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1.
문득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일 수도 있고, 힘든 업무에 치여서일 수도 있고, 가족 때문일 수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누구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내가 무슨 일 때문에 힘든지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그냥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는 이미 그런 사람이 옆에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누군가는 그런 사람을 아직 찾지 못했을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까이 그런 사람을 두고도 아직 알아보지 못했을 수 있다.
영화 <멋진 하루>는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의 이야기다.
영화는 희수가 전 남자 친구 병 온에게 빌려준 돈 350만 원을 받기 위해 그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병운은 별 볼일 없이 산다. 희수와 헤어진 1년 동안 결혼을 했지만 얼마 못가 이혼을 했다. 있는 돈도 몽땅 날리고 전세금도 날린 채 집도 없이 경마장을 기웃거린다. 그럼에도 성격은 어쩜 그리 낙천적인지, 매사에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희수는 '여전한' 병운을 보며 답답함을 느끼지만 돈을 받기 위해 병운과 길을 나선다. 그렇게 희수의 '어떤 하루'가 시작된다. 그저 돈을 받기 위한 희수의 수많은 하루 중에 병운을 만난 '어떤 하루'는 조금씩 멋지게 물들어간다.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누구나 그렇듯, 저마다 크고 작은 결함과 결핍,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다르지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병운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병운에게 호의적이다. 돈을 빌려달라는 그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선뜻 돈을 빌려준다. 자신도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마저도 병운의 요청에는 흔쾌히 돈을 빌려주고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병운은 위로가 되는 존재처럼 보인다.
처음엔 희수는 이런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와 함께한 하루 동안 조금씩 자신이 좋아했던 병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왜 자신이 병운을 좋아했었는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떠올리게 된다.
하루가 저물어갈 때 즈음 희수는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자신이 왜 병운을 찾아왔는지. 병운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는지를.
"네가 이쪽 얼굴 좋아했었잖아. 난 네가 이쪽 좋아해 가지고, 늘 니 왼쪽에 서있었는데."
희수가 좋아하는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희수에 왼쪽에 서고,
"네가 나랑 있는 동안에 행복한 줄 알았는데 헤어지자고 말할 때 그때 너 정말 행복해 보였어"
이별의 마지막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병운이다.
"내가 조금 단순한 건 사실인데,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걸?"
단순해 보이고 걱정 없어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어쩌면 가장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은 병운 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병운은 위로가 필요한 주변 사람들에게 한없이 좋은 사람이 되어준다.
누군가를 대함에 있어서 만큼은 늘 진심인 병운이다.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병운이고, 주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병운이다. 희수가 좋아했던 병운이다.
그것이 그녀가 위로가 필요한 순간 병운을 찾은 이유다.
문득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다.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을,
비록 헤어진 사이였지만 희수의 '어떤 하루', 아니 '멋진 하루'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