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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원 Dec 29. 2022

김장, 파티는 끝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아마 김치가 가장 존재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치는 한국인의 밥상에 거의 빠짐없이 올라온 반찬 중에 가장 핵심이었을 것이다. 김치는 단순히 음식만이 아니라 김장이라는 문화를 통해서 한국인의 삶의 중요 부분을 지배해 왔다. 그런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만고불변의 것은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김치도 김장문화도 변화할 때가 되었다. 김장이 더 이상 힘든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김치 파티가 되어 끝낼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김장이 왜 필요할까?


겨우내 먹기 위하여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김장은 과거에는 꼭 필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식구도 많고, 겨울에 신선한 야채를 키워 먹기도 어려운 시절에는 수백 포기씩 김장을 해서 넉넉히 겨울 반찬을 준비해 두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삶의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더 이상 대가족이 아닌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60%에 도달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집에서 김장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밥만이 주식이 아니라서 쌀 소비량도 계속 줄어들고 있고, 밥과 같이 먹는 김치도 같이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 1인당 1일 쌀 소비량이 350g이었고, 김치 소비량은 300~400g에 달하였다고 한다. 2020년에는 쌀소비량이 122g, 김치 소비량은 57g으로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 지금은 겨울에도 신선한 채소들이 얼마든지 공급되고 있고, 집 냉장고에는 김치 아니라도 먹을 만한 반찬이 넘쳐나고 있는 시절이다. 김장이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은 시대에 김장을 하느라고 등골 빠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 김장의 어려움


어릴 때 엄마가 김장하는 것을 보았던 기억들이 있다. 아주 추운 겨울에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 찬바람 부는 마당 수돗가에서 수백 포기의 배추를 쌓아 놓고, 큰 빨간 드럼통에 담가 소금물에 절이고,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간 빨간 양념들을 배추에 치대어 묻히며 힘든 김장을 하시던 것을 보았다. 그렇게 추운 겨울에 하루종일 김장을 하고 나면 몸살을 앓고는 하셨다.


요즘은 따듯한 집안에서 수십 포기도 안 되는 김장을 하니까 옛날에 비하면 힘든 일도 아니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나는 사실 엄마가 김치를 담그신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걱정이 되고 좋지 않다. 연세도 많으신 분이 몸에 무리 가는 일을 하시는 것도 싫고, 무거운 김치를 나에게 보내 주기 위해서 애 써시는 것도 싫고, 너무 많이 보내 주셔서 엄마가 힘들게 담근 김치를 제대로 못 먹고 버리게 될까 봐 항상 신경을 쓰게 되는 것도 싫다.


결혼 전에는 김치 담그는 일이 내 일이 아니었기에 사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엄마가 항상 김치를 큰 통에 담가서 다른 음식들과 함께 바리바리 싸서 주셨다. 멀리 이사 오고는 더 이상 안 하실 줄 알았는데, 택배로 보내 주시거나, 우리가 한 번씩 갈 때마다 주신다. 고맙기도 하지만 김치 담그느라고 엄마 몸이 상하는 것이 싫어 김치 안 먹는다고 화도 여러 번 내 보았다. 내가 직접 담가 먹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 나주향토음식문화체험관에서 김치 수업도 몇 번 들었다. 김치 명인이 강사로 나와서 가르쳐 주는 수업이었는데, 내가 직접 체험해 본 결론은 '김치는 집에서 소량 담가 먹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은 음식이다'는 것이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는 배추와 무 같은 기본 재료 이외에도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과 같은 많은 양념들이 필요했다. 많지 않은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는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양념값이 들어갔다. 또 한 포기를 담그던지 열 포기를 담그던지 기본적으로 소금에 절이는 시간과 김치 양념을 만드는 시간등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여러 통에 양념을 묻히면서 번거로웠다. 또 김치는 간 맞추는 것을 포함하여 요리에 대한 감과 솜씨가 필요한 음식이어서, 어설픈 초보가 해서는 맛이 잘 안나는 음식이었다.


식구가 적고 먹는 김치양이 많지 않으면 사 먹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훨씬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집마다 김치 담그는 방법도 다르고 선호하는 양념도 다른데, 특히 바깥에서 사 먹는 김치를 어떻게 믿고 사 먹을 수 있느냐는 분들에게 새로운 방법을 알려 드리고자 한다.


3. 김장, 파티는 끝났다


12월 초에 나주 영산나루에서 김장 파티에 참여하였다. 영산나루에서 매주 한 번씩 차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영산나루 주인인 차선생님이 주부들의 고민인 김장을 쉽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김장 파티에 참가하겠냐고 물어 오셨다. 김장 파티가 뭐냐고 했더니, 김치 전문가가 절인 배추와 김치 양념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참가자는 배추만 양념장에 치대어 필요한 양만큼 김치를 만들어 집에 가져가면 된다고 했다. 김장이 끝나면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서 파티처럼 같이 나누어 먹자고 했다. 


12월 3일 토요일 10시 정도에 영산나루에 도착했다. 조금 늦게 도착하시는 분들과 김치 전문가를 기다리면서, 먼저 오신 분들이랑 같이 차를 끓여 마시면서 기다렸다. 찻집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면서 김치 만들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로운 느낌으로 와닿았다.


영산나루 찻집


10시 반쯤 김치 전문가가 큰 트럭에 절인 배추와 양념, 부재료들을 잔뜩 싣고 왔다. 영산나루의 넓은 정원에 있는 야외 테이블에 김치를 버무릴 큰 통을 여러 개 갔다 놓았다. 처음에 김치 주문을 받을 때 전라도식과 서울식 두 가지가 가능하며 맵기 조절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전라도식 김치는 젓갈을 많이 넣어서 양념맛이 진하고, 서울식 김치는 생새우를 갈아 넣어서 나중에 시원한 맛이 난다고 했다. 김치의 맵기 조절은 청양고춧가루를 넣어서 조절했다. 금방 먹는 김치는 매실액이나 설탕 같은 단것이 들어가면 더 맛있기는 한데, 당류가 많아지면 오래 두고 먹는 김치에는 좋지 않다고 했다. 양념장은 기본 양념장에 개인별 취향에 따라 청양고추를 넣어 맵기 조절이나, 젓갈량으로 간 조절이 가능했다. 



본인이 직접 절인 배추에 양념을 묻혀 만들거나, 그도 어려우면 전문가가 만들어 준다고 했다. 절인 배추와 양념을 다 포함하여 김치 1kg에 8천 원을 내면 된다고 하여서, 참석자들은 본인 집에 필요하거나 자식들에게 나누어 줄 양만큼 담고 김치 가격을 지불하고 가지고 갔다. 절인 배추에 다 준비된 양념을 치대어 김치통에 담기만 하면 되어서 1시간이 안 걸려서 12시 전에 끝났다.



나도 한통은 전라도식으로 다른 한통은 서울식으로 만들어 두통의 김치통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김치를 담그면서 그 자리에서 수육까지 삶아 같이 나누어 먹을 계획이었는데, 여건상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집에 와서 수육을 삶아서 새로 담근 김치랑 같이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 복합적이다. 김장 같이 전통적으로 힘든 노동도 김장 파티 같은 즐거운 경험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김장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문화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화 지체 현상이라는 용어가 있다. '문화 지체란 급속히 발전하는 물질문화와 비교적 완만하게 변하는 비물질문화 간의 변동 속도 차이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부조화를 말한다'라고 지식백과에서 용어 정의 되고 있다. 쉽게 예를 들어 말하면,  IT 같은 새로운 첨단 기술이 발달하고 우주선 타고 우주에 가는 시대이면서, 실존하지도 않는 조상신에게 제사 지낸다고 얼굴도 한번 못 본 남의 집 며느리가 등골 빠지게 명절에 전 부치는 문화적 지체 현상을 말한다.


너무 오랫동안 해 와서 김치 담그기나 김장 문화를 한꺼번에 없애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김장을 해 보거나 김치를 사 먹어 보기 시작하면, 이걸 왜 집에서 꼭 해야 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단단히 언 얼음을 녹이는 방법은 먼저 균열을 내는 것이다. 한번 균열이 일어나고 나면 그 틈을 타고 균열은 번지고 결국 고정된 생각의 얼음은 깨지고 유연한 물이 된다. 세상에는 변화지 않는 것은 없다. 너무나 단단하여 절대 깨질 것 같지 않는 것들도 결국은 깨어지고 변화한다. 그렇게 세상은 변화한다.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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