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로너건 1.
공간이 주는 기억들.
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마다 다양하다. 같은 공간을 기억하더라도 어떤 이는 그 공간이 환희와 즐거움에 대한 곳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겐 같은 곳이 상처와 아픔, 잊고 싶은 곳 일수도 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 했던 공간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다.
'리'에게 고향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잊고 싶은 공간이다.
가족들과 기분 좋은 수많은 기억들을 만들었지만 결코 치유받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곳이기 때문이다.
리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 관한 기억들도 잊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형은 죽으면서 남긴 아들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동생 '리'를 지목한다.
과거에 리와 패트릭은 함께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좋은 기억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리가 고향을 떠난 후 둘의 사이는 과거처럼 돈독하지 않다.
'패트릭'도 역시 크고 작은 상처들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를 오랫동안 볼 수 없었고 자연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패트릭' 역시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담담하다. 아니 담담한 척하려 애쓴다.
영화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리와 패트릭을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둘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리와 패트릭을 상처받은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한다.
영화의 구성도 인상적이다.
현실의 이야기를 풀던 중 갑작스레 전환되는 과거의 장면들. 친절하지 않은 전환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리의 감정에 이입이 된다.
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갑자기, 그리고 어느 순간이건 과거의 상처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처음엔 의아한 영상 전환이었지만 리의 과거를 알게 된 순간부터 불친절한 영상의 전환이 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공감하는데 도움이 됐다.
어떤 이는 그 상처를 지우고 살아갈 것이고 어떤 이는 결국 아물지 않은 상처를 평생 품고 살아갈 것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만약 영화 속에서 리가 상처를 극복하고 패트릭을 자신이 직접 돌보는 결말로 끝이 났다면 지금과 같은 여운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형 '조'가 죽으면서 아들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리'를 선택한 것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있는 리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치유는 아니지만 어찌 됐건 '리'는 셋이서 함께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만들었던 기억을 통해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 다시 새로운 모터를 통해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셋의 배처럼.
영화는 현실적인 우리 주변의 상황들을 말하고 있다.
결국 잊히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고 살아가게 하는 사람들 역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저마다 상처를 끌어안고 보듬고 의지하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어딘가에는 같은 장소를 공유하고 함께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삶을 이어가는 큰 이유가 된다. 그것이 가족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영화 속 '리'에게 패트릭이 그랬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