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7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1997년 영화 '첨밀밀(甛蜜蜜)'은 내 인생 영화 중 하나이다. 영화 제목 '첨밀밀'은 대만 가수 등려군(鄧麗君, Teresa Teng, Deng Li Jun)의 동명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 첨밀밀(甛蜜蜜),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들을 때면, 우연으로 만나 필연의 사랑을 한 주인공 '소군'과 '이요'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노래를 하며 홍콩 거리를 달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올레길 걷기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첨밀밀' 영화 얘기인가 싶겠지만, 작년 이맘때 걸었던 봄날의 올레길 7코스를 생각하니 이 영화가 생각났다.
올레길 7코스는 8코스, 10코스 등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손꼽는 아름다운 걷기 코스이다.
7코스 : 서귀포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 월평 아왜낭목, 17.5km (5-6시간 소요)
칠십리시공원을 지나면서 몸이 풀릴 즈음 삼매봉을 오른다. 삼매봉 오르는 길은 제법 경사가 있어서 부족한 체력을 원망했다. 삼매봉에 오르고 나면, 외돌개를 보면서 걷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외돌개 바위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고 한다. 외돌개를 장군의 형상으로 치장시켜 전투를 했다는 것과 바다로 나간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하자 바다를 향해 통곡을 하다가 바위가 된 할머니 전설. 실제 는 믿지 않는 전설이지만, 전설이 사실이었다면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바위나 나무가 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면 난 아마도 나무를 선택할 것 같다. 물론 장소가 중요하긴 하다.
봄의 꽃인 매화, 유채꽃, 동백꽃, 벚꽃 등이 아니어도 올레길 곳곳에 피어나는 이름을 모르는 그런 꽃들을 보면 발길을 멈춘다.
외돌개 전망대를 지나 돔배낭길을 걷는다. 돔배낭길은 돌배처럼 넓은 잎을 가진 나무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법환리는 직장 생활 초기, 자유 출퇴근 근무 시절. 오후에 무작정 제주도 비행기를 끊고, 이곳에 와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다시 출근을 했던 추억이 있다. 그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 걸었던 9km 길은 올레길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길을 모두 보여준다. 당시 다양한 길을 사진에 다 담고 싶었다.
다양한 형태의 길들을 걷다 보면 어느덧 종착지인 월평마을 아왜낭목에 도착한다. 아왜나무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라고 한다. 행복했던 걷기를 마치고 숙소로 정한 곳은 대평포구에 있는 펜션. 뒤늦게 물집 생긴 발바닥도 아파오고, 배도 고프고, 술 한잔도 그리워졌다.
영화 제목이 왜 첨밀밀인지, 첨밀밀 가사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첨밀밀(甛蜜蜜)은 '벌꿀처럼 달콤하다'는 뜻이고, 사랑하는 연인의 미소가 그렇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장만옥이 남주인공 여명과 힘든 생활이지만 함께 즐거워하고 행복하던 시절 지었던 미소가 '첨밀밀'이라고 고백하는 노래가 '첨밀밀'이다.
'봄바람이 꽃을 피우고,
이 봄바람에 피어나는 꽃처럼 당신의 미소는 아름다워요.'
사랑하는 연인의 미소가 봄바람에 피는 꽃만큼이나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노래가 '첨밀밀'이다. 꽃피는 봄 올레길의 아름다운 길들이 너무 아름답고, 좋았었다고 뒤늦게 고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