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4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을 변화시켜 내 기준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회사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잘 전달하고 지원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언으로 많이 들었고, 동료에게 같은 조언도 했고, 또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하며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려고 할 때도 많이 했던 얘기다.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이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보다는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영향을 받고, 주위 환경을 통해 본능적으로 배우고, 또 학교 생활을 포함한 단체 생활과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대부분 형성되는 것일 텐데 그 완성의 끝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조금씩 변하면서 인성과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뜻'과 '마음' 그리고 '의지'가 있지만 뜻을 실행하는 방법인 '길'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올레길처럼 정해진 길이고 수많은 안내 표식이 있는 길조차도 가끔은 벗어나서 헤매기도 하고 그러다가 중간에 그만둘까 망설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존의 나를 버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새로운 나를 찾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인 것이다
14코스: 저지예술정보화마을 - 한림항, 18.9km (6-7시간 소요)
14코스는 14코스와 14-1 코스 두 개로 나누어져 있다.
14코스는 여러 숲길을 지나 선인장 밭을 지나면 제주에서 제일 아름다운 해변인 협재해수욕장이 있다. 14-1 코스는 저지곶자왈과 문도지 오름을 지나 오설록 녹차밭에 도착하는 코스다. 14-1 코스는 다음에 걷기로 하고 14코스를 걸었다.
죽을 때까지 못 버리는 것이 습관이라는 것인데 여행에서도 그렇다. 내일 일정 미리 준비 안 하기, 그래서 대충 하루 보내기. 그것을 또 후회하기,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여행인데 하면서 스스로 위안하기. 불필요한 짐 많이 가져와서 스스로 나무라기. 읽지도 않을 책 가져온 것 원망하기. 전날 과식하고 과음한 것 후회하기 등 온통 반성뿐인 것도 여행의 일상이다.
가족과의 여행은 함께 한다는 것, 사진을 찍어서 추억을 남기는 것, 함께 하는 맛있는 식사 그 이상으로 의미를 두기가 어렵다. 더 많이 보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여행의 피로만 쌓이기도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습관 같은 가족 여행이 된다. 가족과의 여행도 다를 수 있다고,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혼자 여행하면서 깨닫는 것 중 하나이다.
금능포구에 도착하기 전 해녀콩 서식지가 있는데, 해녀콩은 독이 있어서 먹을 수 없는 콩인데 해녀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먹었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더 걷다 보면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 기다리고 있다.
비양도는 날아온 섬이란 유래를 가지고 있다. 먼 옛날 제주의 서북방향인 중국 쪽에서 산봉우리 하나가 제주를 향해 날아오는데, 굉음과 함께 한림 앞바다까지 왔을 때 소리에 놀라 밖에 나온 한 부인이 "거기 멈추어라"라고 소리치자 봉우리는 더 이상 날아오지 못하고 지금의 위치에 떨어져 섬이 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사자후'의 공력을 펼친 부인의 정체가 궁금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해변의 전경에 잠시 멈출 뿐이다.
아름다운 협재를 뒤로하고 걷다 보면 한림항에 도착한다. 해변에 머무는 여행과 해변을 따라 걷는 걷기 여행은 많이 다른 듯하다. 오랜 기간 올레길을 걷다 보니 아름다운 전경 뒤에 따르는 것은 무거운 발걸음이고 얼른 종착점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지기도 한다.
내가 바라는 여행의 목적, 여행을 통해서 가지고 싶은 습관은 걷는 길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고, 걷다가 사진으로 남겨서 그 당시의 느낌과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도시와 마을의 역사, 사람들의 생활을 느껴보는 것, 내가 그곳에 있었음을 남기고 기억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멋'이다.
좋은 여행을 만드는 방법은 미리 모든 계획을 세우고, 맛집을 미리 알아보고, 더 많은 곳을 다니는 것이 아니다. 여행 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도 모르는 여행의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때그때 내가 그런 것을 할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경관을 보면 멈추어서 단 몇 분이라도 머무는 것이 나에게는 더 의미 있는 기억이 될 수 있다. 하루 종일이 본 아름다운 경관보다 우연히 들린 카페나 식당에서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사실은 조금씩은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내 습관, 생각의 방식을 조금씩이나마 스스로 바꿀 수 있게 하는 몇 안 되는 도구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