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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Jul 16. 2020

퇴사를 결심하면서

이직이 아닌 퇴사를 결정한 이유

2016년 11월 씀.


7년동안 다닌 첫 직장을 퇴사하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사용한 표현이 있다.         

                                    '저 이제 여기 졸업할 때가 된거 같아요'.

사실 퇴사 자체는 2년 넘도록 고민한 일이라 졸업할 때는 지난지 오래된 느낌이었다. 계획보다 2년을 더 연장하여 회사에 머무르면서 내가 결론 내린 것은 '2년간 내 커리어는 제자리 걸음을 한 기분이다. 이제는 작별을 해야 겠다.'라는 후회가 섞인 아쉬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장했다'라는 감사였다.


나는 맏이여서 그런지 세상 대부분의 첫째들이 그렇듯이 스스로 채찍질하길 즐겨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항상 목표가 있고,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달성하고 싶은 세부 계획들이 있고 그것들의 진도를 끊임없이 체크하면서 자신을 감시하는 감시관 같은 느낌이랄까. 연봉, 회사와 상사의 인정, 승진 이런 것들은 그다지 관심 없었지만 일에 대해서만큼은 '프로'처럼 일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적당히 마무리 짓고 일찍 퇴근해서 여가를 즐기는 삶이 아니라, 단순히 내게 주어진 업무영역의 넘어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엮인 고객과 서비스 공급자' 관계에서 공급자로써 부족함이 없이 하기 위해 영역에 대한 선 없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만들고, 고치고를 끊임없이 반복하고...완결성 높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집착적으로 일에 몰두했다. 높은 기대치 때문인지, 나는 단한번도 내가 한 일에 대해 만족스럽거나 자랑스럽거나 뿌듯해본 일이 없다.

물론 회사에서는 점점 더 '쓸모있는'사람이 되어 갔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가장 쓸모있다는 대리의 역량이 채워질수록, '물이 서서히 뜨거워지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무감각한 개구리'이야기 속의 개구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늘 나의 성장 진도를 체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해 온 이직을 결심했다.


그런데 이직 준비를 시작하기 직전에 갑자기 정신을 차리게 됬다.

내가 열심히 달려가는 방향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풍경이 'Why?'라는 질문에 아무것도 답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7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회사 이외의 삶은 아무것도 남아있는게 없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딸'이자 '언니'라는 나의 역할은 흐릿해졌고,

선물처럼 주어졌던 '친구'라는 관계도 낡은 앨범 속에 갇힌 히스토리가 되어갔다.

이대로 이직하면, 나는 더 미친듯이 일에 몰두할 것이고 금방 40이라는 나이에 도달할 것이다.

그게 맞는건가? 내가 뭘 놓치고 있지? 질문들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에 여러가지 인생에서 풀어야만 하는 이슈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이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퇴사하고 한번 쉬어보자'라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한번 쉰다'는 것, 자체를 7년간 회사생활 하며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직 자체가 그 순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또 한가지, '쉬어도 괜찮다'라고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2가지 이유에서였다.

1. 나는 늘 열심히 살아왔고, 새로운 곳에서도 똑같이 열심히 할 수 있다.

    7년간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쌓은 역량으로 내가 원하는 종류의 직무, 회사로 못갈 수도 있다.

사실 못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취업은 반드시 할 수 있을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없음!)


2. 내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best라고 생각한 것이 best가 아니라, 내 계획과 상관없이 눈 앞에 어떤 예외케이스 적인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늘 주어졌다. 그것을 붙잡았더니 그것이 best였던 경험들이 반복적으로 있었다.

그래서 내가 홀로 추구하는 욕망의 동기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즉, 나는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믿는다. 그것에 순종할 수 있기를 가장 많이 기도한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다른 것들을 돌아볼 생각과 정신과 마음에 처음으로 여백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나는 2016년 11월 11일을 마지막으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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