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파카 Aug 20. 2022

이직에 실패했다. 마음이 편안하다.

낭떠러지 앞에 서면 진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집에서 가까운 지역에 지방공기업에 지원했다. IT회사에서 개발자 8년의 경력이 있다보니 서류면접 최종 합격자 10명중 1등으로 통과하고, 8월초에 최종(경험+상황) 면접을 통해 3명을 뽑는 자리에 총 9명이 2차 면접전형을 치뤘다.


NCS를 기반으로 하는 면접이기에 자원관리, 문제해결, 대인관계등의 요소를 살펴보는 질문이 나왔고, 그들이 원하는 답보다는 내가 평소 생각하는 소신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평소 생각하는 소신을 다시 바꿔말하면 나의 직업관 혹은 가치관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여일이 흘러 최종발표일인 어제, 오후 4시내에 결과가 나온다는 인사담당자의 대답을 듣고 하루종일 일에 손에 잡히지 않아 결과발표 채용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심장이 조여오는 애간장 태우는 시간을 보내고 오후4시가 되자마자 결과확인이 가능하게 채용사이트가 열렸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회사 건물 비상계단으로 나가 이름과 메일주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바라볼수 없어 몇번이나 옆으로 휴대폰을 치우다가 결국 결과를 확인했다.


2차 면접전형 지원자 9명중에 예비5번. 다시말해 3명의 합격자를 제외한다면 8번째 순서. 9명중 8등이라는 결과화면. 처참했다. 서류면접 1등이었고,, 지원자중에서는 경력이 가장 많을것이라 예상했고 최종면접 3명의 심사관들의 질문에 나름대로 잘 대답해왔기에 3명안에 들거나 간발의 차로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합격선에는 턱없이 부족한 결과가 나왔다.


2차 면접전형을 치루고 결과까지 남은 15여일동안 왜 나는 지금의 회사를 떠나려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했다. 연봉은 지금의 회사가 훨씬 높고(대략 2천정도) 중소기업 재직자 공제로 1년뒤엔 3천만원이 고스란히 내 통장에 꽂힐 예정이며, 9-6가 잘지켜져 매달 한번있는 시스템 배포가 아니면 매일 6시 칼퇴가 보장되었다. 또한 회사 창립 멤버였기에 회사대표나 개발팀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회사생활이 가능한 말그대로 완벽한 신의직장에 가까운 위치였다.


완벽이란 단어가 어울릴만큼 좋은 자리였음에도, 이직을 하고 싶었던 정말 본질적인 이유는 “꿀”을 빨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을 많이 하진 않지만 더 게으르고 느긋하게 살아도 정년이 보장된다는 “공기업”이 주는 안정감을 나도 한번은 느껴보고 싶다는. 300여명 가량의 인원이 재직중인 회사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직장인 기업리뷰 앱인 블라인드를 통해 지원한 공기업을 찾아보았으나, 박봉에 체계없는 업무, 내부정치, 승진 적체로 인한 인사환경 등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그냥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채우고 객관적인 팩트를 무시하고 내 생각만 관철시켰다.


이직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찾아보고, 관련한 도서도 여러권 읽었다. 이직의 경험이 있는 분들의 의견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요소는 회사의 전망이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이직이 필요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이직이라면, 이직하더라도 큰 변화없는 환경에 다시 놓이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머릿속에 계속 멤돌았다. 어느 조직이건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비슷한 분위기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 믿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선택지 여러개 일 때”라고 한다. 내가 지금 손에 붙잡고 있는 줄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떤 줄이든 붙잡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석양이 하나가 아니라 N개 라고 한다면 만족도는 떨어지고, 스스로 느낄수 있는 행복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직에 실패하는 고배를 마시고 난 이상 “공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패는 현재의 환경에서 만족 또는 감사 키워가 보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라 생각된다. 도전을 피하는 것일수도 있고, 자기합리화를 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내게 주어진 환경이 나쁘지 않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내가 현재 가지고 있고 누리는 것에 대해 “감사”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간중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일상을 “감사”로 채울 것인가. 이직에 실패한 내게 세상에 던져준 힌트이자 숙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직의 판단기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