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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16. 2019

내가 걷는 이유

길을 걸으며 내가 지나온 길을 생각하고 앞으로 갈 길을 묻고 배운다.

어느 때부터인가 걷는 것이 좋아졌다. 20여 년의 직장생활을 그만둔 2017년 봄부터 울릉도를 시작으로, 캐나다에서 걷고, 남미에서 걷고, 다시 제주도 올레길을 걸었다.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40,000km 걷기 목표를 세웠을 때부터였을까? 그도 아니면 1988년 대학 1학년 때 무작정 떠났던 혼자 여행에서 시작되었을까?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걷는 그 자체를 예전부터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2017년 봄, 울릉도를 시작으로 나의 긴 여행은 시작되었다.


울릉도 성인봉 정상. 몇 시간 등산의 힘듦을 단번에 잊게 해주는 경관. 산을 오르는 가장 큰 기쁨이다.


설악산 오색약수-대청봉 코스. 지금 다시 혼자 올라가라고 하면 쉽게 마음먹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청봉을 오르고, 몇 개의 산과 동해안 도시 두어 곳을 다녀온 다음 난 캐나다 밴쿠버로 떠났다. 스스로 약속한 여행에 관한 글쓰기 '아빠, 가출하다' 제목을 이때 생각해 두었다.


딸이 그려준 그림. 그림에서처럼 배낭을 메고 전 세계를 다니고 싶었다.


내가 걷는 이유는 내가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걷는 게 참 좋다.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을 따기도 하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걷고 있으면, 조금도 힘들지 않다. 자전거보다도, 자동차보다도 걷는 게 좋았다. 아, 혼자서 걸을 수 있다면”. ‘1리터의 눈물’의 저자 키토 아야. 불치의 병에 걸려 25세에 생을 마감한 소녀의 말이다.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그 누군가에게는 큰 축복인 것이다.


무엇인가를 가진 자는 무엇인가를 가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 난 지금 그런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 드리며 걷는 행복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밴쿠버는 걷기 좋은 트레킹 코스가 너무 많다. 캐나다 전체가 그런 나라다. 빙산이 녹아 만든 호수를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길을 걷다' 시리즈로 밴쿠버와 캐나다 로키 걷기를 쓸 예정이다.


캐나다에서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난 로키산맥을 주저 없이 얘기할 것이다.


딸과 함께 갔었던 캐나다 퀘벡. 아직은 가보지 못한 유럽 도시를 걷는 느낌이었다.


캐나다 퀘벡 거리. 도시를 걷는 것은 늘 즐겁다. 어떤 때는 그 길이 익숙해질 정도로 몇 번을 걷기도 한다.


캐나다 옐로나이프 프레임 호수길. 지금도 그때 걸었던 느낌과 풍경이 떠오르는 듯하다.


페루 마추픽추. 관광객이 아닌 걷는 사람으로 남미를 다시 가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 사막길도 걸을 것이다.


이과수 폭포. 여행은 걸으며 보고, 듣고, 직접 느끼는 것이다. 사진 몇 장으로 그 느낌과 감동을 담을 수 없다.


사람들은 생각을 하면서 걷거나, 생각을 하기 위해서 걷는지 모르지만, 난 여행 중에 걸으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당장 필요한 것만 가끔 생각한다. 오늘 저녁은 어디에서 묵어야 하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이런 고민 외에는 눈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시냇물 소리를 듣고, 숲의 내음 같은 것을 맡을 뿐이다. 도시에서는 도시를 느끼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걷고 나서 잠시 앉아 쉴 때 고작 하는 생각은 ‘참, 좋구나’, ‘어이구 힘드네’, '또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하는 정도이다. 잡다한 상념을 떨치기 위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우게 된다.


아름다운 길은 잘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걸은 길이다. 그런 흔적과 사람들의 추억이 아름다운 길을 만든다.


걷는다는 것은 출발과 도착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좋다. 걷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이 있고, 보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걷기를 마치고 종착지에 도착했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작은 행복이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걷기 시작하자마자 도착했을 때 나를 상상하기도 한다. 몇 시간을, 몇 킬로미터를 걷고 나면 나는 또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아마존의 숲길 트레킹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


알래스카의 겨울이 아닌 여름도  가보자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시애틀 마운틴 레이니어. 한여름에 볼 수 있는 설경이었다. 나의 오랜 친구는 이 산의 정상(4,392m)을 올라갔었다. 난 아직까지는 일반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트레일이 좋다.


6개월이란 나름 긴 기간이었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와 도시를 어느 정도 다니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나마 캐나다에서 여러 곳을 다녔던 것에 만족하고, 미국이나 남미의 여러 나라들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끝도 없는 해변이 펼쳐져 있었던 미국 워싱턴 주 서부 해변. 해변 길만 수십 km인데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여행의 즐거움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여행도 다니지만, 왜 오지로 높은 산으로 힘든 고생을 하고 이를 감수하며 다니는 것일까? 그 답이 무엇인지 난 아직 모르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인생 자체가 길게 때론 짧게 느껴지는 여행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인생은 여정이며, 여행 또한 여정이다.


길고 짧은 각 여행의 여정들 속에서 내 인생을 돌이켜보고 지금 현재는 내가 걷고 있음만을 느낄 뿐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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