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8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 중에 외사촌 누나가 있다. 재작년 밴쿠버에서 6개월을 지낼 때 누나네 집에서 지내면서 어학원도 다니고, 캐나다 여행도 다니고 했었다. 나도 어느덧 50을 앞둔 나이에 다시 만난 누나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고 자랑스러운 분이셨고, 누나와 나눴던 수많은 대화들은 인생의 큰 전환기에 있던 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누나가 잠시 한국에 왔고,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 얘기를 하다 보니 6시간이나 훌쩍 지났다. 함께 얘기를 나누며 누나가 들려주는 얘기에 또 여러 가지를 공감하게 되고 배우게 된다.
올레길 8코스의 사진과 글을 정리하다 보니, 8코스에서 들렸던 '약천사'라는 사찰에서 본 글이 어제 누나가 들려준 얘기와 비슷한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출처를 찾아보았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행복에 대한 정의는 많을 것이다. 당시 나는 무작정 행복해 지기 위한 그런 긴 여행길에 있었던 것이다.
행복이란 나를 위하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 아닐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어서 행복하고, 그것을 받은 사람은 그 마음에 행복해진다.
8코스 : 월평 - 대평포구, 19.4km (6-7시간)
8코스 역시 올레길의 대표 코스 중 한 곳이다. 월평마을에서 출발하여 대포포구에 들리는 것으로 8코스 걷기가 시작된다.
올레길의 몇 코스를 걷다 보니, 20km 미만의 5-6시간 걷기가 가장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 운동의 보람을 느낄 정도의 힘듦도 있지만, 두세 시간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고, 차라도 한잔 마실 수 있는 시간으로 하루를 알차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찰을 다니다 보면 좋은 문구나 격언들을 많이 본다. 그때그때 깨달음을 주는 수많은 글들이 있지만, 내가 그것을 받아 드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글씨일 뿐이다.
올레길은 앞서 얘기했듯이 제주의 유명 관광지를 바로 가로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조금 돌아가거나 관광지보다는 해변과 마을을 걷는 코스가 많다. 올레길을 기획하고 만들 때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검토를 했을까 새삼 존경의 마음을 가진다. 8코스에서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 봐야 하는 곳 중 한 곳이다.
베릿내 오름의 '베리'는 가파른 계곡이나 절벽, 벼랑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제주에는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 이 오름은 산, 악, 봉, 오름, 동산, 메, 미, 올 등 매우 다양하게 표기되고 불리고 있는데 산, 악, 봉은 한자 표기고, 메, 미, 올 등은 지역마다 불리는 특별한 이름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아주 예전에는 그냥 중문해수욕장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색달의 지명을 넣어 함께 부른다. 중문단지의 대표 관광지다. 2000년 초기만 해도 중문단지는 제주도의 최고 관광지였던 곳이다. 지금도 고급 호텔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긴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제주도에 와도 들리지 않는 곳, 중국 관광객이나 국내 단체 관광객이 많아서 피해야 할 장소로도 여겨지곤 했다. 서울이나 지방 도시가 빠르게 변하는 것보다 이곳 제주는 더 빨리 발전하고 변하는 곳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올레길 8코스가 이곳을 지나고 있어서 나도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항상 고민하는 것이, 유명 맛집에 들려 줄을 서서라도 먹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같은 메뉴라도 알려지지 않은 숨은 맛집을 찾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이다. 검색사이트에서 높은 순위로 검색이 된다면 그 식당은 광고이거나 이미 숨은 맛집이 아니다. 많은 맛집은 이미 어느 시간 대에 가야 줄을 덜 서는지가 관건이 되었다.
용왕난드르 마을은 '바다로 뻗어 나간 들, 용왕이 나온 들'이란 뜻이라고 한다. 제주도의 지명은 알면 알수록 재밌다. 어쩌면 우리는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사용했던 많은 고유의 이름들을 너무 많이, 아니면 모두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날은 하루가 짧고, 어떤 날은 하루가 길다. 예전에 왔었던 길도 올 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누구와 오는지에 따라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이 평생 동안 추구하고 있는 행복이란 기준도 그렇다. 내 마음과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은 늘 같지 않다.
사촌 누나는 각자 본인 인생을 살면서 본인 마음을 나눠 쓰는 것에 대해 얘기하셨다. 이를테면 나를 위한 30%, 가족을 위한 30%, 내 일과 국가, 사회를 위한 나머지로 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다. 누나는 각각을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고, 어느 하나가 나머지를 희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셨다. 또 정말 중요한 것은 각각에 대해 늘 새로운 마음, 새로운 기준으로 채워야 한다고 얘기하셨다. 행복은 늘 한결같을 때 오는 것이라 새로운 것을 찾아 채우고자 할 때, 그것을 채워 나갈 때 오는 것이라고 난 이해했다.
누나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마도 평생 그럴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누나 같이 늘 적극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