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남해 한 달 살기 시작, 두 모양 그 각자의 한 달 살기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돼."라고 말하는 이의
기꺼이 내어주는 혹은 같이하지 못하기에 포기하는 마음과 같이 내가 헤아리지 못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짝꿍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도 될 용기에 대해 자주 말한다.
나는 신난 치어 마냥 버킷리스트를 나불거렸지만,
생각해보면 몇 가지는 내가 실제로 이행했을 때
짝꿍의 생활과도 깊은 영향이 있는 것들이었다.
'1'달이라는 별 거 아닌 숫자 하나로 비약되는
한 달 살기의 실제 시간은 24h x 31일 = 744시간이다.
숫자를 달리 환산한 것뿐인데 '1'달과 '744'시간은 도저히 동의어로 보이지 않는다.
'1'이라는 얼마 안 돼 보이는 숫자에만 매달려 있던 나에게 짝꿍의 한 마디가 크게 다가왔다.
"자기는 남해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 나도 우리 집에서 나 홀로 한 달 살기 체험을 하는 거네. 너무 길다."
짝꿍에게 나의 한 달 살기는 '744'라는 숫자로 다가온 것이다. 744라는 숫자만큼 구체적으로 무슨 시간인지 영~ 감이 잡히지도 그냥 무수히 지난한 시간으로 체감되는 거겠지- 짐작해 본다.
잠시 사람들과의 거리 두기를 하러 간 여정이언정,
올해 서로가 '0촌'이 된 만큼
가족끼리 거리는 두지 말자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짝꿍의 장난스러운 말에 조금은 진심이 느껴진다.
도저히 나눌 수 없는 '0'촌의 관계가
잠시 2 인분의 744로 서로가 쪼개지는 만큼
다짐거리 하나가 생겼다.
이제 도시의 마천루에 휘영청 거려서
더는 현기증도 느끼지 말고,
자율신경실조증 판정도 받지 않는
건강한 나로만 돌아오자고.
그것만 하더라도 짝꿍은 744의 시간을 훗날에
단 '1'의 숫자로 과감하게 축약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본인도 기꺼이 어디론가
한 달 살기를 훌쩍 떠나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큰 그림이었다. 짝꿍아 후후후)
중요한 건 하나인 우리가 쪼개져도
그 마음들을 당연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응원하는 사랑이겠지.
한 달 살기를 위한 장보기에 나섰다.
"남해 한 달 살기는 미니멀 라이프가 될 거야!"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장바구니를 들려는 나에게 짝꿍은
얼굴을 좌우로 흔들며 도리도리를 시전 한다.
요조 님의 <만지고 싶은 기분>에서 용기를 얻어
스스로에게 혹독하지 않더라도,
'느슨한' 비건을 시작해 보고자 야채만 주워 담는다.
나의 새로운 미션은 응원하나,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지 하며 이것저것 사다 보니 13만 원이 훌쩍 넘었다.
(소비의 미니멀리즘은 아무래도 실패한 거 같다!)
'굴소스 하나면 뭐든지 다 볶아먹을 수 있지.' 하다가 '케첩은 못 참지.'로 가고
케첩을 들으니 ‘삶은 감자에 케첩 찍어먹어야지.' 하다가 어느새 고구마 한 박스도 담겨있다.
짝꿍은 너무 많이 산 거 아닌가 툴툴 거리는 나를 보고
절대 아니라며 냉장고에 넣으면 생각이 달라질거라며숙소에 가면 생각이 바뀔 거라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넣어보니 아니 웬걸,
장바구니에는 가득 차있던 마음이
냉장고에 채워 넣으니 영락없이
못 먹고 애처롭게 살 예정인(?)
한 달 살기 나그네의 꼴이 나온다.
이래서 담는 크기에 따라
내가 가진게 달라 보이고 뭐 그런 건가.. 하면서
역시 상대주의 및 비교질은
인생관의 최악수야- 중얼거렸다.
남해 터미널엔 짝꿍이 가려는 종착지가 없어
사천터미널에 짝꿍을 내려주었다.
서로가 상대적으로 길게(?) 떨어져 있던 건
내가 영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시기 후엔 2번째다.
걱정이 되지 않으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은 참 요란하다.
슬픈데 슬프지 않다.
오버하면 뭐 비운의 연인으로 전락하는 거 같아
태연하게 짝꿍을 터미널에 내려줬다.
터미널에서 같이 기다려준다는 짝꿍도 쿨한 척,
나도 쿨한 척 차창 밖으로 손인사를 했다.
그리고 난 곧바로 삼천포도서관로 향했다.
짝꿍은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삼천포 도서관을 지나간다며 사진 한 장을 찍어 보냈다.
'우린 쿨함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사람들이야.' 하고
한 참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