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와이 Jul 29. 2020

리더십과 팔로우십

직장인들 중에 상사가 A부터 Z까지 세세한걸 명확히 알려주길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사들 중에는 자신이 팀원에게 한두 가지만 말해도 열 가지를 생각할 줄 알고 실행하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팀장도, 팀원도 자신이 함께 일하고, 협업해야 할 '사람'을 살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1명의 팀장이 여러 명의 팀원들을 데리고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직장 내 역할 주제에 대한 포커스는 대체로 '리더십'에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팀장 한 명을 상대해야 하는 팀원의 입장에서 어떻게 팀장과 협업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리더십만큼 많이 다뤄지진 않는다. 그리고 팀장과 팀원과의 갈등은 너무도 손쉽게 '팀장의 리더십' 또는 '일 못하는 모난 팀원' 탓으로 치부된다.


예전에 게으른/부지런한 똑똑한/일 못하는 팀장/팀원의 조합이 표로 정리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베스트 조합은 똑똑하고 부지런한 팀원과 똑똑하고 게으른 팀장이었다. 그 표를 보고 왜 그 조합이 베스트인지 단번에 납득했다.


사실 똑똑하고 게으른 팀장은 게으른 게 아니다. 이들은 팀원들이 하는 업무가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업무를 믿고 맡겨서 본인의 리더십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업무나 이슈를 대할 때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거나 날이 서 있지 않고서도 리더로서, 관리자로서 개입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게 결정하면서 일을 만들어 나간다. 이런 모습이 정신없이 바쁘게 하루하루 업무를 쳐내는 실무자 기준에서는 '게을러'보이는 것뿐이다. 겉으로는 손발이 바빠 보이지 않아도 머릿속은 누구보다 민첩하게 회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모든 리더가 이런 유형이길 기대할 순 없다. 오히려 이런 리더를 만나 일한다는 것은 운이 좋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실무자가 어떤 리더를 만나느냐에 따라 얼마나 더 성장할지 영향을 받는 것처럼, 똑똑하고 부지런한 팀원은 자연스레 똑똑한 상사를 게을러도 괜찮도록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 즉, 리더와 팀원은 상호작용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11년 직장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총 5명의 상사 밑에서 일을 해보았는데 성격, 일하는 스타일이 다 제각각이었다. 그분들의 공통점이라면 회사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일을 정말 잘하는 분들이었다는 것. 그리고 팀원인 나에게 실무 영역은 위임 내지 방목했다는 것(즉, 내 방식대로 일하도록 맡겨두는 것). 이 두 가지이다. 각자 가진 독특한 개성들을 제쳐두고라도 이 두 가지 특징이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에 대해 가장 충족되었으면 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늘 내 주관적인 입장에서 상사복이 좋았다는 것은 굉장히 감사한 부분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분들이 다른 팀원 모두에게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사는 아니었다는 점도 동시에 상기된다. 따라서 '나에게 좋은 리더'라는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

(보통 자기 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리더십'은 '회사'입장에서 원하는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팀원 기준의 리더십에 포커스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나의 다섯 명의 상사들의 특징을 보면 오히려 왜 내가 상사 복이 있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타입들이 있을 것이다.


상사 1: 밤 10시 전에는 퇴근할 생각이 1도 없는, 성과만 생각하면 엔돌핀이 넘치는 초워커홀릭. 경주마처럼 달리느라 같이 묶인 팀원들이 달리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며 녹초가 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았더라도 아직 달릴 수 있다며 본 것을 가볍게 묵인. 의사결정 시 의견 대립에서 단 한 번도 꺾여본 없는 끈질긴 쟁취자.

식사, 야근 등 팀원 모두가 자신과 함께 움직이길 압박함.

특징: 내 팀의 성과는 내가 책임진다, 나만 믿고 달려라!


상사 2: 번뜩이는 기획력과 전략으로 무장한 안갯길 속의 길잡이.

전략적 사고에 있어서 만큼은 확실하게 인정받지만 의견 대립 시 상대방과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정한 팀의 규칙, 업무와 관련된 지시에 대해서는 상명하복을 기대한다.

팀원들이 피드백에 대해서 반박할 경우 처절한 깨짐을 맛보게 해 준다.

특징: 제군들은 지금부터 내 기준과 법을 따른다. 실수는 용납하지만 핑계 대는 사람은 가차 없이 응징하겠다!


상사 3: 부드러운 화법 속에 강한 추진력을 가진 실무형 실력파 리더십.

뺀질거리는 직원들을 정신 차릴 때까지 질타하며 꾸역꾸역 끌고 가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10명 중 3, 4명만 제대로 일하면 나머지 구멍은 알아서 메꾸면서 결과를 만들어 간다.

직원들 간의 충돌은 있지만 자신과 팀원들 사이의 충돌은 없다.

특징: 나는 내 갈길을 간다. 이 프로젝트 끝엔 각자 알아서 살아남도록!


상사 4: 똑똑하고 게으른 리더십의 표상.

척척박사, 프로취미러, 투머치 토커이지만 상대방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토크 머신.

모든 실무는 팀원들에게 맡기며 요청받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다. 팀원들이 자발적으로 정보 공유, 업무 보고를 역으로 하게 만드는 능력자. 몸은 회사에 있지만 머릿속은 회사 밖에 삶을 위한 전략 수립으로 항상 바쁘다.

일을 할 때도 바둑에 수를 두듯이 움직이며, 크게 힘 빼지 않고 일을 만들어 나간다.

단, 팀원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판단될 때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로 태세 전환.

타 부서와의 마찰 시에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경계 안에서 해결하려 하며 밖으로 부딪히는 일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이런 경우 타 부서와 부딪히기보다 팀원에게 짐을 좀 더 지우는 편)

특징: 회사는 짧고 삶은 길다. 회사 밖 세상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내 주옥같은 특강을 한번 들어봐.


상사 5. One team을 외치는 cheer up 리더십.

넘치는 밝은 에너지로 팀원들과의 경계를 허물고 relax 한 정서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

가끔 훅 치고 들어오는 예리함과 날카로운 이성적 화법으로 '내가 리더'라는 경계를 확실히 그음.

자기 부서 내의 각 팀들이 입사 때부터 정해진 JD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자신의 업무에 대한 everything을 공유하고 팀이라는 경계를 넘나들며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현실 업무에 적용한다.(업무 분배 시 타 팀의 업무를 나눠 맡도록 하며, 성과 피드백의 '협업' 항목에 반영)

모든 업무가 공유되길 원하는 만큼 실무자들이 모든 업무를 자신에게 공유하길 원한다.

특징: Cheep up! When we share more, we can be smarter and better!



이 다섯 명의 리더들 중에서 내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리더는 마지막 5번 리더였다.

왜냐면 1~4의 리더십들의 공통점은 내 팀이 책임져야 하는 업무 범위 내에서 결과만 확실하게 만들어내면 업무 위임뿐만 아니라 일에 대한 인정도 쉽게 받을 수 있어서 일 중심적인 내 성향 상 나를 향한 상사들의 필요는 자연스럽게 충족이 되었다.

다만 나는 일을 쫓아다니느라 늘 미친 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고 정신없이 바빴고 일 중심적인 성향으로 인해 사람에 대한 '리더십'을 성장시킬 '마음의 여유공간'은 늘 부족했다.


5번 리더는 다른 리더들과는 기대하는 부분이 조금 달랐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양질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면 내 업무에 '여유공간'이 있어야 하고, '여유공간'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다른 사람이 나에게 쉽게 도울을 요청할 수 있다고 피드백해주셨다.(여기서 다른 사람은 같은 팀의 팀원이 아니라 다른 팀의 팀원, 팀장을 의미)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어떻게든 맡은 영역에 대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내 짐을 다른 사람(그게 내 팀원이 아니라 다른 팀, 외부업체가 될지라도)에게 덜어내면서 기존에 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아이디어가 있는 가치 있는 일에 더 시간을 집중적으로 쓰는 방식으로 일을 해나가길 원했다.

'주어진 업무에 대한 성과'보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길 원했는데, 이 부분은 기존에 10년간 내가 일해온 방식, 그리고 조직사회에 대한 전형적인 사고방식(IT부서에서는 팀의 경계를 넘어 다른 팀에게 내 팀이 하던 전혀 상관없는 업무를 해달라고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은 팀원 레벨에서는 생각조차도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을 바꿔야 하는 부분인데, 실제 업무 성과와 관계없이 이 관점에서의 경험과 역량을 좀 더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평소보다 낮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사실은 처음 피드백을 받았을 때는 위와 같은 피드백을 받은 게 아니라 각 평가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 텍스트로 작성된 피드백을 받았지만 '왜' 그런 피드백을 했는지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었고, 성과와 관계없는 낮은 평가를 받은 부분에 대해서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주저주저하다가, 지레짐작하지 말고 궁금한 걸 확실하게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Q. 혹시 회사 전체적으로 직원들에게 평가를 낮게 줘야 하는 지침이 있었는지?

(왜냐면 주변 사람들 몇몇이 존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으므로)

--> COVID-19의 영향으로 회사가 실적을 더 집중적으로 만들어 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에, 기존보다 직원들을 더 challenge 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평가 기준이 낮아진 것.


Q. 지금 하고 있는 업무와, 역할을 그 어느 때보다 부족함 없이, 늘 과거의 부족분을 개선해나가면서 발전시키고 있고,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는 더 할나위 없는 team player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collaboration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뭔가 제가 인지하지 못한 부족한 부분을 catch 한 것인가요?

그런 것이 있다면 사례와 함께 무엇을 보완했으면 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collaboration을 낮게 준 이유는 현재의 업무나, 소속된 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팀을 넘어 부서가 one team이 될 수 있도록 본인이 가진 역량과 경험을 다른 팀에 공유하고 전파시키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주길 기대하는 부분이 있고, 그 기준으로 보면 현재는 그렇게 팀을 넘어 정보를 공유하는 경험이 낮아 낮은 점수를 준 것. 앞으로 그 부분에 포커스 하여 역량을 넓혀나가면 되고, 필요하면 나(상사)를 활용해서라도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이렇게 질문을 통해 2차 피드백을 받고 나니 상사의 의도가 보다 명확하게 파악되고, 납득이 되었다.

위의 질문도 만약 내가 2번 타입의 상사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것이라면 아마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했을 것이다.(아마도 전달받은 피드백에 대해 내가 결론내린 나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방향을 묻는 방식으로)

피드백에 대한 질문을 하는 방식, 피드백을 받는 방식도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생각한 접근이 필요하다. 리더와 내가 그간 쌓아온 관계, 리더가 기존에 내 업무에 대해 어떻게 개입하고 피드백 해왔는지 경험을 기반으로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피드백 역시 일종의 '커뮤니케이션'방식이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상대방에게 나에 대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냥 일반적인 친구관계나 인간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친구들의 성향이 천차만별이고 내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쌓아나가고 싶은 친구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맞추어 대화하게 된다. 상사와의 대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찰자로서 다른 사람이 경험한 리더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래, 리더도 사람인데 배울 점도 있고, 인간적으로 부족한 점도 있겠지 싶지만 1~5번 리더 모두 매일 그 상사를 대면하면서 크고 작은 업무 하나하나를 함께 하다 보면 어떤 상황들은 비합리적이고, 화가 나고, 왜 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맞지 않는 방식을 강요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드문드문 드는 감정적인 갈등을 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리더로부터 신뢰받길 원하는 것처럼, 리더도 마찬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다. 팀원인 내가 나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듯이 그들도 매번 마주하는 자신의 고질적인 약점, 부족한 점을 알고 있다.

리더도 그들 스스로가 비록 팀원들이 기대하는 완벽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기를 신뢰해주었으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팀원으로써도 리더를 서포트해서 같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게 무엇일지, 내가 서포트함으로써 또 내가 필요할 때 서포트받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 있을지 건설적인 방향으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다. 좋은 팔로우십을 가진 사람은 좋은 리더십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리더가 자산만의 독특하고 괴팍한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느 정도는 '합리적인'으로 사고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보편타당한 프로 직장인의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