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이나 있었으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장면들이 꽤 여럿 있다. 개인적으로 정보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쩐지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것들은 글을 쓸 수 있을 만큼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일종의 각인된 '스토리'라고 할까. 덕분에 과거 일을 거슬러 생각할 때 추억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사진은 모두 캐논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그때 찍었던 자료들이다.
1.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미국 오피스에서 구해준 숙소는 뉴욕 건너편 뉴저지 주에 있는 Rutherford라는 동네에 위치했다.
맨해튼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1시간 걸리는 곳이었다. 일종의 한인 하숙집 같은 곳이었달까.
주인 아주머니의 따님은 대학생으로, 독립해서 다른 곳에 거주하고 있었고 남는 방이 2개 있었다.
나와 과장님 두 분. 이렇게 셋이서 머물려면 한 방은 2명이 같이 사용했어야 했는데,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우리 팀 과장님이 1인실로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제안했는데 나중에 본인은 혼자 쓰는 게 싫었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팀장님은 뭐든지 '같이'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반면에 나는 뭐든지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출장지에서 내 직속상사와 계속 붙어 다니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었다.
2. 현지 동네 교회 경험
주말엔 각자 활동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일요일에 교회를 나서려는 나와 동행하길 원하셨다.
한인교회보다는 현지 동네교회가 궁금했기에 미리 알아본 교회가 있었다. 100% 영어로만 대화하는 교회를 굳이 혼자 가는 게 싫어서 따라가겠다고..?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첫 주는 그렇게 동행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동양인은 아무도 없었는데 5, 60명 되는 사람들이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은 서두에 교인들끼리 인사를 나누라고 하셨는데, 보통 한국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옆사람과 이렇게 인사하세요. 0000 000000"라고 하면, 형식적으로 안면도 없는 옆사람과 가볍게 고개만 까딱이며 앵무새처럼 목사님의 지시어를 반복한다. 0000 00000은 뭐 다양하다. "오늘 참 멋지십니다"같은 별의미 없는 말도 있고,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와 같은 성경구절과 관련된 말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이걸 마지못해 따라 하는 편이다. 이걸 시키는 이유는 목사님이 설교 시작 전에 경직된 분위기가 좀 부드럽게 바뀌면 목사님도 긴장을 덜 하고 교감하며 설교하기에 마음에 편해진다나 뭐라나. 그래서 그냥 따라 한다.
그런데 그 미국 동내교회에서는 어떤 지시어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인사하고, 포옹하고 안부를 전하는 시간을 꽤 길게(한 10분 정도) 가졌다. 첫인상부터 너무 신선해고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물론 동네교회이니 더 그게 가능했을 것 같다.
예배가 시작하고, 앞에 성가대가 찬양을 했는데 흑인 가스펠이었다. 내게 흑인 가스펠 하면 생각나는 건 '시스터 액트'라는 영화였는데 실제 현장에서 찬양을 들으니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통은 날 때부터 다른 소울이 담겨있는 것이 확실했다. 찬양을 들으며 출장기간 동안 이 교회로 정착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기울고 있었다. 찬양은 거의 1시간 가까이 불렀다. 한국은 길어도 30분가량인데 1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는데, 목사님은 한 곳에 서서 설교하는 게 아니라 헤드마이크를 착용하고, 예배당을 돌아다니면서 열정적으로 교감하며 설교를 하셨다. 그리고 그 설교시간은 거의 1시간 반 가까이 되었는데 전혀 루즈하지 않아서 계속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한국교회는 30분~50분 사이로 설교를 끝내는 편이니 꽤 긴 시간이었다.
예배를 거의 3시간 정도 드리고 나서, 나는 이 교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음 주에도 또 와야지!라고 생각한 반면, 팀장님은 그다음 주에 난 온누리교회로 갈게.라고 드디어 홀로서기를 선언하셨다.
3. 아름다운 뉴욕의 공원
예전에 북경 출장에서도 느낀 적이 있었지만 땅이 넓은 나라는 뭐든지 커다랗게 짓는다는 것이다.
뉴욕도 모든 빌딩의 공간이 크고 넓다. 문 한 짝도 너무 크고, 층고도 모든 곳이 굉장히 높게 지어져 있다.
센트럴파크는 그 크고 넓은 것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이걸 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너무 크다. 세계적인 대도시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조금 부럽기도 했다.
어느 주만에 센트럴 파크 한번 산책 나갔다가 엄청 오랜 시간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4. 뮤지컬 공연
뮤지컬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첫 뮤지컬을 뉴욕 본고장에서 관람했다.
내가 본 것은 라이온킹과 맘마미아. 솔직히 나에게는 둘 다 재미가 없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킹과 영화 맘마미아에 비해 뮤지컬은 뭔가 산만하고, 스토리가 끊겨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 뒤에도 국내에서 엘리자벳, 지킬 앤 하이드, 벤허, 레베카 등을 보았는데 유일하게, 처음으로 뮤지컬에서 큰 쾌감과 만족감을 느꼈던 것은 마곡 LG아트센터에서의 벤허였다. 역시 나에겐 연기가 이끌어가는 스토리 집중력이 중요하다.
5.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의 첫 만남
난 전시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니, 여가시간에 뭘 딱히 할 게 없어서 미술관을 가곤 했는데 그러다가 미술품에 관심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 지금은 매년 온갖 전시회를 다니고 급기야 국내 개인 작가 전시회를 염탐하며, 그림을 구매하는 수준의 관심에 이르렀다.
성인이 된 후 미국 출장 전에 국내에서 가본 전시는 고작 1, 2건에 불과했을 것이다.(하나는 그때 당시 누군지도 몰랐던 쿠사마 야요이 전시회.. 다녀온 후 몇 년이 지나 그 미술가의 유명세를 알게 되었다)
그 1, 2개의 전시도 디자인이 전공인 동생을 위한 나들이 목적으로 갔었던 것뿐이다. 그래서 나 홀로 개인적인 본격 전시 경험이 미국에서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미술관 안을 들어가니 천장 가득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덮여 있어 빛이 실내로 내리쬐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그룹 지어 이런 미술품, 조각품들 앞에 자유롭게 바닥에 앉아 관찰하고, 이야기 나누고, 그림 그리고 하는 모습들이 교육적으로도 굉장히 풍성해 보였다.
미국은 모든 것이 지나치게 크다. 메트로폴리탄의 수많은 전시 방들을 2시간 넘게 구경하다 이집트 방에 들어갔는데...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크게 놀랐다. 그냥 이집트에서 땅을 떠서 옮겨놓은 규모랄까. 다른 나라의 귀한 유물들을 이렇게 소장하고 있는 것이 괘씸하게도 보였다.
이집트 전시관은 방 하나가 아니었다. 너무 넓은 곳을 걷다 지쳐 3시간이 넘을 즈음 이제 그만 메트로폴리탄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구를 계속 찾아 걷는데 끝도 없는 전시 방이 계속 이어져 출구를 찾는데 한참 걸렸고, 밖으로 나왔을 땐 진이 다 빠졌던 것 같다. 이걸 다 둘러보려면 대체 몇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6. 1박 2일의 워싱턴 D.C 방문
워싱턴 D.C에는 뭐가 없다. 있다면 오벨리스크와 조지 워싱턴 동상이 있는 그곳 정도?
마침 대학교 후배가 워싱턴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었기에,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방문했다.
무엇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 건 1박을 했던 호스텔이었다. 당시 20대였고, 백패커 같은 호스텔이나 단기 선교지에서의 열악한 수면 환경을 무던하게 경험해 온 터였기에 1박 숙박에 최소한의 돈만 쓰고 싶었다. 그러다 알아본 것이 10인 1실 방이 있는 호스텔.
동생과의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6인 1실은 써보았지만 10인 1실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차피 저녁 9시 언저리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나올 목적이었기에 선택한 옵션이었고, 조금 걸리는 것은 성별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mix룸이었는데, 호스텔을 들어서서 분위기를 보니 범생이 도시답게 매우 정숙하고 단정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이들도 무언가 그런 사람들이겠구나 라는 직감이 들어 확정했던 기억이 난다.
방에 들어가니 누가 봐도 미국인이 청년 한 명이 짐을 풀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하고 자기소개를 하고 나니, 내가 한국인인걸 알자 굉장히 반가워하며 갑자기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서 먹을래?라고 건네었는데 그건 영양갱과 애니타임 캔디였다. 속으로 '예? 미국인이 나에게 영양갱을 주는 이 상황은 무엇이지? 아니 영양갱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먹지 않는 간식이라고'라고 생각하며 정중하게 괜찮다고 거절했다. 숙소에서 웃긴 첫 만남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방에는 그 청년과 나 밖에 없었어서 다들 언제 들어오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바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놀란 것은 10인 1실에서 나의 룸메이트 9명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정확히는 모두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었다. 모두 화장실 입구 앞에서 일렬로 줄 서서 양치하는 모습은 이곳은 군대인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의 문화에 mix룸도 이런 상황도 그렇게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기에 나도 그러려니 했지만, 한국이었다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워싱턴 D.C에서 기억나는건 이 호스텔에 대한 기억이 전부이다.
지금은 해외를 가면 호텔에서만 잠을 잔다.
7.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잠들어 버리다
마지막으로 풀어낼 에피소드는, 주말에 혼자 뉴욕에 놀러 나갔다가 저녁 늦게(9시쯤?) 버스를 타고 Rutherford로 가고 있던 중 잠이 들었다. 눈을 떠서 휴대폰 지도를 보니 정류장을 놓친 상태인 것 같았다.
버스기사에게 묻자 이미 몇 정거장 지나쳤다고 하여 반대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할 것 같아 전혀 모르는 동네에 내렸다. 늦은 밤이었고, 사람 한명 다니지 않는 황량한 거리 위에 서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간당간당하던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버렸다. 저 멀리 어느 건물에서 술 취한 사람이 떠들다가 내가 서있는 정류장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여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그 사람은 그냥 나를 지나쳐갔다. 아마 한 20분 넘게 서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에 지나가던 버스 2대가 나를 보고 멈춰서 어디로 가는지 물어봐주었다. 둘 다 경로에 없는 도착지여서 타진 못했는데 두 번째 버스 기사가 뒤에 00번 버스가 오고 있다고 알려주어 무사히 타고 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과장님들이 엄청 걱정하고 있었다. 올 시간이 되었는데 1시간 넘도록 오질 않고, 연락도 안되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고 어디 연락해서 알아봐야 하나 하고 있었다고.
50일간 뉴욕에 있는 동안 가장 당혹스럽고, 두려웠었던 날이라 기억이 난다.
8. 그 외 기억 조각들
뉴욕은 다양하고 풍성한 도시이다. 하지만 나에게 큰 매력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아마도 출장으로 간 곳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출장을 통해 경험한 것은 풍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