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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26. 2019

제주를 걷다 - 13

제주 올레길 16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전날 14코스를 걷고 종착지인 한림항에서 숙소를 찾다가 16코스의 시작지인 고내포구로 와서 숙소를 잡았다. 15코스를 역으로 걷고 다시 고내포구로 돌아오는 계획을 세운 것인데, 같은 숙소에서 이틀을 묵으면 하루는 무거운 배낭을 안 메고 갈 수 있어서 좋고, 밀린 빨래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많은 비와 함께 거센 바람이 불었고, 출발한 지 30분 만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를 온전히 쉬기로 하고 오래간만에 책도 읽고, 주변 식당에서 여유롭게 시간도 보냈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봄날은 간다'라는 곡이 있다.  백설희 원곡인 '봄날은 간다'는 수십 명의 가수들이 불렀고, 영화' '봄날은 간다'의 동명 주제곡은 다른 가사를 가진 노래로 자우림의 김윤아가 불렀다.


백설희 원곡 '봄날은 간다'는 1953년 한국전쟁 막바지 한 맺힌 풍경의 봄날을 슬픔으로 보내는 가사를 가지고 있다. 자우림의 '봄날은 간다'는 그리운 사람에 대한 추억을 피고 지는 꽃과 가는 봄날로 아쉬워하는 노래이다.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 노래가 좋고, 김윤아의 노래도 좋아한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슬픈 봄날이 아닌 언제나 시작인 봄날만을 느끼고 싶어 진다.


16코스: 고내포구 우주물 앞 - 광평 1리 사무소, 15.7km (5-6시간 소요)


16코스는 고내포구를 시작으로 신엄포구, 중엄포구를 거치며 아름다운 해안 전경을 볼 수 있고,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에서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산성을 볼 수 있다. 16코스 마지막은 제주시내가 멀지 않은 광평리에 도착한다.


16코스는 힘든 길은 거의 없다. 5km 정도 여러 포구를 지나면서 아름다운 해변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고내 포구 주변에는 식당도 많고 호텔급 숙소를 포함한 여러 숙소가 있다.


고내 포구 전경


비, 바람 때문에 하루를 온전히 쉬면서 근처 식당들에서 때맞춰 끼니를 해결했다.


호텔에서 추천해 준 '화연이네 식당'. 점심식사였는데 참이슬이 왜 있었을까. 다시 가도 좋을 향토 음식점이다.


저녁은 고내포구에 있는 '잇수다' 식당. 비 오는 저녁 오래간만에 와인 한잔(한병?)의 호사를 부린다.


'잇수다' 가게에 있는 액자 그림의 글씨를 따라 써 보았다. 원본이 누구의 글씨인지 찾지 못했다.


공자의 지천명(知天命)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불혹(不惑)의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나를 가끔 반성한다. '사랑'이란 단어 앞에서도 내가 감히 사랑을 논할만한 사람인가도 의심스럽다. '그대가 있어 늘 행복한 사랑'만을 받아 오기만 했지, 그동안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행복을 주는 사랑'을 했을까 생각해 본다.


정작 옆에 있을 때는 제대로도 마음껏도 사랑을 주지도 표현도 못하면서 애써 혼자 있는 시간에 '사랑'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비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루를 온전히 쉬고 다음 날 일찍 출발하였다. 다행히 비는 멈추고 파란 하늘을 보며 걸음을 시작했다..


삼별초의 격전지, '항몽멸호의 땅' 표지석과 장군상


받아 드리는 것이 '바다'인가,  바다를 보고 받아 드려서 '바다'일까?


차가 다니는 해안 도로 옆으로 산책로를 만들어 걷게 하였다.


중엄리 해변


비는 오지 않았으나 파도가 많이 친 날이었다.


용암이 빚는 절경과 바다를 보며 한참을 걷는다.


구엄포구


구엄리 소금빌레. 구엄마을에는 돌염전으로 사용했던 평평한 천연 암반이 있는데 , 이 암반지대를 이용하여 소금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구엄포구


수산봉 입구. 수산봉은 높지 않은 오름이다. 예전에는 수산봉 봉우리 위에 자연 연못이 있어서 물메(물미) 오름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수산저수지를 지나 걷는 자갈길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조금 더 관리가 필요한 곳으로 생각했었다.


항파두성 진입로 입구. 나무 데크로 만든 길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앞.


생각보다 규모가 넓은 곳이다. 복원도 잘 되고, 주변 경관도 잘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1273년(고려 원종 14년) 삼별초 대원들이 여몽연합군과 마지막까지 항쟁을 했던 곳으로 2중으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항파두성은 제주에 현존하는 유일한 토성이며 그 규모가 크다. 1978년부터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산성 옆길을 따라 걷는 길.


산성과 함께 하는 멋진 경관


계절의 봄은 시작과 희망을 의미하지만, 인생의 봄날은 지나가버린 아쉬움을 기억하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된다. 인생의 봄날이 한번 지나고 끝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매년 돌아오는 봄처럼 반복되는 시작과 희망의 봄날이 되기를 희망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 유지태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오랜만에 다시 재회하는 두 사람. '은수' 이영애는 "같이 있을까?"라고 물으며 상우의 마음을 다시 흔든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악수를 하며 헤어지지만 상우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은수도 계속 뒤를 돌아본다.


평생 변하지 않을 사랑을 꿈꾸지만 사랑은 변한다. 나도 모르게 우연히 찾아오기도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떠나 버리는 것도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봄날'을 닮았다. 긴 겨울 지나면 나도 모르게 와있고,  마음껏 느끼기도 전에 가버린다. 봄날은 가지만 다시 봄날은 온다.


16코스를 마지막으로 2018년 봄 올레길 걷기를 끝냈다. 나머지 코스는 가까운 시일 내에 와서 다시 걷는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일 년 전 다녀온 올레길 여행기를 다 쓰고 난 지금, 다시 올레길을 걷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지만, 다음에는 집을 떠나 제주 올레길로 돌아오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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