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정수 Jan 29. 2021

자꾸 '논란'과 '우려'로 끝나는 제목들

우리는 정치가도, 엔터테이너도 아닌 '사관'이 될 것 같다

뉴스 제목은 '패러디하기 쉬운' 문체에 속한다. 중국 음식을 시켜먹을 때, 내가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자고 한다 쳐보자. 같이 있던 친구는 설령 시사의 'ㅅ'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즉시 "김 모 씨 알고 보니 탕수육 부먹파로 드러나 충격…" 식으로 그 자리에서 '뉴스 제목' 스타일 속보를 때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충격, 경악, 알고 보니… 는 신문에서는 거의 안 쓰는 표현들이다. 지면에선 한 글자 한 글자가 아까운데, 이게 놀라운지 안 놀라운지, 우리가 알았는지 몰랐는지까지 억지로 따져줄 여력이 없다. 어쨌든 중요한 건, 제목 특유의 그 어투들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린 항상 돌려 말한다

예전에 들은 편집국장의 지시 혹은 가이드라인이 여러 가지 있었지만,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라면, 되도록 '논란'을 붙이라는 것이었다. 부제가 아니라 눈에 잘 보이는 큰 제목에 달라는 지시. 누가 봐도 반론의 여지없이 문제 되는 것이 아닌 이상은 '논란'을 붙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찬반이 갈릴 수 있으면 '논란'을 붙이고, 설령 우리가 처음 제기하는 문제라고 하더라도 기왕이면 '논란'을 붙인다.


이를테면,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입양 전 위탁 제도를 이야기하다가 실언했을 때도 그랬다.

“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또는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입양 자체는 위축시키지 않고 활성화해 나가면서 입양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 1월 18일)

대통령의 인식이 진실로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실언이었다. 앞뒤 말이 중언부언 길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실수로 혀가 꼬여서 튀어나온 발언이 아니라, 나름대로 생각을 갖추고 한 말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비판받을만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매체들은 '봐주기' 없이 대통령 발언을 때렸다. 우리는 아니었지만.



기사도 그렇게 쓴다. 주관 뚜렷한 몇몇 신문들은 이게 사설인지 칼럼인지 아니면 (설마) 기사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자기주장이 확실한 기사를 지른다. 우리는 문제를 지적할 때 조차도 "문제다"라고 쓰지 않고, "일각에서는 ~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며 돌리고 돌려서 말한다.


과도한 신중함인지, 온당한 중립성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성급했던 자들은 후회할 것"이라고…

편집부는 현장기자들보다 데스크 이상급 기자들과 이야기할 일이 많다. 여기에 자꾸 있다 보니 연차 많은 선배들에게 함부로 대드는 게 습관이 됐다. 언제 한 번은 높으신 분께서 애로사항이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우리의 (좋게 말해) 신중한 편집 지침이 정말 맞는 방향인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부에서도 경쟁지들보다 다소 재미없다는 아쉬움이 팽배하다는 여론을 돌려 이야기하면서.


그때 그는 "허, 참"같은 소리도 하지 않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세상의 진리를 똑똑히 말해주마'라는 어투로 대답했다. 지금 보기엔 답답해 보이겠지만, 시간이 지나 보라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 보면 누가 옳았고 누가 성급했는지 드러날 것이라고.


나보다 세상을 오래 산 사람이 마치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하자,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요새도 계속해서 그러한 편집지침을 받는다.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이게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직접적으로 평가하지 말아라. 그럴 필요가 없고 위험하기도 하다. 독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보여줘라. 물음표는 괜히 달지 말고, 발언은 따옴표 안에 넣어라…  같은 것들이다.




언론사를 유형별로 나누자면

언론사들을 아마 성격에 따라 나누자면 엔터테이너/정치인/사관(史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콘텐츠로 사람들이 많이 클릭하게 만드는 것이 최고인 곳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움직이면 세상이 따라오게 돼있다"며 플레이어 역할을 자임하는 곳도 분명 있다.


반면 "치우침 없이 써라" "문제 되지 않게 써라"를 주문처럼 반복하는 곳도 있다.

적을 만들지 않고, 어느 쪽과도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정말로 (누군가는 코웃음을 치겠지만 나름대로는) 역사의 비교적 공정한 기록자가 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오래된 매체가 오래될 수 있는 비결 같은 것일까? 그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까.




#커버: V30.

매거진의 이전글 기자정신 그리고 '얘기되는 것'의 덫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