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뉴욕 경험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뉴욕 출장 업무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법인 설립 프로젝트 다음으로는 미국법인에 SAP시스템을 도입하는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는 첫 회사에서 일한 지 3년 반이 지났을 때였다. 일본 프로젝트와의 차이는 일본은 신규 법인 설립과 동시에 해당 법인에서 사용할 시스템을 같이 온보딩 시킨 것이었고, 미국법인은 이미 Retail Pro과 Quick View라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더 이상 월말에 수기로 업로드된 재무실적을 뒤늦게 받아보지 않도록 그룹사 기준인 M+1일에 전월 실적이 한 번에 나올 수 있도록 SAP로 통합/전환시키는 프로젝트였다.
뉴욕엔 사무를 위한 법인 전용 오피스가 없었다. 대신 브랜드 매장 뒤켠에 딸린, 7명 정도가 데스크에서 일할 수 있는 작은 사무실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브랜드 매장은 맨해튼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바로 등 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위치로 보았을 때는 임대료 꽤나 나올 자리였다.
10년도 넘은 아주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일본, 미국, 홍콩 3개의 해외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무역 거래 추적/정산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관리회계 설계 담당자이긴 했지만, 모든 팀원이 출장을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서, 재무회계에서 AP파트를 담당한 후배가 설계한 B/L billing 시스템을 미국법인에 이식하는 것을 같이 맡게 되었다. 관리회계 담당자도 원가 정산 프로세스 설계에 책임이 있기에, 완제품/임가공으로 수입한 제품의 B/L billing 대금뿐만 아니라, 물류비, 통관비 까지도 각 제품 원가에 녹여내는 수불부 정산구조를 잡아야 해서 무역 거래 구조를 알아야만 했다. 그때 그룹사는 해외 법인들이 많았고, 홍콩 거점의 중개무역과, 국가 간 거래의 중계무역을 전개하고 있었다.
해외 프로젝트이다 보니 대면 미팅을 할 수가 없어서, 띄엄띄엄한 화상 미팅의 인터뷰 질의 기반으로 프로그램이 설계되었고, 이런 경우 현장에서 sync를 맞추다 보면 안 맞는 게 상당히 많다. 그래서 실제 일어나는 프로세스를 파헤치면서 꽤 많은 프로그램 로직, 구조의 수정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전 3년간 운영과 프로젝트를 동시에 담당해 왔기에, 프로젝트에서 발생된 비효율적인 시스템 설계가 어떻게 데이터 sync이슈로 운영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너무나 체감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프로젝트 중심으로만 일해온 후배가 설계한 프로그램이 사용하는 테이블 구조의 많은 부분은 다시 다듬은 기억이 난다.
프로세스를 시스템으로 설계한다는 것에서 늘 주의해야 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반 프로세스'만 주워 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전에서는 일반적인 프로세스에서 이탈한 상황이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걸 파악하려면, 실물 대조가 필수다. 그리고 이 실물 대조는 마이그레이션을 준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경우들이 있다. 마이그레이션을 할 때 가장 쉬운 것은 재무회계 장부 마이그레이션이다. FI계정 중심으로 최종 ending날짜 금액만 마이그레이션 하면 된다. 가장 복잡한 건, '제품'과 엮이는 마이그레이션이다. 특히 제조나, 수입 같은 프로세스에서 단계가 진행중인 겻우 개별 문서 단위로 마이그레이션을 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어 제품코드수 x 문서건수 단위의 마이그레이션 규모가 필요하다. 그리고 조금만 삐끗해도 엎고 다시 해야 하는 경우들도 생기는데 재무회계는 그냥 취소하고 다시 생성하면 그만이지만 제품과 관련된 마이그레이션은 여러 프로세스가 단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단계 과정에서 잘못되면 순차적으로 거꾸로 취소했다가 다시 진행해야 한다.
내 기억으로, 이 미국 프로젝트의 복병은 '칼라'와 '사이즈' 이슈였다.
제3국의 공장에서 임가공 처리를 해서 완제품을 미국으로 보낼 때 무역 송장에 Detail packing List(디팩킹 리스트)라는 문서가 같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문서를 기준으로 의류제품의 칼라사이즈 단위로 마이그레이션을 해야 했다.
문제는, 공장에 임가공을 맡기기 전에 공정서가 작성되고 이걸 기준으로 해당 완제품에 대한 칼라 x사이즈 조합으로 제품 마스터가 시스템에 생성된다. 임가공 주문서(Production order)가 공장에 들어가고, 공장에서 임가공을 완료한 후 물건을 실어 보낼 때 Detail packing list가 작성되는데... 문제는 내가 종이에서 본 디팩킹 리스트에 있는 칼라, 사이즈와 매칭되는 제품이 임가공 주문오더에 등록되어 있지 않거나, 아예 제품마스터 단계에서부터 생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건이 꽤 많았다.
허구한 날 테이블에 종이 무역 서류를 쌓아놓고 파해치면서 퍼즐 맞추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팀장님과 나는 문서와 매칭되는 시스템 정보가 없으면 바로 매장으로 가서 매장 옷의 상품 tag을 추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tag에 붙은 일련번호는 일치하는데 tag이 달린 실제 옷 색깔과 디팩킹 리스트에 적힌 컬러명이 완전 다르다. 예를 들면.. 거기엔 레드라고 되어 있지만 어디에도 그 제품라인에는 붉은 계열 옷은 없고 파란색이나 노란색만 있는 뭐 이런 식이다. '왜왜왜??!'를 수없이 외치면서 맞게 한 것인지 확신도 들지 않는 마이그레이션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결국 이렇게 마이그레이션을 하면 나중에 판매하다가 마이너스 재고가 발생되고, 월 결산 때는 같은 제품 내 칼라사이즈 재고 퉁치기를 하는 조정 작업이 들어간다.
그리고 사이즈. 글로벌 패션 기업은 어딜 가나 이 사이즈 문제로 애를 먹는다. 왜냐면, 서양인들 사이즈랑 동양인 사이즈가 다르다. 그리고 동양인들도 동남아시아랑 한/중/일은 또 다르다.
공장에서 미국과 한국에 보낼 동일한 사이즈의 옷을 찍어 냈는데 한국에선 이 사이즈가 L이지만 미국에서는 M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국가별 사이즈표를 잘 관리해야 하는데 이게 매우 매우 잘 관리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걸 구분하기 위해 A/S, A/M, A/L이라는 사이즈를 사용하는 곳도 있는데(Asian Small, Asian Medium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구분해도 실착 전에는 사이즈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다.
두 번째 회사인 A사에서는 A사이즈 라인도 있고, J/S, J/M, J/L 라인도 있더라...(Japan 사이즈)
이유는..? '제조공정'으로 인한 영향이 있다고 한다. 분명히 공정 시작 전에 시험 공정으로 결과물을 볼 텐데 왜인지 공정 과정에서 옷감 사이즈가 줄거나, 핏이 달라지거나, 염색 시 색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자세히 파헤치지 몰라서 잘 이해되지 않지만 그런 것일까?라고 넘어갔지만 솔직히 절반은 시스템에 먼저 등록해 놓고 중간에 의사결정 과정에서 바뀐 걸 업데이트하지 않은 휴먼 에러일걸!이라고 생각한다.
무역장부 마이그레이션 지옥이 끝나고, 모든 SAP 시스템을 이식했다. 여기까지가 출장 한 달 기간 동안 해낸 일이었다. 팀장님은 먼저 한국으로 복귀하고 나는 남아서 첫 월 마감결산을 준비했다.
대망의 결산 날, 오전 9시에 사무실에 홀로 출근해서 노트북을 켰다. 그런데 노트북이 픽 하고 꺼졌다. 노트북이 죽어버린 것이다. 여러 조치를 취해보았지만 결론은 '메인보드가 망가졌다'는 것. 오늘 당장 결산을 시작해야 하루 내 겨우 끝낼 수 있을 텐데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사무실에 데스크톱을 이용해서 겨우 겨우 어떻게든 했던 것 같다. 모든 참고 문서는 내 PC에 저장되어 있었지만, 내가 직접 설계하고, 고군분투하며 뜯어고쳐 만들고, 온보딩 교육까지 진행한 프로그램들이고, 프로세스였기에 딱히 자료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른 내용들은 꽤 생생히 기억하면서 이건 어떻게 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너무 충격이었거나 잘 해결되었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관리회계를 하다 보니 데이터에 대한 결벽증이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 데이터가 안 맞거나, 시스템 오류가 생기면 집요하게 끝을 낼 때까지 몰입을 했던 것 같다. 10여 년 전 페이스 북에 미국 출장 중 남긴 글이 있다.
'나도 나 자신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악 야근하기 싫어 다 버리고 집에 갈래'라는 마음과 '악 일이 쌓여가고 있어 해치워 버려야 해'라는 갈등이 항상 있는데 분명 마음속으로는 전자를 선택하고 싶은데 결정은 후자다. 그래서 나 때문에 뉴욕 불금에 과장님들까지 9시 반에 퇴근하게 되셨다. 나 혼자 들어갈 테니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으나 혼자 두고 오면 10시 넘어서 올 거 같으니 절대 안 된다며 기다리셨다. 세상에는 참 성격 괴팍한 상사들도 많다는데 굳이 날 기다렸다가 같이 퇴근해 주시는 과장님들 참 감사하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었던 걸까. 그 와중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네.
내가 기억하는 미국 출장의 업무 기억은 여기까지. 다음 편은 업무 외 미국에서의 경험들을 풀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