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음에 결혼해서 애들 다 키워놓고 이젤 앞에서 그림 그리고 있으면 그 모습이 얼마나 우아하겠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렇게 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중3 딸을 화실에 보내시며, 40년도 더 남은 그 시간을 대비시키셨다.
엄마의 인생이 그리 편안해보이지 않았던 나는, 엄마의 꿈을 대신 이뤄드리고 싶어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고3까지 그려보았지만, 도저히 나의 적성에도, 재능에도 맞지 않아 그림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의 꿈을 대신 꾸다가 대학에도 못들어가게 생겼던 나는, 난생 처음 엄마의 뜻을 거슬렀다.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그림 말고 공부로 들어갈테니, 그림만 그만두게 해줘...’.
엄마가 보시기에도 나의 그림 실력이 대학에 들어 갈 실력이 안되어 보이셨던지, 순순히 미대를 포기하게 허락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원하는 그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심리학과에 가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영문과에 가기를 원하셨다.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 전공을 모두 포기하고, 엄마의 뜻에 따랐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엄마가 꿈꾸시던 바로 그 시간이 왔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다 키웠다. 그리고 지금...나는 우아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심리학도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나의 연구소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개업예배에서 목사님께서 ‘이곳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꿈이 회복되는 꿈의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축복해주셨다. 목사님의 축복은 나에게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꿈꾸는 자였던 요셉은 형들이 그를 노예로 팔아넘기면서 인생길이 험난해졌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의 총리자리에까지 오르며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을 이루었다. 나 역시 늘 지쳐있는 엄마에게 순응하느라 내가 원하는 인생길을 멀리 돌아서 왔다. 돌고 돌아왔지만, 결국 나는 나의 꿈을 이루었고, 나를 향한 엄마의 꿈까지 이루었다.
상담을 마치고, 머리를 비우려고 그림을 그리다, 문득 40여년전 엄마가 하셨던 그 말씀이 떠올랐다.
‘결혼해서 애들 다 키워놓고 이젤 펴놓고 그림 그리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우아하겠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프랑스 정신분석가 라캉은 ‘어린 시절 형성된 욕망의 구조는 변하지 않고 변주된 형식으로 반복될 뿐이다’라고 했다.
어린 시절, 아픈 동생들 간호하느라 늘상 지쳐있던 엄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를 웃게 해 드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오늘까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로 살게 되었다.
꿈은 꿈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곳에서 새로운 꿈을 꾼다.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자신의 꿈을 뒷전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지금이라도 꿈을 회복하도록 돕는 자로 살고 싶다는 꿈... 목사님의 축복대로 나의 연구소가 꿈의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 오늘의 이 성취는 엄마의 꿈꾸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엄마, 보고 있지? 이젠 웃고 있지? 엄마가 그토록 원하는 그 우아한 모습으로 살고 있어...
그때 억지로라도 배웠던 그림 덕분에 오늘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네...나 대신 오늘을 꿈꿔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