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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17. 2019

제주를 걷다 - 6

제주 올레길 8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 중에 외사촌 누나가 있다. 재작년 밴쿠버에서 6개월을 지낼 때 누나네 집에서 지내면서 어학원도 다니고, 캐나다 여행도 다니고 했었다. 나도 어느덧 50을 앞둔 나이에 다시 만난 누나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고 자랑스러운 분이셨고, 누나와 나눴던 수많은 대화들은 인생의 큰 전환기에 있던 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누나가 잠시 한국에 왔고,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 얘기를 하다 보니 6시간이나 훌쩍 지났다. 함께 얘기를 나누며 누나가 들려주는 얘기에 또 여러 가지를 공감하게 되고 배우게 된다.


올레길 8코스의 사진과 글을 정리하다 보니, 8코스에서 들렸던 '약천사'라는 사찰에서 본 글이 어제 누나가 들려준 얘기와 비슷한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명예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또 내가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나중에 출처를 찾아보았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행복에 대한 정의는 많을 것이다. 당시 나는 무작정 행복해 지기 위한 그런 긴 여행길에 있었던 것이다.


'써니데이 제주' 펜션 사장님은 올레길을 걷는 나를 위해 간식을 챙겨 주셨다.


행복이란 나를 위하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 아닐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어서 행복하고, 그것을 받은 사람은 그 마음에 행복해진다.


8코스 : 월평 - 대평포구, 19.4km (6-7시간)


8코스 역시 올레길의 대표 코스 중 한 곳이다. 월평마을에서 출발하여 대포포구에 들리는 것으로 8코스 걷기가 시작된다.


19.8km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도 꼬박 네 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리다.


올레길의 몇 코스를 걷다 보니, 20km 미만의 5-6시간 걷기가 가장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 운동의 보람을 느낄 정도의 힘듦도 있지만, 두세 시간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고, 차라도 한잔 마실 수 있는 시간으로 하루를 알차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대포포구 전경. 한강을 바라보는 전경을 가진 아파트에만 살아도 삶의 질이 높아지는 듯 느낄 텐데, 이런 전경을 늘 마주하며 산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약천사는 큰 사찰이다. 경내에서 제주도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


깨달음의 길이 왜 어렵지 않겠는가? 깨달음에는 아는 것과 함께 온전히 실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사찰을 다니다 보면 좋은 문구나 격언들을 많이 본다. 그때그때 깨달음을 주는 수많은 글들이 있지만, 내가 그것을 받아 드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글씨일 뿐이다.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동남아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전경이다.


대포포구에서 조금 걷다 보면 '바다다'라는 유명한 카페가 있다. 특색 있는 건물도, 분위기도, 음악과 음식도, 카페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제주도의 핫플레이스 명성을 가질만하다.


올레길은 앞서 얘기했듯이 제주의 유명 관광지를 바로 가로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조금 돌아가거나 관광지보다는 해변과 마을을 걷는 코스가 많다. 올레길을 기획하고 만들 때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검토를 했을까 새삼 존경의 마음을 가진다. 8코스에서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 봐야 하는 곳 중 한 곳이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의 결과로 생기는 기둥모양의 바위이다.


자연은 위대한 최고의 예술가이다. 수백 년 후에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인위적으로 바다와 이런 전경을 만들 수도 있을까?


자연의 아름다움에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아직은 무신론자인 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가끔은 신의 존재를 생각한다.


제주 해변 사진만 찍는 전문 사진작가도 이미 많을 듯하다. 눈과 마음으로 이 전경을 어찌 다 담을 수 있을까?


베릿내 오름을 오르는 길. 시작은 계단이지만 이후 길은 쉬운 산책길이다.


베릿내 오름의 '베리'는 가파른 계곡이나 절벽, 벼랑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제주에는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 이 오름은 산, 악, 봉, 오름, 동산, 메, 미, 올 등 매우 다양하게 표기되고 불리고 있는데 산, 악, 봉은 한자 표기고, 메, 미, 올 등은 지역마다 불리는 특별한 이름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중문해수욕장이 보인다. 올레길은 이 해수욕장을 가로질러 간다.


아주 예전에는 그냥 중문해수욕장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색달의 지명을 넣어 함께 부른다. 중문단지의 대표 관광지다. 2000년 초기만 해도 중문단지는 제주도의 최고 관광지였던 곳이다. 지금도 고급 호텔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긴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제주도에 와도 들리지 않는 곳, 중국 관광객이나 국내 단체 관광객이 많아서 피해야 할 장소로도 여겨지곤 했다. 서울이나 지방 도시가 빠르게 변하는 것보다 이곳 제주는 더 빨리 발전하고 변하는 곳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올레길 8코스가 이곳을 지나고 있어서 나도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이 해수욕장 어딘가에 앉아 멍하니 바다만 바라만 봐도 좋으련만,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시간과 거리에 쫓기기도 한다.


그래도 아쉬워서 뒤돌아 보고 사진을 찍는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을 거의 지나갈 즈음, 나무로 만든 길을 통해서 언덕을 올라간다


펜션 사장님이 알려주신 맛집, 국수바다. 주차된 차를 보고 손님이 별로 없어서 좋아했는데 쉬는 날이었다. 휴일에도 이 정도 사람이 있는 식당이라니.


개인적으로 항상 고민하는 것이, 유명 맛집에 들려 줄을 서서라도 먹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같은 메뉴라도 알려지지 않은 숨은 맛집을 찾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이다. 검색사이트에서 높은 순위로 검색이 된다면 그 식당은 광고이거나 이미 숨은 맛집이 아니다. 많은 맛집은 이미 어느 시간 대에 가야 줄을 덜 서는지가 관건이 되었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을 지나면 예래생태공원을 지난다. 이 공원도 참 좋다.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해서 아쉽다.


논짓물 해변. 논짓물은 '물을 그냥 버린다(논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지금은 용천수를 바다로 물길을 내어 천연 풀장을 만들어 놓았다.


논짓물을 지나면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펼쳐진다. 이 길은 예전에 모시던 상사분 덕분에 몇 차례 방문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하예포구로 가는 길의 해변. 전에 이곳에 방문하여 한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올레길의 모든 길마다 풍경이 다르고, 그 길을 걸을 때의 마음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르다. 저 멀리 보이는 풍경도 걷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와 있곤 한다.


정말 늦은 점심은 보말 수제비.


저녁 무렵 다시 찾았으나 문을 일찍 닫아서 같은 식당 두 번 식사하기 실패. '난드르'는 무슨 뜻?


용왕난드르 마을은 '바다로 뻗어 나간 들, 용왕이 나온 들'이란 뜻이라고 한다. 제주도의 지명은 알면 알수록 재밌다. 어쩌면 우리는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사용했던 많은 고유의 이름들을 너무 많이, 아니면 모두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숙소를 정하고 밀린 빨래를 하고 잠시 쉬다가 저녁식사는 이렇게 먹기로 했다.


8코스의 숙소. 여목사님이 사장님이신 펜션. 비수기 제주도 펜션은 인터넷에서 예약하지 않고 바로 찾아가면 할인도 해주신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열심히 걸어도 살이 안 빠지는 이유이다.


어떤 날은 하루가 짧고, 어떤 날은 하루가 길다. 예전에 왔었던 길도 올 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누구와 오는지에 따라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이 평생 동안 추구하고 있는 행복이란 기준도 그렇다. 내 마음과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은 늘 같지 않다.


사촌 누나는 각자 본인 인생을 살면서 본인 마음을 나눠 쓰는 것에 대해 얘기하셨다. 이를테면 나를 위한 30%, 가족을 위한 30%, 내 일과 국가, 사회를 위한 나머지로 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다. 누나는 각각을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고, 어느 하나가 나머지를 희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셨다. 또 정말 중요한 것은 각각에 대해 늘 새로운 마음, 새로운 기준으로 채워야 한다고 얘기하셨다. 행복은 늘 한결같을 때 오는 것이라 새로운 것을 찾아 채우고자 할 때, 그것을 채워 나갈 때 오는 것이라고 난 이해했다.


누나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마도 평생 그럴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누나 같이 늘 적극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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