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먼저다" Y-foundation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숙인이 늘었다. 유일하게 줄어든 나라가 핀란드다. 한두 명도 아니고,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전체 노숙인의 35%가 줄었다. 전국적으로 6600명의 노숙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장기 노숙자는 1900명 수준이며, 84%는 일시적으로 친척이나 지인에게 얹혀살고 있다. 노숙인 지원단체인 Y재단(Y-foundation, Y-Säätiö)의 'Housing First' 원칙에 기반한 강력한 주거지원대책 덕분이다.
"아파트는 안전을 뜻한다. 나는 이제 돌아갈 집이 있고, 나는 이제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다(I am someone again, I am me)" 이 곳에서 주거를 지원받은 한 59세 여성의 소감이다. 1985년 출범한 Y재단은 현재 노숙인이거나 노숙인이 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저렴한 집을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50개 이상의 지자체에 1만 6650채의 집을 이미 공급했다. 새로 짓기도 하지만, 민간영역에서 사들여 임대하기도 한다. 자칭 핀란드에서 네 번째로 집이 많은 집주인(the fourth largest landlord)이라고 한다.
제1원칙은 '집이 우선(housing first)'이라는 것. 교육도, 단계별 재활치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이라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Y재단만의 것은 아니다. 전국의 노숙인이 2만 명 수준에 이르던 1980년대, 핀란드는 정부차원에서 housing first 원칙 하에 노숙인 대책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전국의 지자체들과 NGO들이 동참했다. Y재단은 헬싱키시, 에스포 시, 핀란드 적십자사, 핀란드 지자체협회 등 11개 단체가 힘을 합쳐 1985년 출범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원칙이다.
집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사회적인 권리다.
일반적인 주거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즉, 임시 쉼터가 아닌 '영구적인' 집에 살 수 있어야 한다.
거주자가 본인의 독립적인 아파트를 임대 기간 제한 없이 계약할 수 있어야 한다. 독립된 형태의 집이든, 단지 형태든 상관없다.
본인이 원하거나 필요할 경우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원은 자동적으로, 조건 없이, 일반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들은 싸구려 임대아파트를 마구잡이로 짓는 게 아니라, 꽤 괜찮은 집을 짓거나 사들여 시세보다 싸게 임대한다. 결코 헐값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거비 부담 때문에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 수 있을 수준의 집을 공급한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Y재단이 집을 짓는 곳은 집값이 껌값인 버려진 땅이 아니라, 비교적 큰 도시다. 고용기회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Y재단이 공급한 집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M2 homes : 1만 150채에 이른다. 정부가 만든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제작 원가만 반영해, 추가 수익을 내지 않는 집이기 때문에 꽤나 저렴하다. 커버사진도 헬싱키에 있는 M2 주택 중 하나인 Kirsitie 2(1998년 완공)다. 사진출처 M2 rentals website
-Y houses: 6500채. 특별히 필요한 사람을 타깃으로 한다. 정부나 지자체, 부동산 업체를 거치지 않고 재단이 직접 임대한다. 노숙인, 신용도가 떨어지는 사람,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 등 '가장 집이 급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필수 절차만 거쳐 빠르게 집을 제공한다. (물론 절차 자체는 간단하지만 대체로 집이 모자라기 때문에 실제로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우리나라였으면 이런 집을 지으면 지역의 범죄율이 높아지고 집값은 떨어진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자 오히려 담당자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범죄율이 당연히 오히려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내용 또는 통계수치는 다음 pdf 파일에 대부분 담겨 있다. https://ysaatio.fi/assets/files/2018/01/A_Home_of_Your_Own_lowres_spreads.pdf
Y재단의 또 다른 슬로건은 "together, we are stronger". 각자의 환경에서 각자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숙인들에게 주거와 고용을 지원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업무다. 거주자들이 다시 노숙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언과 상담도 중요한 활동이다. 아이 양육 등 더 복잡한 문제를 겪는 여성 노숙인을 위한 특별지원도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집이 없는 것'이 본질인 노숙자들에게 집을 주고 일자리를 연결시키는 것은 다른 나라도 다 하는 일이다. 하우징 퍼스트 원칙도 마찬가지다. 핀란드의 비결은 '노숙인 개개인에게 맞췄다'는 점이다. 이들을 한 덩어리로 뭉친 뒤 일괄적이고 획일적인 지원을 하는 대신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만 지원해줬다. 기존 복지서비스들과 가능한 겹치지 않도록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집 임대료도 스스로 냈다. 집을 소유하고 있는 기관이나 기업이 대신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반적인 임차인들처럼 본인이 스스로 집세를 내게 만들었다. 돈을 낼 수가 없을 때에만 지원을 신청할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돼 시스템을 정교하게 짰고, 기존 사회복지 서비스 자체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비영리단체들이 함께 2012–2015년에 함께 시행한 장기 노숙인 대책(PAAVO II)도 좋은 기반이 되어줬다. Y재단도 이 프로그램의 허가를 받고 국가로부터 강력한 조언과 재정지원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어떤 정책이든 예산과 책임기관이 흩어져 비효율이 난무하는 국가들이라면 노숙인 지원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유용한 벤치마크가 될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