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매(?) 앞에 평등하다”
이 격언을 깨닫게 된 건 복싱을 시작하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갓 복싱 스텝을 익히고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향해 ‘원! 투! 원! 투!’를 던지던 풋내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면 괜히 복싱 자세를 잡아보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갑자기 ‘쉿, 쉿’ 호흡을 내뱉으며 허공에다가 주먹질을 해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훑고는 ‘이 사람 정도면 내 전투력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흐뭇해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파퀴아오와 메이웨더를 데려와도 몇 대는 때릴 수 있겠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달콤한 상상을 펼치던 순간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첫 스파링이 있던 날도 평소처럼 거울을 보며 스텝을 밟고 경쾌하게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습니다. 몇 라운드를 반복하고 있을 무렵 관장님이 소리쳤습니다.
“혹시 오늘 저와 스파링 하고 싶은 사람 없나요?”
못 들은 척했어야만 했지만 평소 링 위에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한번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지원합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제 2개월에 접어든 복싱 경력으로 관장님과의 스파링을 신청 하디니.
스파링을 하기 전 마우스피스를 물고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착용했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제법 멋있었습니다. 조금 긴장도 됐지만 첫 스파링이라는 설렘이 더 컸습니다.
공이 울리고 스파링이 시작됐습니다. 생각보다 링 바닥은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라는 말을 한 것이 무하마드 알리였던가요?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저는 벌처럼 링 주위를 웽웽거리다 나비처럼 관장님께 펀치를 뻗었습니다. 처음 관장님은 저의 나비와 같은 펀치(‘펀치’라 쓰지만 ‘솜방망이’라 읽어도 무관합니다)를 그저 귀엽게 바라만 봤습니다. 갑자기 관장님이 뻗은 왼손 주먹이 저의 오른쪽 옆구리에 꽂혔습니다.(저는 보지 못했지만 주위에서 그렇다고 말해줬습니다) 다시 겸손을 찾는데 그 한방이면 충분했습니다.
한참 동안을 링 바닥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관장님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원래 복싱은 많이 맞아봐야 잘하는 거예요. 맞다 보면 맷집이 생기고 누구랑 해도 겁부터 먹지 않고 도전할 수 있을 겁니다.”
스파링이 끝난 후 저는 오른쪽 옆구리에 깊은 내상을 입고 며칠간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습니다.
무모했던 첫 스파링이었지만 처절하게 깨달은 교훈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싱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쳤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입니다. 설령 무모해 보일지언정 도전을 통해 얻는 경험치들이 자신이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