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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25. 2019

제주를 걷다 - 12

제주 올레길 14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을 변화시켜 내 기준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회사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잘 전달하고 지원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언으로 많이 들었고, 동료에게 같은 조언도 했고, 또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하며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려고 할 때도 많이 했던 얘기다.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이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보다는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영향을 받고, 주위 환경을 통해 본능적으로 배우고, 또 학교 생활을 포함한 단체 생활과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대부분 형성되는 것일 텐데 그 완성의 끝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조금씩 변하면서 인성과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뜻'과 '마음' 그리고 '의지'가 있지만 뜻을 실행하는 방법인 '길'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올레길처럼 정해진 길이고 수많은 안내 표식이 있는 길조차도 가끔은 벗어나서 헤매기도 하고 그러다가 중간에 그만둘까 망설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존의 나를 버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새로운 나를 찾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인 것이다


14코스: 저지예술정보화마을 - 한림항, 18.9km (6-7시간 소요)


14코스는 14코스와 14-1 코스 두 개로 나누어져 있다.

14코스는 여러 숲길을 지나 선인장 밭을 지나면 제주에서 제일 아름다운 해변인 협재해수욕장이 있다. 14-1 코스는 저지곶자왈과 문도지 오름을 지나 오설록 녹차밭에 도착하는 코스다. 14-1 코스는 다음에 걷기로 하고 14코스를 걸었다.


올레길은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서 경로가 변경된다. 제주올레 홈페이지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서 출발하여 도로 길을 걷는다.


큰소낭 숲길을 안내하는 간세. 큰소낭은 큰 소나무라는 의미로 '낭'은 제주어로 나무를 의미한다.


인생이 정해진 표식만 따라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알아도 그렇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죽을 때까지 못 버리는 것이 습관이라는 것인데 여행에서도 그렇다. 내일 일정 미리 준비 안 하기, 그래서 대충 하루 보내기. 그것을 또 후회하기,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여행인데 하면서 스스로 위안하기. 불필요한 짐 많이 가져와서 스스로 나무라기. 읽지도 않을 책 가져온 것 원망하기. 전날 과식하고 과음한 것 후회하기 등 온통 반성뿐인 것도 여행의 일상이다.


선인장이 보이고, 월평리란 마을을 지나간다.


오시록헌 농로. '오시록하다'는 아늑하다는 의미의 제주어다. 발길이 닿는 느낌이 오시록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제주말은 알수록 재밌는 말들이 많다.


'굴렁지다'는 움푹 파인 지형을 제주어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원래 있던 지명은 아니고 올레길을 조성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선인장 밭. 제주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돌담 옆 선인장 밭을 지난다.


무명천 옆으로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이 천을 사이로 두고 다리를 넘어 건너가고 한참을 걷다 다시 다리를 걷는 길이 이어진다.


백년초 열매. 6-7월에 꽃이 피고, 11월에 열매가 보라색으로 익어간다고 한다. 선인장은 민간 약재로서도 사용된다고 한다.


무명천을 따라 걷다 보면 드디어 해안도로가 보인다.


점심식사는 월령포구 가기 전 도로변에 있는 햄버거집. 올레길을 걸으며 처음 햄버거를 먹는다.


가족과의 여행은 함께 한다는 것, 사진을 찍어서 추억을 남기는 것, 함께 하는 맛있는 식사 그 이상으로 의미를 두기가 어렵다. 더 많이 보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여행의 피로만 쌓이기도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습관 같은 가족 여행이 된다. 가족과의 여행도 다를 수 있다고,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혼자 여행하면서 깨닫는 것 중 하나이다.


월령 선인장 자생지 입구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선인장이 자생하는 지역으로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 예부터 이 지역에는 뱀이나 쥐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돌담에 선인장을 심었다고 한다.


바다와 선인장을 보며 데크로 만들어진 길을 걷는다.


데크 길을 걸을 때면 좋기도 하고 가끔은 아쉽기도 하다.


금능포구에 도착하기 전 해녀콩 서식지가 있는데, 해녀콩은 독이 있어서 먹을 수 없는 콩인데 해녀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먹었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더 걷다 보면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 기다리고 있다.


금능 해변. 이 해변에서 머물지 못하고 가던 길을 갔었다. 단 10분이라도 머물면서 온전히 느낄 여유가 그때는 없었던 것 같다.


비양도 전경


비양도는 날아온 섬이란 유래를 가지고 있다. 먼 옛날 제주의 서북방향인 중국 쪽에서 산봉우리 하나가 제주를 향해 날아오는데, 굉음과 함께 한림 앞바다까지 왔을 때 소리에 놀라 밖에 나온 한 부인이 "거기 멈추어라"라고 소리치자 봉우리는 더 이상 날아오지 못하고 지금의 위치에 떨어져 섬이 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사자후'의 공력을 펼친 부인의 정체가 궁금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해변의 전경에 잠시 멈출 뿐이다.


사진만 보면 동남아의 유명 휴양지


비양도를 보며 걷다 보면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사진작가의 기분으로. 전경 I


사진작가는 아무나 못하는 것. 그래도 마음이 가는 전경 II.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전경. 전경 III.


사진 한 장으로 다시 오고 싶은 추억이 생기는 협재.  전경 IV.


여기저기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바다. 전경 V.


나만의 사진 제목은 'OPUS II'


협재해수욕장 근처에는 숙박할 곳도 많고, 개성 있는 식당도 많이 있다.


멋있는 집. 누가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그런 집.


협재 해수욕장을 뒤로하고 걷는 코스 종착점까지는 4.3km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멋진 전경.


아름다운 협재를 뒤로하고 걷다 보면 한림항에 도착한다. 해변에 머무는 여행과 해변을 따라 걷는 걷기 여행은 많이 다른 듯하다. 오랜 기간 올레길을 걷다 보니 아름다운 전경 뒤에 따르는 것은 무거운 발걸음이고 얼른 종착점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지기도 한다.


비양도행 배를 탈 수 있는 한림항 대합실.


내가 바라는 여행의 목적, 여행을 통해서 가지고 싶은 습관은 걷는 길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고, 걷다가 사진으로 남겨서 그 당시의 느낌과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도시와 마을의 역사, 사람들의 생활을 느껴보는 것, 내가 그곳에 있었음을 남기고 기억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멋'이다. 


좋은 여행을 만드는 방법은 미리 모든 계획을 세우고, 맛집을 미리 알아보고, 더 많은 곳을 다니는 것이 아니다.  여행 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도 모르는 여행의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때그때 내가 그런 것을 할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경관을 보면 멈추어서 단 몇 분이라도 머무는 것이 나에게는 더 의미 있는 기억이 될 수 있다. 하루 종일이 본 아름다운 경관보다 우연히 들린 카페나 식당에서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사실은 조금씩은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내 습관, 생각의 방식을 조금씩이나마 스스로 바꿀 수 있게 하는 몇 안 되는 도구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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