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1.
[그저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는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입니다.]
영화'우리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어린 배우들의 연기에 놀랐고, 아이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 '우리들'의 이야기, 윤가은 감독의 다음 연출작이 더욱 기대됩니다.
영화의 시작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체육시간. 피구경기를 위해 편을 가르지만 누구도 '선이'와 편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선이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편이 정해집니다. 그러나 같은 편이 된 친구가 금을 밟았다며 선이를 탈락시키죠. 선이는 금을 밟지 않았지만 누구도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선이는 멀찍이 떨어져야 했죠.
선이는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선이네 반에서는 '보라'가 가장 인기가 많고 친구들의 동경을 사고 있는데 보라와 친구들은 선이를 자신의 무리에 포함시키지 않죠.
그리고 여름방학을 하던 날, '지아'라는 새로운 친구가 전학을 옵니다.
지아가 처음 마주친 친구는 학교에 홀로 남아있는 선이었습니다. 둘은 자연스레 가까워집니다. 여름방학 내내 같이 지내며 서로의 비밀까지 터놓고 지내는 친한 친구가 되죠.
둘의 관계에서 에어컨이 없다거나 핸드폰이 없거나 선이의 부유하지 못함이나 가정환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가 된 선이와 지아였지만 어째서인지 개학을 하고 난 후 관계가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오해가 생긴 상태에서, 보라가 둘의 사이에 나타나면서입니다.
선이는 지아와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상황은 악화됩니다. 그리고 결국 서로 알고 있는 비밀들을 폭로하며 마음에 생채기를 주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것처럼 흘러갑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다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체육시간입니다. 피구를 하기 위해 편을 나누고 있습니다. 서로 뽑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번엔 선이가 아닌 지아입니다. 선이가 당한 것과 똑같습니다. 지아가 속한 편의 친구는 지아를 떨어뜨리기 위해 금을 밟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선이. 선이는 머뭇거리다가 지아가 선을 밟지 않았다고 말하죠.
영화는 오롯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줍니다. 친구를 사귀고 갈등을 겪고, 어울리다가 헤어지고 다투기도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어쩌서인지 아이들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들'이 겪는 이야기와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 그 어려움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영화에서 '선이의 손톱'은 그 어려운 과정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지아와 봉숭아물로 빨갛게 물들였던 손톱은, 때론 보라의 매니큐어로 덧칠되기도 하고, 그 덧칠된 매니큐어가 벗겨지며 기존의 봉숭아물이 든 손톱으로 돌아오죠.
영화 내에서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어른들의 기준입니다.
어디에 사는지가, 핸드폰이나 에어컨이 있는지, 집안 환경이 어떤지가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기준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고민으로도 머리가 아픈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기준은 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죠.
아이들, 그리고 우리들도 어려워하는 문제에 명쾌한 해결책을 주는 것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선이의 동생 '윤이'입니다.
선이는 친구에게 당하기만 하는 동생 윤이에게 맞지만 말고 같이 싸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때 윤이는 이야기하죠.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도 또 때리고.
계속 때리면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어린 윤이의 말을 듣는 순간, 멍 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잡한 관계 맺기에 대한 간단하지만 명쾌한 정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윤이가 제시한 답을 모르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수많은 시선들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다양한 기준들로 재단하면서 윤이의 답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이죠.
지아와 선이는 심하게 다투고 다시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지만 여전히 선이의 손가락 끄트머리엔 두 사람이 함께 했던, 봉숭아물이 불게 들어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봉숭아물은 무언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상징이었습니다.
어쩌면 영화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당신에게도 가슴 한편에는 빨갛게 물든 봉숭아 자욱이 남아있지 않느냐고.
윤이가 우리에게 해준 말은 영화가 어딘가 남아 있을지 모르는 빨간 봉숭아 자국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