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일본을 5번 정도 방문했던 것 같다.
먼저는 고1때 고등학교 문화탐방 프로그램이었고, 그 다음이 이 해외출장이었다.
당시 나는 이제 막 입사 3년을 채운 때였는데, 그룹사에서 본격적으로 해외로의 비즈니스 확장을 추진하던 때였다. 대학생때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해왔는데 졸업 후 회사를 들어오니 사용할 일이 없었다.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 잊지 않기 위해 전화영어를 하거나, 언어교환 모임에 나가곤 했는데 단기간 or 단발성 이벤트로 그치곤 했어서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래도 회사 내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음과 해외 프로제트에 대한 관심을 종종 팀장님에게 어필하곤 했는데 기회가 열렸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그룹사에서 재무부서 주관하에 시스템 기반 계열사 통합 관리하려는 의지가 강했기에, 당시 재무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운영을 담당하고 있던 우리팀은 계열사에서 해외 신규 법인 진출과 동시에 비즈니스를 시작을 바로 그룹 표준 시스템 위에 탑재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같이 온보딩 했다.
사실 국내 패션 브랜드가 해외에서, 그것도 우리나라보다 패션 트렌드나 개성이 훨씬 앞서 있는 일본으로 진출하는 일은 드물었고, 성공한 경험도 없다시피 했는데 회사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당시 회사는 SPA브랜드들을 주축으로 국내에서는 의미있는 성장들을 일궈냈고, 그룹사 비즈니스가 잘 정착된 중국에도 해당 브랜드들을 진출시킨 상태였기에 규모 확장을 위한 다음 타겟은 일본이었다. 실무자인 우리들은 여전히 일본에서의 성공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룹사는 꽤나 '비용적으로' 좋은 조건으로 일본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냈다.('비용적으로'는 좋은 조건이었으나 지리적으로는 시기적으로 어려움이 큰 곳이었다)
지역은 일본이었지만 우리가 시스템 구축을 위해 비즈니스 요구사항을 논의하고 정리하는 현업 조직 담당자들은 모두 한국인이었기에 사실 '영어'를 쓸 일은 없는 프로젝트였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한국을 기준으로 일본 법인 구조와 비즈니스 필요에 맞게 커스텀 하는 것이었고, 어렴풋한 기억에 이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이후 해외 프로젝트에서 우리팀이 공들였던 개발 영역은 '매장 정산'과 '무역 거래' 실적을 트래킹 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이었다.
시스템 대부분은 한국에서 개발, 셋업을 했고, 일본은 오픈 전 비즈니스 온보딩과 운영 교육을 위해 파트별 각 팀에서 담당자들 차출해서 짧은 출장을 다녀왔는데 나도 그 중 하나로, 2주 정도 출장을 다녀왔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오픈 일정이 한달가량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회사에서 이 법인을 운영할 '재무'담당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본사에서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도, 보낼 사람도 없어 파견이 없었고, 현지 채용을 했는데 채용 합격한 인력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픈도 하기 전에 중도 하차를 했다. 법인 운영을 위한 재무 시스템도 준비되었는데 이걸 받을 사람이 없는 위기상황이었다.
일본 법인으로 파견된 분들 중 설립 준비 과정에서 우리와 주로 소통했던 key맨들이 몇명 있었는데, 그 중 기존에 물류였던가 해외소싱이었던가를 담당해온 열정적인 과장님이 한분 계셨는데 손을 들고 본인이 총대를 매겠다고 하셨다. 차/대변 구조 개념조차도 생소한 분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셨는지 모르겠다. 법인의 재무구조 관리에 대한건 본사 인력을 지원을 받으면 되지만, 거래 내역을 장부에 기표하고, 예산부터 매장 정산, 비용정산, 결산까지의 모든 걸 신입사원이 교육 받듯이 짧은 기간 동안 새로 배우셔야 했다.
우리도 자세하고 꼼꼼하게 교육해드렸지만 어쩔 수 없이 설명한 부분을 또 설명해야 하는 부분들이 반복되고, 외운것을 접목해서 실전에 적용하기 위한 사고 전환에 시간이 걸리다보니, 오고가는 대화 속에 나타난 어떤 표현들에 자존심도 많이 구기셔야 했고, 그 과정에서 본인도 생각했던 것보다 쫒아가는 것이 버거운 상황에 많이 속상하고 답답해서 우시기도 했다. 그래도 모든걸 끝까지 감내하시고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말도 안되는 상황에, 절벽 위 끊어진 다리를 건너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할 때가 있는데 과장님께는 그때가 그런 순간들 중 하나셨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회사가 너무했고, 그 분께 감사패라도 드렸어야 했다.
회사는 실험적으로 일본에 진출한 것이었는데, 예상대로 일본에서의 반응이 저조해서 2년만에 비즈니스를 철수 했다.
이 출장에서의 또다른 기억은, 한국으로 복귀하기 직전 주말에 대학생 때 다녀온 호주 워킹 홀리데이 기간에 베프가 되어준 사야카를 거진 5년만에 만난 것이다. 일본으로 출장 가기 전 큰 기대 없이 사야카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본인은 도쿄 사람도 아니면서 날 만나려고 도쿄에 일정을 맞추어 놀러오겠다고 했다.
사야카는 도쿄에서 아키하바라를 가본적이 없어 꼭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거기서 애니메이션 덕후들의 세상도 맛보았다. 고양이 복장을 입은 메이드카페를 갔었는데 메뉴를 고른 후 '냥'이라고 말해야 주문을 받아주었다. (우리 둘다 이 상황이 너무 낯설고 어색해 매우매우 쑥쓰럽게 겨우 '냥'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창 대화 중인데 갑자기 불이꺼지고 카페 내 단상이 무대로 바뀌면서 공연이 펼쳐지고 뒤에는 야광봉을 들고 그들을 응원하던 무리가 보였다. 사야카도 나도 '여긴 어디, 나는 누구'와 같은 표정을 주고받으며 벙쪘었던 기억도 난다.
마지막날 아사쿠사에서 지갑을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좋은 마무리였을텐데....당시 혼자 가장 마지막에 일본에 남은 사람이 나였고, 주말에 법인에 연락할 사람도 없고 밤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차비조차도 없었는데 나를 가엽게 여긴 사야카가 5천엔을 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은 건 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안부를 묻는 내 메일에 괜찮다고 회신 온 것이 마지막이라 꽤 많은 세월이 지났다.
5번의 일본 여행 중에서는 이 출장에서의 기억인 고생한 과장님과 함께 고군분투한 시간과 사야카와의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다.
해외출장이었는데 사실 '해외'라는 부분에서는 감흥이 없었다. 짧은 출장이라 야근을 많이 했고, 집->회사만 반복했고, 편의점 도시락도 꽤 여러차례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