, ‘어쩌면 저렇게 잘 가르쳐줄까...내가 못하는 바로 그 부분을 '' 자세히 알려주는 걸 보니 강사도 나를 좋아하나봐...’한다. 전적으로 무력하지만, 강한 '엄마'에게 사랑받으니  마치 나도 강해지는 느낌(as-if)을 갖는다.


방학이 되어 줌바수업을 쉬고 있는데, 줌바강사를 마트에서 우연히 보았다. 줌바를 배울 때 강사에게 느꼈던 그 느낌이 느껴지질 않는다. 마트에서의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30대 여성일뿐이었다.


'왜 가슴이 움직이질 않지?'그런 내가 참 수상했다. 이렇게 쉽게 사라질 마음일거면서, 지난 석달동안 내 마음안에 온통 그녀뿐이었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줌바, 그리고 엄마     


엄마도 60세가 되면서 줌바댄스, 라인댄스, 스포츠댄스를 배우러 다니셨다. 온갖 빤짝이 댄스복을 사들이셨다. 발목을 절뚝이면까지, 줌바댄스를 포기하지 않는 엄마가 주책스럽다고 느껴졌다. 삶의 즐거움을 찾아 애쓰시는 엄마를 공감해드리지 못한 못된 딸이었다. 엄마는 77세에 춤추러 갔다가 집에 오시는 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리운 엄마


무의식은 속성적인 사고를 한다. 속성이 유사한 것들을 압축시켜 엉뚱한 하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꿈에서 등장하는 특정인물은 꿈자아의 속성적 사고에 의해 생성되 경우가 많다. 


나에게 줌바강사가 그런 대상이었다. 줌바--> 엄마, 체대출신, 강한 힘, 큰 목소리...게다가 원가족에서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유사점이 있었다.


삶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워졌던 그때,  줌바강사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엄마와 줌바강사, 둘 사이에 모종의 연결이 있었고, 무의식은 줌바강사를  '엄마'로 경험시키고 있었다. 


줌바강사를 통해, '엄마'를 다시 느끼고 있었나보다.  실력있고 젊은 다른 수강생보다 나를 더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 시절 동생에게 빼앗겼던 엄마의 사랑을 되찾아온 듯한 느낌을 즐기고 있었나보다.


이제보니 춤을 추러 간 것이 아니고 꿈을 꾸러 간 것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엄마'를 만났고, '엄마'와 하나가 되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토록 그 시간이 기다려졌던 것이고 그 시간을 통해 '세상 살맛'을 회복했던 것이다.      


내 안에 잠재된 동성애적인 성향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줌바를 좋아했던 그 엄마, 힘있고 화통했던 엄마를 다시 회복시키고 싶었던거였다.  힘있는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싶은 소망을 충족시키고자 했던거였다.


그동안 줌바강사향한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니, 고민없이 다음 학기 재수강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녀를 그저  잘가르치는 줌바강사로, 평범한 30대 여성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운 엄마와 분리시킨다면, 다음 학기에는 강사와 편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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