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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왕 Jul 10. 2019

동산 하우스 421호

이사를 떠나며, <비우고 채우기>

2007년 처음 서울에 올라왔다.

아들에 대한 걱정이 많던 부모님은 첫 보금자리로 기숙사를 선택해주셨다. 서울에 간다고 가뜩이나 들떠있는 아들놈의 표정을 보시더니 자연스레 걱정이 많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기숙사에 들어가면 통금도 있고 관리해주는 사람도 있으니 아들의 엇나감(?)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던 나는, 첫 학기에 기숙사에서 쫓겨나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벌점 100점이면 쫓겨나기 충분한 점수였지만 당시 내가 세웠던 기록은 600점에 육박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숙사에서 짐을 싸고 나갈 때 동기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야 그래도 기숙사 들어와서 너를 가장 오래 보는 시간인 것 같아"


그렇게 짧고 강렬했던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하숙을 시작했다. 기숙사에서 쫓겨난 아들은 부모님께 '이왕 이렇게 된 거 자취하면서 혹독한 사회에서 혼자 호연지기를 기르겠다'라는 계획을 늘어놓았다.


그때 부모님의 표정은 이 녀석을 굳이 서울로까지 보내서 공부를 시켜야 하나라는 의구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렇게 하숙 생활을 1년 동안 하던 중 성적은 더욱 안 좋아졌고 결국 나라의 품으로 안기는 것이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그리고 나라의 품에 안겨있는 2년 동안 부모님은 마침내 아들 걱정에서 조금은 해방되셨다.  


그렇게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복학을 앞두고 학교엔 새로운 기숙사가 생겼다. 역시나 부모님은 아들을 기숙사로 보내셨고,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있었지만 직장을 잡을 때까지 무사히 머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급하게 취직을 하게 됐고 기숙사를 빠르게 비워야 했던 탓에 집을 제대로 알아볼 여력이 되지 않았다. 급한 대로 작은 고시원 수준의 방에서 첫 자취를 시작했다.

처음 잡은 직장이 꼭 원하던 분야가 아니었기에 금방 옮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직에 성공하면 바로 이사를 해야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곤 이땐 미쳐 알지 못했다.


계약을 마치고 기숙사에서 짐을 옮겼다. 짐이 많지 않았던 탓에 여행용 가방으로 10여 차례 혼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짐을 옮겼다.

작은 방이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5평 남짓했던 방에 나름 인테리어랍시고 이것저것 사들이며 방을 채웠다.


얼마 간 지내다 보니 자꾸 늘어나는 옷과 집기들 탓에 방이 많이 좁아졌다. 더욱이 옥탑에 가까웠던 탓에 여름엔 덥고 겨울에 유난히도 추웠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이직에 성공하면 집을 옮기겠다는 목표는 잠시 넣어두고 집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한 달 정도를 집을 찾아다녔다. 쉬이 괜찮은 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쯤 포기 상태로 부동산 어플을 뒤적거리던 중 마음에 쏙 드는 매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도 책정해둔 예산에서 해결이 가능했고 꽤나 널찍한 방에 부엌과 화장실이 완전히 분리된 집이었다. 그렇게 이사를 결심하고 집을 보러 갔다.

큼직하게 나있는 창문과 조금은 특이한 마름모(?) 꼴의 구조, 거기에 따로 분리되어 있는 화장실과 부엌.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전에 살던 사람이 예쁜 여학생이라는 부동산 사장님의 설명은 혹시 나란 기대를 갖게 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사람 사는 일에는 어디에나 로맨스가 있는 법이니까...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다.

처음 이사를 했을 때보다 제법 짐이 많아졌다.

혼자서 캐리어 몇 번으로 완료됐던 이사가 친구를 세명이나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차를 이용하는 수준이 됐다.  

그렇게 터잡은(?) 곳이 마포구 신수동 91-90 에 위치한 동산하우스 421호다.

누군가에겐 방 하나 되는 작은 공간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나에겐 고된 서울 생활을 달래줄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 곳에선 왠지 새로운 기운을 받아 원하는 직장으로 옮기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곳에서 답답한 순간이면 옥상을 오르곤 했다.

날이 좋은 날엔 옥상에 올라가면 한강과 남산이 보였다. 밤에는 운 좋게 별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청승맞지만 둥근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옥상에 올라 소원을 빌기도 했다.

주말엔 친구들을 불러 모아 술을 마시기도 했고 연애를 하고 있을 땐 집에서 나름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10평 남짓한 방이었지만 이 공간에서 쌓은 추억들은 평창동에 있는 여느 회장님 댁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결코 작지 않았다.


불편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날이 더워지면 어디서 나오는지 자꾸 출몰하는 바퀴벌레들 탓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탓에 조금이라도 무게가 있는 짐을 옮기려면 낑낑 씨름을 해야 했다.

크고 작은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불편함마저 좋았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사는 곳을 포함해 주변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우편이 배달됐다.  

하는 수 없이 집을 비워야 했다. 한편으론 잘됐다고 생각했다. 나쁘진 않았지만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또 이사를 준비했다. 은행 대출도 받으면서 지금보다 좋은 집들을 알아봤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결정하게 됐다.


어느새 이삿날이 다가왔고 혼자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처음으로 이삿짐 서비스를 이용했다.

혼자서 캐리어 몇 번 나르는 것으로 끝나던 이사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게 됐고 이제는 이삿짐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작은 캐리어 하나로 시작됐던 서울 생활이 이제는 1톤짜리 용달차를 가득 메울 정도가 됐다.


물건을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버리고 갈 물건들이 많았다.

짐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레 이곳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원하던 직장의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낙심하고 있는데 괜찮다는 아빠의 문자를 받고 펑펑 울었던 기억, 그리고 다음 해 다시 원하던 직장에 최종 합격하고 기뻐했던 기억.

여자 친구와 크리스마스에 사람이 많은 곳들을 피해 조촐하게 선물을 교환하며 행복해하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이별을 말해야 했던 가슴 아팠던 기억.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간혹 놀러 온 동생과 싸우기도 했고... 수많은 기억이 10평 남짓한 방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챙겨야 할 짐들과 버려야 할 짐들을 분류하는데 신기하게도 이 곳에 있었던 모든 기억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가져가고 싶었다.


어느새 이삿날이 다가왔다.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생각보다 급하게 준비한 탓에 제대로 작별할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리고 이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했다.

4년간 머물렀던 이 공간은 나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소중한 장소가 될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겠지만 이 공간에서 만든 추억들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 곳에서 경험했던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우정과 꿈들은 앞으로 어디로 또다시 이사를 가든지 이삿짐 한편에 고이 두고 항상 같이 다닐 것이다.


어찌 됐든 새로운 집에 짐들을 풀었다. 거실 한편에 수북이 쌓여있는 짐들을 하루 종일 정리했다.(사실 아직도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짐을 풀면서 언제 이렇게 많은 살림을 모았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뭐든 채우는 것에만 익숙했던 서울 생활이었던 것 같다.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이것저것 사모으기 바빴고 속을 채우기보단 겉을 치장하기 바빴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이런 욕심들은 비우고 좀 더 의미 있는 것들로 공간을 채워야겠다.


비어있는 방들을 보면서 새로운 공간을 욕심으로 채우기보단 나와 사람들 간의 소중한 추억들로 채울 것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기억들로 새로운 공간을 채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동산 하우스 421호'에서 4년간 함께 자라고 쌓였던 추억들도 함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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