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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국가 우즈베키스탄의 매력

by 제이와이 Mar 12. 2025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발걸음을 하지만 중앙아시아 땅을 밟는 여정은 특별한 것 같다.

어느 날, 교회 주보 광고에 '단기선교' 안내를 보았다. 선교사님들이 파송 나가 있는 여러 국가들마다 다양한 단기 선교 활동들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중 내 시선을 사로잡는 단어가 있었다. '비즈니스 선교'.

대학생 때 비즈니스 선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선교로 연결되는 비즈니스에 대해 교육을 받았고, 그렇게 비즈니스 선교에 대한 씨앗이 마음에 심어지면서 IT영역로의 관심이 연결되었었다.

불과 2년 남짓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강도 높은 업무에 지쳐가면서 그때의 마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비즈니스 선교'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단기선교에 참여 신청을 했는데 그 대상국가가 바로 우즈베키스탄이었다.

내가 대학생 때 교수님으로부터 비즈니스 선교에 대해 배울 때 3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 것이 기억났다.


1. 비즈니스 as 미션: 비즈니스 그 자체가 선교적 삶을 이루는 형태로, 직업과 일 그 자체가 선교활동이 된다. 비즈니스 과정에서 성경적 가치관을 따르며, 비즈니스를 통해 현지인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영적 회복의 상태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동시적으로 추구한다.

2. 비즈니스 for 미션 : 비즈니스를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는 접근으로,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하기 어려운 국가에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형태를 빌려 선교활동을 한다.

3. 비즈니스 and 미션: 비즈니스와 선교를 분리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비즈니스는 시장 논리에 의해 수익을 창출하고 거기서 얻은 이익을 선교활동을 위해 사용한다.


내가 신청한 단기선교는 2번에 해당되는 비즈니스 미션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우즈베키스탄은 독재 대통령이 집권하는 국가로, 국교가 이슬람교임에도, 이슬람 여자들이 히잡을 쓰는 것을 금지하는 국가였다. 사람들이 모여 카르텔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거주지 지정 통제를 통해 종교, 친인척 등을 모두 흩어 살게 하는 나라였다.


우리가 가는 단기선교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저 그곳에서 외롭게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을 방문해서 같이 찬양과 말씀을 나누고, 현지 사정을 듣고 기도하며 위로해 드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현지에 도착하면 동행 목사님은 사장님, 나와 언니들은 대리, 과장 등 직급으로 부르기로 했다.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선교사님들을 방문하며 보낸 시간 보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그 나라의 풍경과, 거기서 우연히 마주친 현지인들이다.


현지 적응도 할 겸, 첫 번째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수박을, 한 팀은 멜론을 사 오는 내기를 했다. 시장 근처 길가를 지나가는데 수박장수가 있었다. 이 나라 시세를 잘 알진 못했지만 딱 봐도 외국인인 우리에게 더 높은 가격을 부른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비싸다며 좀 더 깎아 달라는 열띤 흥정을 하고 있는데 우리 옆을 지인들과 함께 지나가던 우즈벡 사람이 멈춰 서더니, "아니, 이거 고작 얼마나 한다고 깎아달라고 흥정하는 거예요?"라고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너무 이국적인 외모의 사람이 너무 한국적인 톤과 뉘앙스 그대로 한국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잠시 벙쪄있었다. 정신을 차리곤, 이 사람이 우리가 외국인인걸 알고 자꾸 비싸게 팔려고 하는데 우리는 제 값을 주고 사려고 한다는 설명을 했다. 그러자 그 우즈벡 사람은 "이거 뭐 얼마나 한다고 깎는다고 해요. 그냥 내가 사줄게요"라고 말하자 마자 얼른 값을 치르고 우리에게 수박을 건네어주었다. 이 사람뿐만 아니라 우즈벡에는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고 그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슈퍼마켓 옆을 지나가는데 거기 앉아서 밖을 내다보던 주인이 냅다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돈 벌러 한국에 가서 서울 가락시장에 몇 년간 살다왔다고 한다. 알고 보니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 일정을 우리의 통역사로 동행했던 우즈벡 청년 하산도 한국어를 아주 능숙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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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를 방문한 것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기했다. 모스크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는데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이 돋보였고, 가까이 가니 거대한 모스크 건물 벽을 뒤덮고 있는 파란 문양의 타일들도 아름다웠다.

사마르칸트 도로를 달리는 동안 도로 위에는 온통 하얀색으로 된 차들만 지나다니는 게 보였는데 그것도 국가에서 정한 법이었다. 도로, 길가 모두 티끌하나 없이 깨끗하고, 고요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여름은 몹시 뜨거워, 그 태양열에 정수리가 타들어갈 것 같다가도 그늘 아래로 쏙 들어가면 시원했다.

방문 기간 중 어느 한 날은 갑자기 현지 통신망으로 전화가 되지 않았다. 선교사님과 만나야 하는데 통신이 되지 않아 난감했는데 알고 보니, 우즈벡에서 사업을 하던 러시아 통신회사인 MTS가 통신사업규정을 위반해서 정부가 통신 서비스를 중단시킨 것이었다. 독재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이렇게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구나를 실감했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내용은 우즈베키스탄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다. 우리는 돈을 지갑에 넣고 들고 다닐 수 없었다. 물건을 사기 위해 검은 봉지에 돈다발을 들고 다녔다. 마트에서 초콜릿 하나를 골라 계산대에 돈다발을 내밀었더니, 은행에서나 보던 돈 세는 기계에 넣어 금액을 확인한 후, 거스름돈을 걸러 주었다.

아직도 그런 상태일지 모르겠다.


단기선교가 아니었다면, 중앙아시아를 지도에서 찾아볼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한번 경험하고 나니 그 주변의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도 궁금해졌고, 언젠가 가볼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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