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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11. 2019

산사를 걷다 - 11

부안 내소사, 개암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편을 읽다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흘간 산사 20곳을 방문하였다. '산사를 걷다'는 열흘간 쓴 일기 형태의 글이다.



즐겨보는 TV 프로 중에 ‘미운우리새끼'란 프로가 있는데 한참 전 방송에서 개그맨 박수홍이 50번째 생일을 맞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과거가 아무리 좋았어도 지금이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 어머니는 오십으로 돌아가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오늘이 늘 내 생의 최고의 날이다." 오늘이 내 생의 최고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방송에서 박수홍은 자신이 늘 좋아하는 클럽을 갔다. 나는 나대로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산사를 걷는다. 



오늘 찾아간 곳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이 있는 부안군 내소사. 초입길은 길게 뻗은 전나무 길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요즘 그나마 이런 숲길을 걸으면 숨이 좀 트이는 듯하다. 이 숲길은 그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전 어느 때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그 옛날 누군가는 후대에 이처럼 아름다운 숲길을 남겨주기 위한 일을 한 것이다.  


내소사 일주문. 일주문에서는 본당이 보이지 않는다.


전나무 숲길 끝에는 벚나무가 이어진다.


사람을 부르는 숲길이다. 내소사의 이름이 '모든 것이 소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내소사에서 좋았던 것은 돌로 쌓은 축대와 돌계단이었다. 이 돌계단을 오르면 적당한 공간과 나무가 있고, 또 한 단의 돌 축대와 계단을 오르면 불당이 있는 공간에 이른다. 이 공간에서 좌우로 또 작은 돌 축대로 만든 단이 있고, 돌계단이 있고 불당이 놓여 있다. 사찰이 아니라면 이처럼 멋진 설계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축대로 단을 만들어 공간을 나누었다.


1,000년 나이의 나무


대웅보전 전경. 안내 설명에 있는 내용처럼 장중함보다는 다정함을 느끼게 한다.


대웅보전에는 아름다운 창살무늬가 있다. 대흥사의 그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건물과 잘 어울린다.


대웅보전 현판. 획의 흘림이 멋있다.


피고 있는 산수유. 꽃말은 '영원불멸의 사랑'.


아름다운 분재 형상이다.


너머로 능가산이 보인다.


내소사에서는 돌축대 구경만 하고 간다.


내소사는 사찰 전체가 수천 개의 돌로 이루어진 축대로 잘 어우러져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도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몇 번의 전소와 재건 또 임진왜란 같은 외부의 침략을 겪으면서 또는 근래에 6.25를 지나면서 대부분 소실되거나 재건을 반복하였다고 쓰여 있다. 지금도 많은 사찰들이 새 건물을 증축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오래된 사찰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도 있겠으나, 지금 지어지고 만들어지는 공간 또한 50년, 100년 뒤에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1,000년이 된 느티나무.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고 있다. 1,000년 나무의 정령이 있다면 백 원짜리 받고 소원을 들어줄까? 소원은 진심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대부분 유명한 사찰 진입로에는 식당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내소사의 진입로에 있는 가게들은 이제까지 보아 왔던 곳과는 다른 활기가 있었다. 유명한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였는데, 부침개를 즉석에서 부쳐 파는 아가씨, 송편과 개떡을 파는 아주머니, 엿의 시식을 권했던 아저씨, 기념품 가게 홍보를 하는 아저씨도 밝은 표정에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져서 좋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시골 장터에 꼭 들려 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곳에서 달랠 수 있었다. 


내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개암사라는 곳이 있다. 크지 않은 절이나, 저수지를 지나치며 오르는 길에는 벚나무 길이 있고, 사찰 진입로에는 적당히 괜찮은 산책로 숲길이 있다. 개암사도 내소사와 같이 돌로 쌓은 축대가 인상적이었고, 절 주변에 있는 차 밭도 보기에 좋았다.  


개암사일주문. 능가산 내소사, 능가산 개암사이다.


전경을 찍고 싶은 것이 아니라 돌축대 전체 모습을 찍고 싶었다.


돌계단 옆에도 축대를 쌓았다.


윈도우 배경화면 이미지에 있을 것 같은.


페루의 쿠스코 골목에서 돌담 설명을 십여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가이드라면 내소사와 개암사에서는 산사 전체를 돌며 돌담을 보여주고 싶다.


개암사 대웅전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돌계단


바람이 지나갈 때 지붕 모서리의 풍경이 시차를 두고 각각 울린다.


축대의 옆모습. 어떤 구도로 찍어야 좋을지 고민하고 여러 장을 찍었으나 눈으로 보이는 것을 담을 수 없었다.


꽃무늬는 아니지만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돌계단 양 옆의 축대가 어디(?)와 다르게 매우 조화롭다.


개암사 주변에서 차밭이 있다. 절에서 재배하고 있는 것일까?


대웅전 옆모습


꽃망울. 잎 하나 없는 마른 가지에서 이렇게 꽃을 피운다.


내소사를 가면 모시송편, 흑임자 송편, 개떡을 먹어 보길 추천한다. 이 송편을 사다가 부모님께 드렸더니, "이런 송편을 추석 제사상에 올려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신다. 전라도 산사 여행까지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대전에 들려서 동생네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첫 질문은 예상했던 대로 “어디가 가장 좋았어”였고, 나의 속 마음 대답은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몇 곳 있었으나 아직도 많은 곳이 남아 있어요. 더 다니겠다는 말이에요.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갔었던 선암사가 제일 좋았어요’ 였으나, 실제 대답은 어디는 뭐가 좋고, 어디는 뭐가 좋고 하는 아는 체, 잘난 체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시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보고 좋았던 것을 함께 보고 걸으며 "난 이게 제일 좋아요”라고 어리광도 못 부릴 것이고, 어린 자식이 “계절이 또 이렇게 바뀌고, 세월이 많이 지나갔어요”라는 한탄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부모님이 내 곁에 계신다는 것에 행복해하면서, 남은 소중한 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 난 아직도 많이 걸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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