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나라에서도 가장 큰 호수

라펜란타의 사이마호, 라플란드의 이나리호

by 홍정수

'1000개의 호수가 있는 나라'라고 불리지만, 실제 핀란드에는 20만 개에 가까운 호수가 있다. 국토의 7할은 숲, 1할은 호수이며, 인간이 차지하는 공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빙하기가 남긴 아름다운 흔적이 모든 곳에서 반짝이는 나라. 호수는 핀란드 영토의 심장이자 정체성과도 같은 것이다.




가장 큰 보석, 사이마호수

라펜란타(Lappeenranta)의 사이마(Saimaa) 호수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호수다. 여러 작은 호수들이 연결된 구조로, 둘레(1만 5000km)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 호수 안에 있는 크고 작은 섬은 무려 1만 3000여 개. 월스트리트 저널이 2014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TOP5'에 들기도 했다.

오두막 주인장이 알려준대로 더블카약을 타고 노를 저어 1시간 정도 호수를 가로질러 오두막에 도착했다.


러시아 국경에 닿은 지역 중 가장 남쪽에 해당하는 사우스 카렐리야(South-Karelia)에 위치한 라펜란타. 헬싱키에서는 2시간(220km),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1시간 반(190km)이 걸리니, 오히려 러시아에서 더 가까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매년 러시아 관광객이 무려 160만 명이나 라펜란타에 방문한다.


사이마호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여름. 여름에는 카약과 카누를 타고, 겨울에는 (체온을 보호하는) 드라이수트를 입고 호수의 얼음과 함께 둥둥 떠다니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사이마 물개도 살고 있다. 개체수가 380마리에 불과하지만 다행히 요즘엔 다시 늘고 있다. 봄여름에는 운이 아주아주 좋으면 하루에 20~30킬로미터씩 수영하는 이 귀여운 물개들이 누워서 일광욕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봄여름마다 물개들이 자주 나타나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인터넷에서 라이브로 영상 중계를 하기도 한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은 곳은 muukonsaari 섬의 캠핑센터. 사이마호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1시간 가까이 호수를 가로질러 더블 카약을 타고 갔다. 호수가 너무 넓어서, 숲으로 둘러싸인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느낌! 물이 너무나 맑아서, 혹여나 내가 이곳에 빠지면 물이 더럽혀질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우선이었다. 그냥 떠마셔도 될 만큼 깨끗하다고 듣긴 했지만, 그 정도로 목이 마르진 않았다.


여름 오두막이 있는 곳 가장 입구에는 사우나(!!)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여름 별장(summer cottage)은 전기도, 수도도 없는 문자 그대로 오두막(cabin)이었다. 사이마호 근처에는 무려 7만 개에 가까운 여름 별장이 있다. 호화로운 빌라도, 우리가 간 곳처럼 자연 그대로의 오두막도 있다. 물론 겨울에 와도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지만, 호수를 즐기기에는 여름이 제격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름 별장이라고 부른다. 여름휴가가 일반적으로 1달이 훌쩍 넘어서 그런지, 핀란드의 꽤나 많은 가족들은 나라 어딘가에 자신들만의 여름 별장을 갖고 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새큼한 레드커런트. 아무리 따서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핀란드의 숲에는 어딜 가나 이 레드커런트를 찾을 수 있다. 처음에 헬싱키에 도착했을 때에는 사방팔방에서 딸기와 레드커런트를 팔고 있어서 너무 신기했는데, 나중에는 "저걸 돈 받고 팔다니..."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흔한 과일이었다. 숲 속의 빨간 보석 같은 레드커런트를 오두막에 있는 동안 심심하면 따먹곤 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신 맛에 머리가 쨍 해지기도 했다.


저녁은 호수에서 잡은 작은 물고기(무이꾸Muikku)구이와 샐러드! 전기가 없어서 장작으로 굽고 촛불로 불을 밝혔다

호수에서는 낚시도 즐길 수 있다.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지만 이날 저녁에 먹은 건 열빙어 정도 크기의 무이꾸 생선이었다. 굽거나 튀기거나 삶아 뼈째로 먹는데, 핀란드에서는 아주 흔한 생선이다.


전기와 수도가 없는 삶은 굉장히 오랜만이라 생소하기도 했다. 미리 안내를 받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덕분에 의도치 않게 휴대폰도 거의 끄고 살았다. 화장실도 결코 재래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친환경적(!!)이었다. 깊이 판 구덩이에 볼일을 보고, 옆에 있는 재(또는 흙)를 퍼서 덮는(!!) 식으로 돼있었다. 의외로 냄새가 나지 않아 흥미로웠던 기억이... 물도 호수에서 떠온 물을 담아와서 사용했다. 나는 사정상 사우나는 즐기지 못했지만, 사우나도 꽤 괜찮았다고 한다. 몇 명은 사우나를 하고 난 뒤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해가 지고 난 뒤에는 소시지 굽기와 인생의 공통점을 배웠다.

해 질 녘에도 완벽한 색감과 대칭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완전히 깜깜해진 뒤에는 모닥불에 소시지를 구웠다. 배가 고파서 소시지를 불 가까이 대자 주인장이 손을 저으며 정석을 알려주었다. 불에서 좀 멀어 보이는 곳에 벽돌로 소시지 꼬치를 고정시켜두고 한참을 기다린 뒤에, 마지막에 다 익으면 겉만 좀 더 그을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웃는 얼굴로 그가 덧붙인 말은 "Good sausage takes time. It's like making love." (...!!!) 그리고 그 맛은 정말로 기가 막혔다....!!! 불이 꺼져갈 때쯤엔, 호일로 잘 싼 고깃덩어리를 불씨를 간직한 장작 안에 넣고 밤새 익혔다. 뜨끈한 잿더미가 9~10시간 정도 품은 뒤 다음날 점심때쯤, '이보다 부드러울 수 없는' 고기가 나왔다. 슬로 쿠킹의 정석을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한 시간 정도 배낚시를 하고, 호숫가를 따라 거닐었던 다시 한 시간쯤 트레킹을 했다. 오로지 자연의 불빛과 호수의 물에만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왜 그렇게 안심스러웠는지. 완벽한 서비스를 자랑하는 5성급 호텔의 사치 속에 몸을 뉘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있는' 호숫가의 하룻밤은 더 나은 서비스, 더 좋은 시설만을 갈구하는 현실에서 잠시 떠나 있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라펜란타 요새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교회

라펜란타에 들른 김에 인근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라펜란타 지역은 오랫동안 스웨덴에 속해있긴 했지만, 어쨌든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에 있기 때문에 동서갈등이 심했던 지역이다. 지리적 특성상 요새의 역할이 중요했던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의 특성들이 오묘하게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1785년 만들어져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러시아 정교회 교회(Orthodox Church)를 만날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라펜란타 시 홈페이지의 소개 참고.




겨울의 반짝임, 이나리호

이나리의 아주 로컬한 'Bar Papana' 앞에서 본 이나리호의 극히 일부 모습.

라플란드의 이나리에 있는 이나리 호수는 북부에서는 가장 크고, 핀란드 전역을 기준으로는 3번째로 넓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는 마치 이나리 호수를 거대하고 넓은 바다처럼 보이게 만든다.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92미터에 이른다. 핀란드의 겨울 호수, 특히 라플란드의 겨울 호수는 꽝꽝 얼었을 때 제 매력이 나타난다. 단단한 얼음으로 뒤덮이고 눈이 쌓인 호수는 문자 그대로 라플란드의 보석이다. 사미(Saami)의 바다'Sámi sea'로도 불릴 만큼 이 지역의 전통적인 주인, 사미 인들의 생명의 근원과도 같은 곳이다.


피안의 세계를 넘어다보는 듯한, 물과 얼음, 하늘과 호수의 경계

이번에 방문했을 때에는, 최저기온이 영하 20도일 정도로 추위가 깊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얼음이 채 얼지 않았다. 지표면은 눈 덮인 사막과도 같은 반면, 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이색적인 모습은 신비감을 더해준다. 그 어떤 소음도 없는 이곳에서는 순록의 발자국 소리, 물의 찰랑임, 그리고 이따금 지나가는 차 소리 말고는 조금도 방해받지 않고 평화를 즐길 수 있다. 12월이 지나면 눈 위를 트레킹 하거나 얼음낚시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당신이 추위를 충분히 버틸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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